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6년10월15일 다해 연중 제28주간 토요일(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기념일)

dariaofs 2016. 10. 15. 04:52



에스파냐 카스티야(Castilla)의 아빌라에서 태어난 성녀 테레사(Teresia, 또는 데레사)는 알론소 산체스 데 세페다와 그의 두 번째 부인 베아트릭스 다빌라 이 아우마다의 딸이다.


성녀 테레사는 아우구스티누스 수녀들로부터 교육을 받았으나, 건강이 나쁘다는 이유로 1532년에 아빌라에 있던 수녀원을 떠나야 했다.


오랫동안 수도생활을 갈망해오던 그녀는 1536년에 아빌라에서 카르멜 수녀가 되어 다음 해에 서약하였으나, 건강상의 이유로 1538년에 수녀원을 떠났다가 1540년에 다시 들어갔다.

그녀는 1555년과 1556년 사이에 환시를 보았고 신비스런 음성을 들었는데, 알칸타라(Alcantara)의 성 베드로(Petrus, 10월 19일) 신부의 영적 지도를 받을 때까지는 불안에 떨어야 했다. 성 베드로 신부는 그 모든 환시가 진실한 것임을 그녀에게 확신시켰다.


격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그녀는 그 당시의 다소 느긋한 수도생활보다 더욱 엄격한 봉쇄 생활을 원하는 수녀들을 위하여 아빌라에 성 요셉 수도원을 세웠다(1562년).


1567년 카르멜의 총장인 루베오 신부는 성 요셉 수도원과 같이 엄격한 규칙을 따르는 다른 수도원을 세우도록 그녀에게 허락하였으므로,


메디노 델 캄포에 제2의 수도원을 세울 때 십자가의 성 요한(Joannes a Cruce, 12월 14일)이란 젊은 수도자를 만났으며, 1568년에는 두루엘로에 남자를 위한 최초의 수도원을 세웠다(이것이 최초의 개혁 카르멜 수도원이다).

성녀 테레사는 에스파냐 전역을 다니면서 카르멜의 개혁을 위하여 노력하였으나, 1575년의 총회는 그녀의 개혁 그룹을 제한하였다. 1580년까지 카르멜 내부의 보수파와 개혁파간의 투쟁은 격심하였다.


이윽고 그레고리우스 13세(Gregorius XIII)는 맨발의 개혁파를 독립 관구로 인정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테레사는 수많은 편지와 책을 지었는데, 이 모두는 영성 문학의 고전이 되어 널리 읽혀지고 있다. "자서전"(1565), "완덕의 길"(1573), "영혼의 성"(1577) 등이 특히 유명하다.

그리스도교 역사상 가장 돋보이는 신비가 중의 한 명인 성녀 테레사는 지적이고 빈틈없는 사람이었으며, 매력적이나 깊은 영성을 지녔으므로 차원 높은 관상생활과 더불어 수준 높은 활동생활을 성공적으로 조화시켰던 위대한 성녀이다.


그녀는 에스파냐의 알바 데 토르메스에서 선종하였고, 교황 그레고리우스 15세에 의하여 1622년에 시성되었다. 그리고 1970년에는 교황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하여 교회의 여성으로는 최초로 교회학자로 선언되었다. 그녀는 '예수의 성녀 테레사'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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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이 말씀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람들 앞에서 나를 모른다고 하는 자는,

사람의 아들도 하느님의 천사들 앞에서 그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예수님께서 친히 이 말씀을 하셨다고 생각하십니까?

네가 외면하면 나도 너를 외면하겠다는 그런 뜻인데

예수님께서 그렇게 쪼잔하고 쩨쩨하신 분이십니까?

   

성서학자들은 이 말씀을 주님이 친히 하신 말씀이 아니라

초대교회의 믿음과 신앙고백이 반영된 말씀이라고 하지요.

   

그러니까 초대교회에는 몇 가지 신앙고백 형식이 있었는데

예수는 주님이시다.”예수는 그리스도시다.” 같은 것이고,

이런 신앙을 소리를 지르며(환성을 지르며) 고백하였다지요.

   

그런데 사람들 앞에서 주님을 안다고 고백하는 것이

희랍어로는 환성을 지르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그러니까 나는 주님을 안다고 소리 지르며 고백하는 거지요.

   

이것은 박해시대 주님을 모른다고 배교하지 않고

당당히 나는 주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것과 같고

지금 우리로 치면 사람들 앞에서 십자성호를 파리 쫒듯이

또는 부끄러운 듯이 긋지 않고 당당하게 긋는 것과 같은 거지요.

   

그러니까 여기에는 신앙인이라면 죄인인 듯이 기죽지 말고

당당하게 신앙을 고백하라는 초대교회의 가르침이 있는 것인데

제가 불만스러워 하는 것은 옛날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왜 이런 가르침을 부정적으로 표현하느냐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면 지금 길거리에서 일부 개신교 광신도들이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이라고 떠들고 다니는 것과 뭐 다릅니까?

저는 이런 식의 사고방식이나 얘기는 정말 싫고 짜증을 넘어 화가 납니다.

   

사랑하자고 얘기해야 되는데 미워하지 말자고 얘기하고,

사랑이 얼마나 좋은지 얘기해야 되는데 미움이 지옥이라는 얘기나 하고,

예수님 믿는 게 얼마나 복된지 얘기해야 되는데 안 믿으면 지옥 간다고

엄포를 놓아 예수님을 지옥에나 보내는 분으로 왜곡시키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렇게 자신이 없습니까?

예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구원이 그렇게 자신이 없습니까?

예수님의 사랑과 구원을 믿으라고 얘기하면 되지

뭣 하러 안 믿으면 지옥 간다고 굳이 얘기하는 것입니까?

   

며칠 전 젊은 부부를 만났습니다.

사업을 제법 크게 하였는데 사기를 당해서 어려움을 겪다가

건강이 아주 나빠지자 마음을 비우고 회사를 깨끗이 정리한 분들입니다.

   

매달 이자를 수천만 원씩 갚아야 하는 상황에서

아무리 해도 해결 방법이 나오지 않자 비로소 그들은 기도하기 시작했고,

그동안 신앙생활을 얼마나 등한시하고 욕심에 눈이 멀었는지 깨닫습니다.

   

그래서 회사를 팔아 빚잔치를 한 다음 지금은 신앙과 행복을 되찾아

한 편으로는 신앙생활의 복됨에 대해서 사람들에게 증거 하는 삶을 살고

다른 한 편으로는 남은 돈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하려하는데

아직 궁리중이지만 사회적 기업을 하는 것도 그중의 하나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분들은 예수님의 사랑과 구원을 안 믿는 것이 그 자체로 지옥이고

반대로 예수님을 믿는 삶이 얼마나 복된지 경험으로 깨달아

이제는 자기들이 사는 삶의 복됨을 스스로 간증을 한다고 합니다.

   

이래야 합니다.

자신의 믿음과 삶에 자신이 있으면 그 복됨을 얘기하면 됩니다.

   

우리는 오늘, 사람들 앞에서 나의 믿음을 당당히 고백하고,

나의 복됨을 간증할 수 있는지 오늘 복음을 통해 성찰토록 해야겠습니다.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