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6년 10월4일 다해 연중 제27주간 화요일(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기념일)

dariaofs 2016. 10. 4. 06:43



성 프란치스코(Franciscus, 또는 프란체스코)는 이탈리아 중부 움브리아(Umbria)의 아시시에서 부유한 포목상인 피에트로 베르나르도네(Pietro Bernadone)의 아들로 태어난다. 그의 부친이 출타 중인 틈을 이용하여 어머니가 요한이란 이름으로 세례를 받게 하였다. 그러나 그의 부친은 프랑스를 좋아했기 때문에 아들의 이름을 프란치스코로 개명하였다.


프란치스코는 젊은 날을 무모할 정도로 낭비하고 노는 일로 보내다가 기사가 될 꿈을 안고 전투에 참가했지만 1202년에 투옥되었다. 석방되어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잠시 옛 생활로 돌아가는 듯 보이다가 중병을 앓았고, 병에서 회복한 뒤로는 딴사람이 되었다.

그는 스폴레토(Spoleto)에서 그리스도의 환시를 보았는데, 이때 “내 교회를 고쳐라”는 말씀을 들으면서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옛 생활을 청산하였다. 그는 버려진 옛 산 다미아노(San Damiano) 성당에서 들은 말씀을 글자 그대로 이해하고, 아버지의 가게에서 물건을 내다 팔아 성당을 수리하려고 시도하였다.


이 사건 때문에 그는 부친과 결별하게 되었고, 허름한 농부의 옷을 입고 ‘가난 부인’을 모시는 통회의 생활을 시작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친구들이 그의 주위에 모여들었고, 3년 후인 1210년에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Innocentius III)가 극도의 가난을 살려는 그와 11명의 동료들을 인정하였다. 이것이 ‘작은 형제회’, 곧 프란치스코회의 시작이었다.

그들의 본부는 오늘날 아시시 교외 천사들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Santa Maria degli Angeli) 안에 있는 포르치운쿨라(Portiuncula) 성당이었다. 이 작고 허름한 성당에서부터 프란치스코가 설립한 수도회는 역사에 그 유례가 없을 정도로 큰 나무로 성장하였다.


이탈리아 내외를 두루 다니면서 형제들은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통회와 보속의 생활을 단순한 말로 가르쳤다. 그들은 재산과 인간적인 지식 소유를 거부하였고 교계 진출 또한 사양하였다. 프란치스코는 사제가 아니었고 다만 부제였다고 한다.

1212년에 그는 성녀 클라라(Clara)와 함께 ‘가난한 부인회’를 설립하였다. 그리고 이때 그는 모슬렘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직접 찾아갈 정도로 선교에 대한 열정에 불타고 있었다.


그래서 1219년에 십자군을 따라 이집트로 갔다가 술탄 말레크 알 카멜의 포로가 되기도 하였다. 그는 결국 사라센 선교가 실패로 끝난 줄 알고 성지를 방문한 뒤에 이탈리아로 돌아왔다.

1217년부터 이 수도회 안에는 새로운 기운이 치솟기 시작하여 조직이 강화되면서 발전의 폭이 커졌다. 관구가 형성되고 잉글랜드(England)를 비롯한 외국으로 선교사를 파견하는 등 참으로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다.


그런데 프란치스코는 스스로 장상직을 사임하였다. 이 또한 역사에 길이 남을 일이었다. 그러나 그의 부재중에 몇몇 회원들이 수도회의 규칙을 완화하려는 움직임이 있음을 알고, 우고리노(Ugolino) 추기경의 도움으로 규칙을 확정짓고 승인을 받았다.

1224년 그가 라 베르나 산에서 기도하던 중에 그리스도의 다섯 상처를 자신의 몸에 입었는데, 이것은 최초로 공식 확인된 오상이었다. 그리스도의 오상은 그의 일생동안 계속되면서 그에게 육체적인 고통을 안겨 주었다.


그는 오상으로 인한 고통 중에도 당나귀를 타고 움브리아 지방을 다니며 계속 복음을 전하다가 기력이 쇠하여지고 눈마저 실명되어 갔다. 그런 고통의 와중에서 이탈리아어로 ‘태양의 노래’를 지었다.

병세가 깊어지자 성 프란치스코는 포르치운쿨라로 숙소를 옮겼다. 미리 유서를 작성하고 자신의 죽음의 다가온 것을 알자 그는 알몸으로 자신을 잿더미 위에 눕혀달라고 하였다.


그리고 수사들에게 요한 복음서의 수난기를 읽게 한 후 시편 43장을 노래하며 1226년 10월 3일 ‘자매인 죽음’을 맞이하였다. 그의 유해는 다음날 아시시에 있는 산 조르조(San Giorgio) 성당에 안장되었다.


성 프란치스코는 2년 후인 1228년 7월 15일 교황 그레고리우스 9세(Gregorius IX)에 의해 시성되었으며, 1230년 5월 25일 그의 유해는 엘리아가 그를 기념하여 지은 프란치스코 대성전의 지하 묘지로 이장되었다.

지금도 성 프란치스코에 대한 공경은 세계 도처에서 활기차게 이루어지고 있고, 그가 세운 재속 프란치스코 회원들도 다른 재속회원과 비길 수 없을 정도로 많아져 그의 성덕을 본받고 가난을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1979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는 그를 생태학자들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하였다. 아시시의 가난뱅이 프란치스코 만큼 교회 안에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은 다시 없을 정도이다. 그래서 그는 '제2의 그리스도'라고 불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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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저는 성 프란치스코 대축일 강론의 주제로

<성 프란치스코와 평화>를 잡았는데 생각해보니

그간 저는 한 번도 이 주제로 축일 강론을 한 적이 없었습니다.

   

프란치스코가 평화의 사도라 불리고

아시시에서 세계종교 지도자들이 평화회의를 여러 차례 했고

올해에도 했음에도 그간 평화를 주제로 축일에 강론치 않았는데

왜 지금 와서 평화를 주제로 강론을 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제가 지금 제주 강정마을 평화 센터의

개원 1주년 세미나 강의를 위해 와 있기 때이기도 하지만

작금의 우리나라 상황이 평화가 위협받는 상황이기 때문이지요.

   

그렇습니다.

평화란 것이 본래 세상이 평화로울 때는 얘기되지 않다가

평화가 위협받거나 전쟁이 일어나고 나서야 얘기되는 거지요.

   

그러니 지금 평화가 많이 논의되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그렇고

국내적으로도 북한의 핵위협과 사드나 강정마을 등의 문제로

평화가 위험에 처해 있음을 피부로 느끼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평화란 평화의 의지가 없으면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위협받고

너무도 쉽게 깨지기 쉬운 것입니다.

평화의 의지가 없으면 우리 안에 전쟁의 의지가 늘 차있기에

아주 사소한 이유로도 평화는 위협받고 전쟁은 일어나게끔 되어있습니다.

   

프란치스코 당시 그리스도교와 이슬람은 성지를 가지고 전쟁을 했습니다.

이슬람이 성지를 점령하자 성지를 탈환하기 위해서

그리스도교 나라들이 십자군 전쟁을 일으킨 것인데

주님의 성지를 탈환하고 보호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키는 것이

주님의 뜻이고, 하느님의 뜻이었겠습니까?

   

사랑과 평화의 가르침을 주님으로부터 받은 그리스도교가

거룩한 이유를 내걸고 전쟁을 벌인 것이고,

지금 이슬람 극단주의자들도 지하드라는 명분하에 성전을 벌입니다.

   

그런데 십자군 전쟁이 한창일 때 프란치스코는 이슬람 술탄을 찾아갑니다.

그는 자신이 높으신 하느님께서 보내신 사람또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절로 여기에 왔다고 하며

아주 열정적으로 하느님에 대해서 얘기를 하였고 술탄을 감동을 받습니다.

   

그래서 술탄은 순교를 각오한 프란치스코를 돌려보내며 선물을 주었고,

프란치스코는 돌아오면서 매일 동쪽을 보며 다섯 번 기도하도록 초대하는

무에진이라는 이슬람의 좋은 기도전통을 배워옵니다.

이것은 후일 프란치스칸들에 의해 삼종기도로 발전하게 되는데

이런 프란치스코에게서 우리는 십자군의 전쟁의지에 반하는

프란치스코의 평화의 의지를 배워야 할 것입니다.

   

다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위해 모든 사람을 형제로 보는 법을

프란치스코로부터 배워야 할 것입니다.

   

모든 다툼과 전쟁은 상대를 악으로 보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너는 악이고 나는 선이라고 하는 것이며

악이기에 너는 제거되어야 하며 제거하기 위해서 전쟁을 벌인다는 것입니다.

   

너는 악이고 나는 선이라는 이런 이분법적인 생각은

모든 근본주의에서 발견되는 것입니다.

10여 년 전 미국 대통령 부시가 북한과 이란을 악의 축이며

그래서 이 두 나라를 제거해야 한다는 주장과 정책을 폈는데

이 부시라는 사람이 바로 개신교 근본주의자였지요.

   

지금 우리나라 대통령과 이 정권을 지탱하는 사람들도

근본주의적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하는데

자기들을 반대하는 사람과 주장은 다 빨갱이로 몰아

북한의 김정은 정권과 함께 제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프란치스코 당시의 십자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당시 우리 교회는 이슬람을 악의 화신이요 짐승’, ‘적그리스도라고 여겼고

십자군 전쟁은 이런 적에게 뺏긴 성지를 순례하는 거라고까지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프란치스코는 그렇게 생각지 않았습니다.

그들도 하느님의 자녀이고,

그래서 원수가 아니라 형제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를 중심으로 보면 나와 다르면 악이고

나를 반대하면 더더욱 악이고 원수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중심으로 보면 나와 다름은 <다른 선>이고,

나를 반대한다 하여 그가 악일 수는 없고 여전히 형제입니다.

   

남북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지은 주의 기도문에서 저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형제를 악으로 보는 악에서 저희를 구하소서.”

하느님과 하느님의 선을 반대하는 것이 악이지

나와 다르거나 나를 반대하는 것이 악은 아니지요.

하느님의 선들을 악으로 보는 내가 오히려 악인 거지요.

   

프란치스코 축일을 맞은 오늘 우리는

평화의지가 없으면 언제든지 전쟁의지가 설치게 됨을 경계하고,

우리 안에는 선을 악으로 보려는 경향이 있음을 직시하며

프란치스코의 평화의지와 형제애로 이것들을 극복해야겠습니다.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