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6년 10월 24일 다해 연중 제30주간 월요일 (성 안토니오 마리아 클라렛 주교)

dariaofs 2016. 10. 24. 08:53



성 안토니우스 마리아 클라렛(Antonius Maria Claret, 또는 안토니오)은 에스파냐 카탈루냐(Cataluna) 지방의 비크(Vich) 교구 관할인 살렌트(Sallent)에서 직물공의 아들로 에스파냐에서 태어나 1835년에 사제로 서품되었다.


5년 후부터 그는 카탈루냐 전역을 다니며 사목하고 피정을 지도하였다. 그 후 그는 보다 큰일을 해보려고 1849년 7월 16일 다섯 명의 사제들을 모아 설교 활동을 하는 수도회를 세웠는데, 지금은 이 회를 클라렛 선교 수도회(Claretian missionaries) 라고 부른다.

다음 해에 그는 에스파냐의 이사벨 2세(Isabel II) 여왕의 요청으로 산티아고데쿠바의 대주교로 선임되었다. 이 교구의 주민들은 흥분된 상태에 있었다. 그러나 클라렛의 엄격하고 세심한 개혁 운동은 많은 파란을 일으켰다.


그는 신학교 개혁과 성직자 쇄신을 추진하면서 방대한 관할 구역을 수시로 순회하였다.


또한 결실을 많이 얻을 수 있는 농사법을 권장하였고, 가난한 사람들이 그리스도교 가정을 이루는데 도움이 될 협동조합을 결성하도록 도왔다. 이 과정에서 성 안토니우스는 수많은 반대자들의 표적이 되었다.

1857년 교황 비오 9세(Pius IX)에 의해 에스파냐로 돌아온 그는 이사벨 2세 여왕의 고해신부 겸 왕실의 영성 지도자가 되었고, 설교와 간행물을 통한 선교의 중요성을 깨달아 출판사를 설립하여 많은 가톨릭 서적들을 보급하였다.


또한 그는 문화 방면에도 관심이 커 에스코리알(Escorial)에 과학 연구소, 자연사 박물관, 음악 학교, 언어 학교들을 세우고, 바르셀로나(Barcelona)에는 수도자 도서관을 세우기도 하였다.

1868년의 혁명 때 그는 급진주의자들에 의해 추방된 이사벨 여왕과 함께 로마(Roma)로 가서 제1차 바티칸(Vatican) 공의회에 참석하였으나 이후 에스파냐로 돌아가지 못하고 1870년 프랑스 나르본(Narbonne) 근처 프롱프루아드(Frontfroide)의 클라렛 수도원에서 사망하였다.


성 안토니우스는 1934년 2월 25일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시복되었고, 1950년 5월 7일 교황 비오 12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연중 30주 월, 루카 13,10-17

“아브라함의 딸인 이 여자를 안식일일지라도 속박에서 풀어 주어야 하지 않느냐?”(루카 13,16)


                      
                                          Cure of a crippled woman on the sabbath

                               ♣ 관대함과 자비와 희생을 통한 영혼의 치유

예수님께서는 열여덟 해 동안이나 병마에 시달려 허리가 굽어 몸을 제대로 펴지도 못하는 여자에게 “너는 병에서 풀려났다”고 말씀하시면서 “손을 얹으시어”(13,12-13) 치유해주십니다(13,11-13).


그러자 그녀는 ‘즉시 똑바로 일어서서 하느님을 찬양합니다.’(13,13) 예수님께서는 선포하신 하느님의 자비를 실천에 옮기신 것입니다.

우선 이 여자는 허리가 굽어 몸을 펼 수도 없어 자유롭게 행동할 수 없으니 나날이 고통의 연속이었을 것이고 몸뚱이 하나 가누지 못하는 자신을 저주하는 날도 적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한 거동이 불편하니 사람들을 찾아가 생각과 정서를 나누고, 회당에 찾아가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여자의 고통은 육체적 고통과 단순한 관계 단절 그 이상이었습니다.


'허리가 굽어 몸을 조금도 펴지 못한’ 상태는 자유가 구속되고 창조 활동이 멈추어버린 상태를 말하지요.


병상에서 지내온 ‘열여덟 해’는 소외와 속박의 암흑을 헤맬 수밖에 없었던 극한의 비참함과 죽음의 밑바닥을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그녀의 처지를 깊이 헤아리시고, ‘아브라함의 딸’(13,16)이라 불러 그 ‘존귀함’을 소중히 여기시어 치유해주셨습니다.


이 치유는 단순한 육신의 치유가 아니라 절망과의 구렁에 빠진 그녀에게 희망을 불어넣어주고, 소외와 단절과 구속으로 갇힌 영혼에 자유와 해방의 숨결을 불어넣어주신 지고의 사랑입니다.

우리도 매순간 이런 주님의 사랑 속에 살아갑니다. 이런 사랑에 응답하고 그 사랑을 나누고 되돌리는 것이 우리의 소명이지요. 바오로 사도는 이러한 예수님의 사랑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알려줍니다.


먼저 상호간의 관계에서“서로 너그럽고 자비롭게 대하고,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에페 4,32)라고 합니다.

사랑의 마음으로 서로 부드럽고 관대하게 대하는 것이야말로 서로를 하나 되게 하고 살리는 길이 되겠지요.


"자기가 비슷한 경우에 처해 있을 때 자기 자신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것처럼 각 형제에게 자비를 행하고 지니며,


어떤 형제의 죄악 때문에 그 형제에게 화를 내지 말고 오히려 온갖 인내와 겸손을 다하여 너그럽게 권고하고 부축해야 할 것입니다.”(성 프란치스코, 2신자편지 43-44)

다음으로 사도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또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는 향기로운 예물과 제물로 내놓으신 것처럼, 여러분도 사랑 안에서 살아가십시오.”(에페 5,2)라고 권고합니다.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기꺼이 희생할 줄 압니다. 자신을 위해 아무것도 남기지 말고 하느님과 이웃을 위해 내놓는 희생의 삶이 바로 우리가 가야할 길입니다.

끝으로 사도는 “불륜이나 온갖 더러움이나 탐욕, 그리고 추잡한 말이나 어리석은 말이나 상스러운 농담처럼 온당치 못한 것들을 입에 담지 말고 감사의 말만 해야 한다.”(5,3-4)고 가르칩니다.


증오와 살의를 품은 한마디는 사람을 죽음으로 내몰 수 있습니다. 믿는 이들은 사랑어린 말, 선을 지향하는 언어, 감사의 말을 통해 서로에게 희망과 생명을 불어넣어주도록 힘써야겠습니다.

우리 모두 관대함과 자비심과 희생을 실천하고 감사의 말을 통해 주님을 찬양하고, 영혼의 병마에서 서로를 해방시키고 행복해질 수 있길 기도합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