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미와 현대미 조화 이룬 석공예 작품 제작에 헌신
어릴 때부터 돌 좋아해 ‘순돌이’라 불려
신학교 진학했으나 예술 위해 일본유학
2500여 석조 미술 작품 곳곳에 남겨
“일생 동안 도안과 석공예를 중심으로 몰두해 왔고 지금도 내 작품 속에 파묻혀 살고 있으며 종교적으로는 출생 이후 현재까지 천주교 교인으로서 살아왔다.”
여기서 말한 바와 같이 이순석 선생은 독실한 천주교 신자 이병무(李秉武) 선생의 9남매 중 막내로 충남 아산에서 태어났다. 원명은 평래(平來)다.
한국 예술의 태두이며 현대 공예 발전을 이끌었던 거목, 하라(賀羅) 이순석 선생은 대한민국 예술의 원로회원으로서 그 생애를 마칠 때까지 일관된 신앙생활과 고매한 예술의 경지를 소신껏 불태운, 금세기 이 나라의 지울 수 없는 별이었다.
■ 본문
1970년대 초반에 서울 미대 조소과에서는 석조 과목을 개설하면서 나에게 그 교과 담당을 맡겼다. 나는 돌을 깨 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서 꽤 당황스러웠다.
생각 끝에 이 선생의 연구실을 찾아갔다. 각종 돌들이 방안 가득히 널려 있었고, 만들고 있는 작품과 완성된 작품 등을 유심히 바라보니, 그 풍경이 정말 볼 만했다.
“망치를 들고 돌을 때리다 보면 방도가 절로 터득되는 것”이라는 말씀으로 알아듣고 나는 돌 깨는 연습을 시작했다. 돌이라는 재료는 흙처럼 단숨에 되는 것이 아니라서 답답했다. 하루는 구멍을 뚫어야겠는데 며칠을 때려도 쾅 뚫리지가 않았다.
이순석 선생은 우리나라 석공예 분야에서 전무후무한 대예술가이다. 뒤를 잇는 후배가 없음에 늘 섭섭해했다.
그 후 조선으로 돌아와서 골동품 수집을 시작했다.
선생은 호를 ‘하선’(荷仙)이라 했다가 ‘하라’로 고쳤는데, 어느 날 기자가 그 연유를 물었더니, 왜정 때는 ‘해선’ 안 될 일들이 있어서 그런 뜻으로 지은 것이고,
해방이 되면서 이제는 ‘마음껏 하라’는 하늘의 뜻으로 알고 그렇게 지었다고 토로한 걸로 보아서, 그의 민족정신의 일단을 엿볼 수 있다. 훗날 ‘하라 석 미술원’을 개설하면서 인사말로 쓴 글에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말을 적고 있었다.
“원래 천성적으로 돌을 좋아했지만, 돌의 굳건한 의지와 영원함, 그 침묵에 이끌려 돌을 사랑하고 믿음이 깊어지면서 돌 미술은 나의 전부가 되어 버렸다. 조상의 빼어난 슬기와 솜씨가 빛나는 석조미술의 전통을 오늘에 되살리고….”
이순석 선생의 일생을 압축한 선언문같이 들린다. 그는 3000여 점의 작품을 남겼는데, 그중 2500점이 돌공예품이라 한다. 아무도 손댄 일이 없는 그런 분야를 평생의 업으로 삼고 흔들림 없이 온 생을 통해서 그 일을 완수했다.
그의 애정 어린 돌 작품들을 바라보고 있으 면, 민족의 얼과 현대적 미가 어울려 살아 숨 쉬는 숭고한 드라마를 연출하고 있는 것을 금방 알아볼 수 있다.
선생네는 원래 서울 남산골(지금의 명동)에서 살았다. 그러다가 천주교 박해를 피해서 충남 아산에 은거하던 중에 이순석이 태어났다.
그는 어릴 때부터 돌을 가지고 놀기를 좋아해서 ‘순돌’(順石)이라 불리었다. 그 ‘순돌’이란 이름으로써 돌 예술가로 명성을 떨치게 되었으니, 사람의 운명이란 참으로 묘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그는 아산 공세리본당에서 서양 신부의 사랑으로 음악과 미술과 영적 지도를 받게 되었고, 그 후 신부가 될 꿈을 안고 서울로 올라와 대신학교까지 가게 되었다.
그러나 주변의 강력한 권유들이 있어서 타고난 재주를 키우고자 동경으로의 유학길에 올랐다 하니, 그에게는 예술과 종교가 처음부터 하나되게 태어난 것이 아닌가 싶다.
언젠가 김덕근 신부를 만나러 후암동성당에 갔더니 이순석 선생의 제대가 있는 것이 아닌가. 나중에 알고 보니 후암동성당은 선생의 지휘 하에 지어졌고, 그는 초대회장으로 23년간 봉사했다.
그에 앞서 1935년에는 약현성당에서 ‘베드로상’과 ‘바오로상’ 두 점을 유화로 그려서 걸었다 했는데, 지금은 그 행방을 알 수가 없다.
또 한 번은 최광연 신부를 만나러 성수동성당에 갔더니, 그곳에 오석으로 된 제대가 있었다. 바로 이순석 선생의 작품이었다.
절두산성당 마당에는 오석으로 된 커다란 순교자상이 서 있고, 청담동성당과 한강성당 등지에도 작품들이 있다 하는데, 선생이 교회에서 한 일이 얼마나 있는지 정리가 안 되어 다 알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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