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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경식 교수가 서울성모병원 호스피스완화의료센터에서 환자를 진찰하고 있다. 남정률 기자 |
“1981년 귀국할 당시만 해도 제가 호스피스를 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귀국 후 가톨릭대 강남성모병원(현 서울성모병원) 종양내과 의사로 암 환자를 진료하면서 죽음을 앞둔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호스피스라는 것을 알게 됐고, 그러면서 차츰 이 길로 들어서게 된 거죠. 제 뜻인 줄 알았는데, 돌이켜 보니 하느님의 뜻이었습니다.”
서울 반포동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호스피스완화의료센터에서 만난 이경식(바오로, 73) 가톨릭대 의대 명예교수가 털어놓은 호스피스와의 첫 인연이다.
한국 교회 호스피스 역사의 산 증인
그가 걸어온 길이 곧 한국 교회 호스피스가 걸어온 길이라고 할 만큼 이 교수는 가톨릭 호스피스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1967년 가톨릭대 의대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혈액 종양학 전문의 자격을 획득한 이 교수는 한국으로 돌아와 가톨릭대 의대에 재직하면서 가톨릭대 의대 호스피스 창설 멤버로 호스피스에 첫발을 내디뎠다. 호스피스라는 용어조차 낯선 때였다.
1988년 국내 최초로 개설된 강남성모병원 호스피스 병동에서 고통받는 말기 암 환자들과 함께한 이 교수는 1998년 한국 호스피스ㆍ완화의료학회를 창설하는 등 호스피스 확산과 법제화에 온 힘을 쏟았다.
「사랑 이야기」 「새로운 생명」 「호스피스 사랑의 노래」 등 7권의 호스피스 체험기를 펴냄으로써 호스피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한 단계 끌어올린 작가이기도 하다.
정년 퇴임 후에도 호스피스 환자 돌봐
이 교수는 2008년 2월 정년 퇴임 후에도 호스피스 환자들과 함께하고 있다.
삼성산호스피스봉사회에서 5년간 무료로 가정 방문 호스피스 봉사 활동을 했고, 퇴임 직후부터 일주일에 두 차례 서울성모병원 호스피스센터에 출근해 환자들을 보살피고 있다.
서울성모병원 가정 방문 호스피스 활동도 병행한다. 나이가 무색한 현역이다.
“정년 후 병원을 떠나고 싶었는데, 호스피스센터의 요청으로 다시 나오게 됐습니다. 1∼2년 하다 그만둘 줄 알았죠. 이렇게 오래 붙잡힐 줄은 몰랐습니다. 제 뜻대로 되는 건 없어요. 다행히 건강은 좋습니다.”
이 교수는 “지나온 모든 것이 하느님의 뜻대로였다”면서 “하느님은 최고의 길을 마련해 주셨다”고 말했다. 비록 그 당시에는 깨닫지 못했지만 돌이켜보면 항상 최고의 것을 베풀어 주셨던 하느님, 이 교수가 믿는 하느님은 그런 사랑의 하느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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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은 나의 힘
이 교수가 수십 년째 한결같은 마음으로 호스피스 환자를 돌보게 하는 버팀목이 돼 준 것은 하느님 신앙이다. 일주일 내내 하루도 빠짐없이 미사를 드리고, 틈만 나면 성체 앞에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시간을 가진다.
성체조배는 고통 속에 죽어가는 환자를 지켜보기가 너무 힘들어 도망치고 싶을 때마다 달려가 매달린 구원의 밧줄이다.
매월 한 차례 포콜라레와 예수의 작은 형제회 모임에 나가 신앙을 다지며, 본당 레지오 마리애 활동을 해온 것도 수십 년째다. 레지오 마리애와 병원에서 매주 갖는 복음 묵상 모임도 빼놓을 수 없는 신앙 여정이다.
“사람은 웬만해서는 잘 변하지 않는데요, 복음 묵상을 하면서 달라지는 모습을 봅니다. 물론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때 가능한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이 신앙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호스피스센터 직원들은 이 교수를 최고의 호스피스 의사로 꼽는 데에 주저하지 않는다.
세심한 검진과 교과서에서도 찾기 어려운 노하우로 좀처럼 통증을 잡기 어려운 환자의 통증을 잘 조절해 환자가 편안하게 지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물론 회진 때마다 환자와 가족들에게 따스한 미소와 대화로 격려를 아끼지 않는 이가 이 교수다.
또 임종이 가까운 환자에게는 가족과 함께 기도를 바치고 하느님과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을 일깨움으로써 마지막 마무리를 잘하도록 돕고 있으며, 후배 의사, 간호사, 자원봉사자 등 호스피스 팀원들의 의견을 잘 들어주고 배려하는 마음 또한 남다르다는 것이 센터 관계자의 귀띔이다.
나의 고통 예수께 봉헌해야
이 교수는 “호스피스처럼 죽음과 부활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는 현장도 없다”면서 생생한 체험담을 들려줬다.
“죽음을 앞둔 환자는 완전히 벌거숭이가 됩니다. 모든 것을 빼앗기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자살하려는 유혹에도 빠집니다. 그러나 그 모든 상황을 하느님께 돌리면 애초 내 것은 하나도 없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런 빈 마음이 되면 세상만사 모두 하느님의 선물이고, 내가 가진 모든 것 또한 하느님의 선물이었음을 알게 되는 거죠. 그러면서 감사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서의 처절한 체험은 환자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하게 만듭니다.”
아무리 그래도 죽음을 앞둔 고통 속에서 하느님을 찬미하기란 쉽지 않을 것 같다. 누구도 고통의 임종 순간을 피할 수는 없는 법. 말기 환자의 죽음을 그 누구보다 많이 지켜본 이 교수에게 어떻게 죽는 것이 그리스도인답게 죽는 것인지 물었다.
“고통을 고통으로만 받아들이면 안 됩니다. 십자가 고통에 동참하는 마음으로 나의 고통을 예수 그리스도께 봉헌할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고통받으셨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그리스도와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느님은 고통 중에도, 죽음의 순간에도 나와 함께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인간적 관점으로는, 머리로는 이해하기 힘든 신앙의 진리입니다. 예수님을 내 목숨만큼 사랑할 때 비로소 알 수 있는 진리입니다.”
내 뜻 아닌 하느님 뜻대로
매일같이 죽음을 목격하는 이 교수는 죽음을 어떻게 준비하고 있을까. 이 교수는 “이왕이면 암에 걸려 죽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그런 지향으로 기도해 왔다”고 대답했다.
“암은 일정한 코스로 진행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임종 시점을 예견할 수 있고 죽음 준비를 가능하게 해 줍니다. 그동안 많은 암 환자와 함께한 저로서는 저 자신 또한 그들이 겪은 고통을 따라 겪는 것이 도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그것도 제 욕심입니다. 하느님이 부르시는 방식대로 따를 뿐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따로 정리할 것도, 남길 유언도 없습니다. 홀가분합니다.”
이 교수는 “하느님께 인간적으로 청하고 기도할 수는 있겠지만 결정은 하느님이 하신다”며 “하느님의 결정은 지금까지 그랬듯 앞으로도 나를 위한 최고의 것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사랑의 하느님에 대한 무한한 믿음이야말로 이 교수가 저렇듯 편안하고 온화한 얼굴로 호스피스 환자를 돌볼 수 있는 비결인 듯싶었다. 그런 신앙을 갖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이 들었다.
남정률 기자 (평화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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