강 론 말 씀

2016년 8월 25일 다해 연중 제21주간 목요일(성 루토비코, 성 요셉데 갈라산즈 사제)-충실할 뿐 아니라 행복할 줄 알아야 한다

dariaofs 2016. 8. 25. 05:49




성 루도비코 9세 왕

성 루도비쿠스(Ludovicus, 또는 루도비코)는 프랑스 왕 루이 8세와 카스티야(Castilla)의 블랑쉬(Blanche)의 아들로 프와시(Poissy)에서 태어나 어머니의 종교적인 분위기 속에서 성장하였다.

 

1226년 그의 부친이 서거했을 때 그의 나이는 12세에 불과 했으므로 어머니가 섭정의 자리에 올랐다. 그녀는 아들의 왕권을 노리는 샹파뉴(Champagne)의 티보를 비롯하여 야심 많은 귀족들과 대항했고, 어떤 때에는 전쟁도 불사하였다.

그는 1234년 5월에 프로방스의 공작 레이먼드의 딸인 마르가리타(Margarita)와 결혼하여 열 명의 자녀를 두었다. 같은 해에 그는 대권을 물려받고 통치자가 되었고, 모친 블랑쉬는 고문관으로 아들을 도왔다.


그는 1242-1243년의 남 프랑스의 반란을 진압했고, 또 잉글랜드(England)의 헨리 3세를 테임브르그에서 격퇴하였으며, 포와투를 손에 넣는 등 국가의 권력을 점점 확대하였다.

 

1248년 그는 십자군을 지휘하여 출정하였으나 1249년에 다미에타에서 포로가 되어 사라센인들의 손에서 곤욕을 치렀다.


그 후 그는 석방되어 성지로 가서 1254년까지 머물다가 모친의 사망 통보를 받고 프랑스로 돌아왔다. 그는 플랑드르(Flandre)와의 평화를 이룩했고 리모주(Limoges), 카오르(Cahors) 등 수많은 지역을 평정하였다.

루도비쿠스는 천성적으로 신심이 깊었고, 또 실제로 이상적인 수도자를 꿈꾸었다. 이 때문에 그는 정의를 펴고 그리스도교적 사랑으로 나라를 다스렸으며, 왕으로부터 농부에 이르기까지 각자의 권리를 옹호하여 성왕으로 불리었다.

 

동시에 그는 예리하고 힘찬 군주였으며, 동시에 평화를 사랑하는 뛰어난 군인이었다. 그는 하느님께 불경한 태도나 말을 한 사실이 없다.


그의 맏아들에게 했던 유언에서도 그는 자신의 신앙을 그대로 설명하고 지키도록 부탁할 정도였다. 1270년 그는 재차 십자군을 일으켰다가 8주일 후에 이질에 걸려 운명하였다.

성인은 한마디로 가장 이상적인 중세의 그리스도인 왕이었다. 그의 치하에서 프랑스는 최대의 번영을 누렸다. 그의 신심은 자신이 작은 형제회 3회원이 됨으로써 입증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는 작은 형제회 3회의 남자 수호성인이다.

 

그는 1297년 교황 보니파티우스 8세(Bonifatius VIII)에 의해 시성되었다. 임종시에 그는 이런 말을 하였다.


 “주님, 저는 이제 당신의 집에 들어가렵니다. 당신의 거룩한 성전에서 예배하리이다. 당신의 이름에 영광을 드리나이다.”


그리고 오후 3시경에 “제 영혼을 당신 손에 맡기나이다.” 하며 숨을 거두었다. 그의 유해는 생드니(Saint-Denis) 수도원 성당에 안장되었다.

 

 

성 요셉 데 가라산즈 사제

아버지 페드로(Don Pedro Calasanza)와 어머니 마리아(Maria Gastonea)의 막내아들인 성 요셉(Josephus)은 에스파냐 아라곤(Aragun)의 페트랄타 데 라 살(Petralta de la Sal) 근처의 칼라산사(Calasanza) 성에서 태어났다.


그는 에스타디야(Estadilla)에서 문법과 수사학을 공부하였으며, 레리다(Lerida) 대학에서 철학과 법학을 공부하여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1571-1577년).


그리고 발렌시아(Valencia) 대학과 알칼라 데 에나레스(Alcala de Henares)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였다.

그런데 이 기간 중에 어머니와 형이 사망하자, 아버지는 요셉이 돌아와 결혼하여 가문을 이어가기를 바랐다.


그러나 요셉은 이러한 아버지의 뜻을 물리치고 1583년 12월 17일 우르겔(Urgell)의 주교인 우고 암브로시우스(Hugo Ambrosius)로부터 사제 서품을 받았다. 그 후 성 요셉은 알바라신 교구에서 활동하였다.

 

교구장 주교는 성 요셉을 자신의 고문 신학자이자 주교대리로 임명하여 피레네 산맥의 외딴 지역들에 대한 성직자들의 개혁과 신앙 재건을 위하여 파견되었다.


요셉은 모든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1592년 로마(Roma)로 가서 콜론나(Colonna) 추기경을 만났는데, 그 추기경 역시 성 요셉을 자신의 고문 신학자 겸 조카의 스승으로 삼았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서, 그는 로마에서 교육과 자선 활동을 위한 공동체 설립을 시도하게 되었다.


그는 로마에서 일반 국민들의 무지와 윤리적 타락, 특히 부모가 죽은 뒤 버림받은 고아들을 보살피고 교육하는 일이 급선무임을 깨닫고 티베르 강을 끼고 있는 빈민가에서 유럽 최초의 무료 공립학교를 개설하였다.

 

그는 1597년에 두 사제의 도움으로 이 학교를 연 다음 ‘그리스도교 교리 형제회’의 책임자가 되었다.


마침내 1617년 교황 바오로 5세(Paulus V)는 성 요셉이 설립한 학교를 공식 수도회로 승인해 주었고, 많은 이들의 지원과 협력으로 이와 유사한 많은 학교들이 설립되어 학생수가 천여 명에 이르게 되었다.


1621년 11월 18일에 그의 공동체는 교황청으로부터 정식 인준을 받은 수도회가 되었으며, 성 요셉은 이 수도회의 종신 총장이 되었다.

초창기의 사제들은 주로 초등학교에서 가르쳤다. 성 요셉은 초급과 중급 학교의 체계화에 기여하였다. 그는 교과과정을 면밀히 구성하였고 어린이들이 선(善)을 사랑하도록 교육 원칙을 세웠다.


 “어린이들이 처음부터 신앙과 문학 교육을 받음으로써 자신의 삶이 행복함을 알게 된다.”고 그는 기록하였다. 이들 학교는 에스파냐, 보헤미아(Bohemia), 폴란드, 이탈리아 등 수많은 나라에 세워졌다.

 

그러나 설립자의 만년은 야심을 가진 후계자들의 심각한 분쟁으로 점철되었다. 그는 또 다른 욥처럼 용기를 발휘하였지만 그의 수도회에 대한 신뢰는 그가 죽은 후에야 되살아났다.


그는 로마에서 1648년 8월 25일에 운명하였고, 1748년 8월 7일 시복되었으며 1767년 7월 16일 교황 클레멘스 13세(Clemens XIII)에 의해 시성되었다. 교황 비오 12세(Pius XII)는 그를 ‘모든 그리스도교 학교의 천상 수호자’로 선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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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여라.

주인이 돌아와서 볼 때에 그렇게 일하고 있는 종.

주인은 자기의 모든 재산을 그에게 맡길 것이다.

 

오늘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일종의 명령어를 세 번이나 말씀하십니다.

깨어 있어라.”

명심 하여라.”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의 주인이 언제, 어떤 식으로 오실지 모르니 깨어있으라는 말씀인데

제자들에게 주인은 누구입니까? 예수님 당신이 아닙니까?

그리고 제자들은 종이고, 종들 중에서 청지기 종이라는 말씀이고요.

   

저는 이런 식의 비유가 조금 비위가 상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특히 도둑이 언제 올지 알면 깨어 지키고 있을 거라고 하신 것은

왜 당신의 오심을 도둑의 침입에 빗대시는 것이기에 더 비위가 상합니다.

   

그것은 내가 주님의 종이기를 거부하는 교만 때문이 아닙니다.

과거 20대의 저는 내가 종인 것이 싫어서 주님이라는 호칭도 싫어했지만

지금의 저는 기꺼이 저를 종으로 인정하고 정말 주님을 주님으로 모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비유에 비위가 상하는 것은 교만 때문이 아닙니다.

그것은 주제넘기는 하지만 욕심 때문입니다.

종과 주인의 관계보다는

사랑하는 연인의 관계를 비유로 들었으면 하는 욕심 말입니다.

   

그러면 깨어 준비하고 있으라는 명령어도 하실 필요가 없고,

명심 하라는 강조도 하실 필요가 없지 않겠습니까?

   

기실 사랑하는 사이라면,

그것도 아주 뜨겁게 사랑하는 사이라면 이런 말이 무슨 필요가 있습니까?

   

오히려 반대의 얘기가 필요할 것입니다.

사랑에 빠진 자식에게 엄마는 잠을 자야 내일 일을 할 것이니

이제 그만 전화 끊고 자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 비유의 말씀은 아직 이 단계에 오르지 못한 제자들과

역시 주님과의 사랑의 단계에 도달하지 못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관계에는 단계가 있습니다.

일부러 무관심할 필요도 없는 무관한 관계.

관계가 있지만 미움의 고통이 싫어 무관심에로 피하는 관계.

관계가 밀접하지만 사랑의 관계가 아니라 충성()이 요구되는 주종관계.

그저 너무 좋고 너무 아름다워서 저절로 관계 안으로 빠져드는 연인관계.

싫지만 끊거나 버릴 수 없는 깊은 관계 때문에 미워하면서 사랑하는 관계.

싫고 좋음, 희생이나 고통이나 죽음까지도 초월하는 압도적인 사랑의 관계.

   

제자들이나 그래도 신앙생활을 열심히 한다고 하는 우리나

높은 사랑의 단계는 말할 것도 없고

낮은 사랑의 단계에도 아직 도달치 못했기에 주님은 이 비유를 드시고,

주종의 관계라도 충실히 하라시며 오늘 주님께서는 이렇게 물으십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이겠느냐?”

 

그리고 당신이 물으시고 당신이 답을 주십니다.

그것은 주인과의 관계에서는 깨어 기다리는 종이고,

다른 종들과의 관계에서는 주인의 바람대로 제 때에 먹을 것을 주며

건강하게 주인을 위해 일할 수 있도록 종들을 잘 관리하는 종입니다.

   

그러나 이러니저러니 해도 종은 행복한 종이어야 합니다.

그래야지 앞서 주님께서 말씀하신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이 됩니다.

충실하기는 한데 행복치 않다면 그것은 노예일 뿐 슬기로운 종이 아닙니다.

충실한 종, 슬기로운 종, 주인의 풍요를 함께 누리는 행복한 종이 돼볼까요?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