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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 비친 가톨릭] 천주교가 뿌리내리기까지… 역사의 현장 ‘고스란히’

dariaofs 2016. 8. 19. 16:07


충북 배론 성지


 
▲ 배론성지 순교자들의 집.


천주교가 이 땅에 뿌리를 내리기까지는 혹독한 박해와 그에 따른 수난이 있었다.

한국천주교는 전국의 박해의 현장을 성지화했다. 배론성지도 그런 곳이다.

한국천주교회는 1784년 설립됐다. 이승훈이 북경에서 세례를 받고 조선에 돌아오면서 십자고상, 교리서, 묵주 등의 성물들과 천주교회 문서들을 가져온 것이 그때다.

성리학이 국가의 기본이념이었던 조선사회에 천주교는 너무나 이질적이었다.

1801년 일어난 대대적인 박해를 역사는 신유박해(辛酉迫害)라고 기록한다. 개혁군주 정조가 승하한 직후 일어난 일이다.

 

  
▲ 황사영 순교현양탑.

정치상황과 맞물려 남인의 중요한 지도자인 동시에 천주교의 지도급 인물들인


정약종, 홍낙민, 최창현, 홍교만, 최필공, 이승훈 등 6명은 참수되고,


이가환, 권철신은 옥사하는 등 52명이 순교했다. 정약용, 정약전은 유배됐다.

정약용 형제의 조카사위였던 황사영은 충청도 제천 배론으로 몸을 피했다.


황사영은 이곳에 있었던 토굴에서 신유박해의 참상을 북경의 주교에게 전하기 위해 백서를 썼다.

그러나 이 백서는 주교에게 전달되지 못했다. 그 전에 관리들에게 발각돼 압수됐다.


황사영은 처형당했다. 관련자들의 순교도 피할 수 없었다.


‘황사영 백서’의 현장이 배론성지이다.


 이곳에는 1855년부터 1866년까지 사제양성을 위한  성 요셉신학교가 있었다. 또 1861년 선종한 한국 두 번째 사제 최양업 신부의 무덤이 있다.


최양업 신부는 울산의 간월산 죽림굴(대재 공소)에 머물며 사목활동을 벌이기도 했던 인물이다.


배론성지에는 황사영이 백서를 쓴 토굴이 복원되어 있으며, 옛 성 요셉 신학교 터가 복원돼  있다.


 이곳에서는 해마다 천주교 원주교구 사제, 부제 서품식이 거행되고 있다. 원주교구 초대 교구장을 역임한 지학순 주교의 묘소도 이곳에 있다.


-배론신학교


1831년에 설정된 조선 교구는 파리 외방 전교회에서 담당했다..


파리 외방 전교회 소속 선교사들의 가장 큰 목표는 조선인 사제를 양성해 이들에 의해 교회가 운영될 수 있도록 하는데 있었다.


그리하여 1836년 먼저 3명의 신학생을 선발해 마카오로 유학을 보냈다. (김대건, 최양업, 최방제)
당시 조선교구 교구장 직무대행 메스트로 신부는 1855년에 배론에 신학교를 설립했다.


메스트로 신부는 1857년 과로로 쓰러져 선종했다. 1861년 10월 교구장 베르뇌 주교는 이 신학교를 성요셉 신학교라고 명명했다. 


  

▲ 황사영 토굴. 황사영이 이곳에서 백서를 썼다.



-찾아가는 길
경부고속도로와 중앙고속도로를 달리다 제천IC에서부터 원주 방향 5번 국도로 약 6Km 더 가면 된다. 울산에서는 약 300Km. 


  
▲ 최양업 조각공원 중앙제대.
  

▲ 최양업 신부의 일대기가 조각돼 있는 조각공원.


글·사진 강귀일 기자 (울산 제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