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6년 9월21일 다해 성 마태오 복음사가 축일

dariaofs 2016. 9. 21. 08:05



성 마태오(Matthaeus)는 원래 가파르나움에서 로마(Roma)를 위해 세금을 걷는 세리였으나,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받고 제자가 되었다. 아마도 그는 갈릴래아 태생인 듯 보이며 레위 지파 사람이었다.


또한 그는 60-90년 사이에 기술된 마태오 복음서의 저자이며, 아람어로 기록하고 동료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려는 목적이 있었던 것으로 본다.


어떤 학자들은 이 복음서는 70년 이후 시리아의 안티오키아(Antiochia)에서 기록되었다고도 생각한다. 전승에 따르면 마태오는 유대아를 순회하며 전교하다가 동방으로 갔으며, 로마 순교록에는 그가 에티오피아에서 순교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 다른 전승에 의하면 페르시아에서 순교했다고도 한다. 그는 은행원과 장부 기장자의 수호성인이다.
여성형으로는 마태아입니다. 마태오는 하느님의 선물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강론   :   (마태 9,9-13)


<편견과 차별>


“예수님께서 그곳을 떠나 길을 가시다가
마태오라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그러자 마태오는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마태 9,9).”


마태오 사도가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일은,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이루어진 일은 아니었을 것이고,
아마도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할 준비를 하고 있다가
부르심을 받자 즉시 응답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태오를 제자로 부르시고 사도로 뽑으신 일은,
죄인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신 일이 아니라
글자 그대로 제자로 삼으려고 부르신 일이고, 사도로 뽑으신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마태오를 제자로 부르신 것은 그가 세리였기 때문이 아니라,
사도로 삼을만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직업’을 보지 않으셨고, 그의 ‘사람됨’을 보셨습니다.


마태오의 직업이 세리였다는 이유만으로 그가 탐관오리였다고 말하거나,
또 그가 죄인이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것은 모두 편견과 선입관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세리를 죄인 취급한 것은 그 당시의 상황일 뿐입니다.
당시에 대부분의 세리들이 탐관이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모든 세리들이 다 그랬을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거나 말할 근거는 없습니다.)


바리사이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시의 바리사이들이 대부분 위선자들이었고,
예수님께서 그들의 위선을 꾸짖으신 일이 많지만,
모든 바리사이들이 다 위선자였던 것은 아닙니다.
바리사이들 가운데에는 진실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우리는 마태오가 ‘세리’로서 어떻게 일했는지 모릅니다.
다른 세리들처럼 부정축재와 횡령을 했는지,
아니면 정직하게 일했는지 모릅니다.
모르니까 “마태오는 탐관이었다.” 라고 단정적으로 말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직업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면 안 됩니다.


예리코의 세관장 자캐오의 경우에, 그는 예수님께 이런 말을 했습니다.
“보십시오, 주님!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른 사람 것을 횡령하였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루카 19,8).”
이 말은 자기가 횡령했을지도 모른다는 뜻으로 한 말이지
횡령했음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말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당시의 유대인들은 그를 죄인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루카 19,7).
오늘날에도 자캐오는 죄인이었다고 단정적으로 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도 직업에 대한 편견일 뿐입니다.


예수님도 그런 나쁜 편견과 선입관의 피해자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갈릴래아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또 가난한 목수의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편견과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특히 교회 공동체에는 그런 편견과 차별이 일체 없어야 합니다.
직업이나 출신 지역만 보고, 학력이나 학위만 보고,
또는 다른 여러 가지 이유로 편견과 선입관을 가지고서 이웃을 대한다면,
그것은 죄를 짓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집에서 식탁에 앉게 되셨는데,
마침 많은 세리와 죄인도 와서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과 자리를 함께하였다.
그것을 본 바리사이들이 그분의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당신네 스승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오?’(마태 9,10-11)”


지금 예수님을 비난하고 있는 자들의 죄를 네 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자기들 마음대로 다른 사람들을 죄인이라고 판단한 죄,
그러면서 자기 자신들은 의인이라고 주장하는 위선과 교만,
또 모든 사람에게 베풀어지는 하느님(예수님)의 자비와 사랑을 부정한 죄,
형제애를 거스른 죄.
(자기들과 다른 사람들을 의인과 죄인으로 구분해서 장벽을 쳐 놓은 일은
그 자체로 형제애를 거스르는 죄가 됩니다.)


“튼튼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
사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마태 9,12-13).”


이 말씀에서 ‘병든 이들’과 ‘죄인’은 ‘모든 사람’을 뜻합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만나셨습니다.
남녀노소, 직업, 신분 등을 따지지 않고 모든 사람을...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께서 바리사이의 초대를 받아서 함께 식사를 하신 일도 많습니다.)


지금 예수님의 말씀에는
“그렇게 말하는 너희는 튼튼하냐?(의인이냐?)” 라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너희도 모두 병든 이들이고, 죄인들이다. 그러니 그런 말을 하면 안 된다.”)
만일에 하느님 앞에서 “나는 의인이다.”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교만과 위선이라는 죄를 짓고 있는 죄인입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라는 말씀에서
‘희생 제물’은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 없는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뜻합니다.
‘자비’ 라는 말은, 회개하면서 참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신앙생활을 뜻합니다.
우리는 하느님 앞에서 모두 다 죄인입니다.
그러니 서로 도와주면서 함께 회개해야 합니다.


“나는 회개할 필요가 없다.” 라는 말도, “너는 회개해도 소용없다.” 라는 말도,
신앙인으로서 하면 안 되는 말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전주교구 신풍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