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교회에 기쁜 일이 있었어요. 살아 계실 때부터 ‘콜카타의 성녀’라고 불리던 마더 데레사(1910~1997) 수녀님이 진짜 ‘성녀’가 되셨어요. 2003년 시복(諡福)된 수녀님은 시복된 지 13년 만에 프란치스코 교황님에 의해 성인으로 선포되신 거지요.
한국 교회는 1984년 103위 성인(聖人), 2014년 복자(福者) 124위를 탄생시키는 기쁨을 누리기도 했어요. ‘시복’, ‘시성’이라는 단어는 많이 들어봤지만 시복, 시성에 이르는 과정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거예요. 오늘은 시복ㆍ시성 절차에 대해 알아볼게요.
복자와 성인 차이는 공경의 범위
복자와 성인의 차이부터 알아볼까요. 복자는 목숨을 바쳐 신앙을 지켰거나(순교) 영웅적 덕행으로(증거) 영원한 생명을 얻어, 신자들에게 신앙의 본보기가 된다고 교회가 공식으로 선포한 분들이에요.
성인도 마찬가지예요. 다만 차이가 있어요. 복자는 한 나라 또는 한 수도회 안에서만 공적으로 공경받지만, 성인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전 세계교회에서 공적으로 공경받는 분이죠. 따라서 복자로 선포된 다음에야 성인으로 선포될 수 있어요.
말하자면 복자로 선포하는 시복 단계가 먼저고 그다음에 성인으로 선포하는 시성 단계가 따른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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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 콜카타 사랑의 선교수녀회 한 시설에 걸려 있는 성 마더 데레사 사진. |
복자의 전 단계로는 ‘하느님의 종’과 ‘가경자’가 있어요. 하느님의 종은 시복 추진 대상자에 관한 간략한 전기를 교황청에서 심사한 후 하자가 없다고 판단돼 시복 추진이 승인된 이들에게 붙이는 호칭이에요.
‘가히 공경할만한 대상’이라는 뜻의 가경자는 하느님의 종에 대한 심사를 통해 순교자의 경우 순교 사실이 승인돼 시복이 결정되는 때 붙이는 칭호예요.
증거자(순교는 하지 않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신앙을 고백한 사람)의 경우 영웅적 덕행의 삶을 살았다고 인정될 때 가경자라고 해요.
지난 4월 최양업 신부님이 시복 추진 20년 만에 가경자로 선포되셨죠. 하느님의 종과 가경자는 복자ㆍ성인처럼 공적 공경의 대상은 아녜요.
순교자나 최양업 신부님과 같은 증거자가 시복ㆍ시성 추진 대상자가 될 수 있어요. 시복은 순교 사실, 덕행에 관한 명확한 증거가 있어야 해요. 그 증거를 검토하고 확인하는 과정도 무척 엄격하답니다.
엄격한 시복 시성 절차
어떤 신앙인의 순교 또는 덕행에 대한 평판이 알려지면 대개 그 신앙인이 순교ㆍ선종한 지역의 교구에서 시복을 추진해요. 교구장은 시복을 추진할 청구인을 정해 ‘하느님의 종’의 순교 사실과 덕행을 조사하게 해요.
교구장이 시복 추진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면 조사 과정 보고서, 대상자에 대한 간략한 전기를 작성해 교황청 시성성으로 보내요.
교황청에서 시복을 추진해도 좋다고 하면 교구장은 자료나 증언을 철저하게 심사하고, ‘하느님의 종’의 전구(轉求)를 통해 일어난 기적에 대해서도 조사해요. 전구는 ‘하느님께 빌어주십시오’ 하고 청하는 거예요.
다만 하느님의 종이 순교자일 때는 기적이 없어도 돼요. 이 과정이 끝나면 관련 자료를 다시 한 번 교황청에 보내요.
교황청은 자료를 바탕으로 철저하게 조사를 하고, 기적이 정말 맞는지 심사해요. 모든 내용이 긍정적이라고 판단되면 이를 교황에게 보고하고 교황은 시복ㆍ시성 관련 추기경단과 회의를 거쳐 시복 여부를 결정하죠.
교회법에는 “하느님이 종의 죽음 후에 5년이 경과하지 않으면 소송을 시작할 수 없다”는 규정이 있어요.
한국 교회 124위 복자는 1997년부터 본격적으로 시복이 추진돼 17년 만에 시복식이 거행됐죠. 복자가 시성에 이르는 시간도 꽤 길어요. 한국 교회 103위 성인 중 79위는 1925년, 24위는 1968년에 시복된 분들이에요.
하지만 마더 데레사 수녀님은 이례적으로 선종 2년 만인 1999년부터 시복이 추진됐어요. 당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특전을 허용했기 때문이에요. 특전은 교회법에서 규정하는 것과 다르거나 초월하는 권한을 주는 것을 말해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마더 데레사 수녀보다 더 빨리(선종 직후) 시복이 추진돼, 선종 6년 1개월 만인 2011년 시복되셨어요. 이는 교회가 시복시성절차법을 시행한 이래 가장 빠른 기간이에요. 2014년에 성인이 되셨죠.
복자ㆍ성인의 삶을 본받아야!
시복ㆍ시성은 무척 영광스럽고 기쁜 일이지만 단순히 시복ㆍ시성에만 관심을 두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요. 복자ㆍ성인들의 뜨거운 신앙과 덕행을 기억하고, 그분들의 삶을 본받으려는 노력이 필요하겠죠?
여러분은 한국 교회 103위 성인과 124위 복자 중에 몇 분이나 알고 계신가요? 아마 대부분이 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알고 있을 거예요. 지금부터라도 한국 교회 성인ㆍ복자의 삶을 공부해 보는 건 어떨까요? 신앙생활이 풍성해질 거예요.
임영선 기자 (평화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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