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암브로시우스(Ambrosius, 또는 암브로시오)는 갈리아(Gallia)의 지방 장관으로 재직한 아우렐리우스의 아들로 339년 독일 남서부 트리어(Trier)에서 태어났다.
그는 부친이 사망 후 로마(Roma)에서 인문 교육을 받아 수사학과 법학 외에 그리스어에도 능통하였다. 가문의 전통에 따라 그는 국가 관리의 길을 택해 뛰어난 실력과 좋은 가문을 배경으로 빨리 출세하였다.
시르미움(Sirmium, 오늘날 유고슬라비아의 미트로비카)의 지방 법원에서 잠시 근무를 하다가 지방 장관 프로부스(Probus)의 고문이 되었고, 그의 추천으로 370년에 에밀리아 리구리아(Aemilia-Liguria)의 수도인 밀라노의 집정관이 되었다.
암브로시우스가 그 지방을 다스리던 때 밀라노에는 서방 교회 아리우스주의(Arianism)의 대표자인 아욱센티우스(Auxentius)가 주교로 있었다. 아욱센티우스는 발렌티니아누스 1세 황제의 도움으로 교회에서 파문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죽을 때까지 밀라노의 주교로 재직하였다.
그러나 그가 죽자 후임자를 선출하는 과정에서 아리우스주의자들과 정통 교리를 따르는 신자들 사이에 격렬한 대립이 발생하였다.
집정관인 암브로시우스는 밀라노의 질서 회복을 위해 이 문제에 개입하였다. 아리우스주의자들과 정통 교리를 따르는 신자들을 중재하면서 암브로시우스는 성당에 모여 있던 신자들에게 평화적 방법과 대화를 통해 화해를 추구하자고 연설을 하였다.
이때 뜻밖에 시민들의 절대적인 지지로 암브로시우스가 주교로 선출되었고 그는 할 수 없이 수락했다. 왜냐하면 그 당시 암브로시우스는 세례를 받지 않은 예비신자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니케아(Nicaea) 공의회의 결정을 따르는 주교로부터 세례성사를 받은 뒤, 8일 후인 373년 12월 7일 주교품을 받았다.
주교직은 막중한 책임이 따르는 지위이다. 그리고 밀라노는 로마제국 서부 지역의 행정적인 중심지였기 때문에 주교 역시 불가피하게 정치에 개입되어 있었다.
홍수처럼 밀려드는 개종자들, 수없이 많은 이교도들 그리고 아리우스 이단에 동조하는 그리스도인들 등 모든 문제를 새 주교인 암브로시우스가 해결해야만 했다.
주교가 된 후 성 암브로시우스는 자신의 부족함을 고백하며 자신의 모든 재산을 가난한 이들을 위해 희사하고, 수도자와 같이 청빈과 극기의 생활을 하면서 신학, 성서 등을 연구하였다.
그에게 신학을 가르쳐 준 사람은 훗날 그의 후계자가 된 심플리키아누스(Simplicianus) 신부였다. 그는 오래지 않아 당대의 유명한 설교자가 되었고, 아리우스를 반대하는 서방 교회의 가장 영향력 있는 지도자가 되었다.
성 암브로시우스가 주교품을 받은 지 약 1년 만에 발렌티니아누스 1세 황제가 사망하고, 그의 아들 그라티아누스가 황제가 되었다. 새 황제의 고문관이 된 암브로시우스는 황제를 설득하여 니케아 신앙 고백을 따르도록 하고 서방에서 아리우스파를 축출하는 법안을 만들게 하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황제가 전투에서 막시무스에게 살해되자 암브로시우스는 또 다시 막시무스를 설득하였다.
또한 그는 로마의 원로원 회의실에 승리의 여신상과 제단을 재건하려는 로마 시 집정관 심마쿠스(Symmachus) 일파의 시도를 분쇄하는데 성공하였으며, 385년에는 발렌티니아누스 2세의 어머니로 아리우스주의 추종자인 황후 유스티나에 의해 일단의 무리들에게 밀라노의 성당들을 아리우스주의자들에게 내주라고 명한 발렌티니아누스 황제의 명령에 성공적으로 저항하였다.
390년 테살로니카인들이 폭동을 일으켜 로마 총독을 살해하자 그에 대한 징벌로써 테오도시우스 1세 황제가 군인들에게 진압을 명령했을 때, 군인들의 무차별 진압으로 7,000명이 살해당하였다. 이에 성 암브로시우스는 황제에게 범죄의 중대함을 알리는 편지를 썼다.
그 편지에서 암브로시우스는 참회의 필요성을 깨닫게 하고 공식 참회 행위로 보속해야만 용서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황제는 이에 순순히 응해 성탄 때 제복을 벗고 참회복으로 갈아입고 통회하였다. 암브로시우스는 항상 다음과 같은 원칙 밑에서 행동하였다. “황제는 교회 안에 있다. 그는 교회 위에 있을 수 없다.”
393년 발렌티니아누스 2세가 갈리아에서 아르보가스투스들에 의하여 살해되었는데, 그들의 대표자 에우게니우스는 우상 숭배를 재건하려고 시도하는 무리들이었다.
성 암브로시우스는 그들의 살인과 공격을 공개적으로 비난함으로써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마침내 제국 내에서 우상 숭배를 완전히 없애버렸다.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수개월 후에 죽게 되자, 성 암브로시우스가 그의 장례 때 기도하고 설교하였다. 성 암브로시우스도 그 후 2년 뒤에 밀라노에서 운명하였다.
성 암브로시우스는 초기 교회의 가장 위대한 인물 가운데 한 분이며, 로마 제국이 쇠퇴해 가던 서방 세계에서 그리스도 교회의 부흥을 새로운 단계에 돌입시킨 분이시다.
또한 세속의 권위에 대항하여 교회의 독립과 자주성을 옹호했던 행정가이면서도 성서, 신학, 신비신학 등 설교를 중심으로 설파한 그의 지식 또한 괄목할만하였다.
그는 설교를 통해 이단에 빠져있던 성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8월 28일)를 이끌어 가톨릭 신앙을 고백하도록 했으며, 387년 그에게 세례를 주었다. 이 사건은 그 당시의 사회를 온통 뒤흔들어 놓은 놀라운 일이었다.
그래서 성 암브로시우스는 성 아우구스티누스, 성 히에로니무스(Hieronymus, 9월 30일), 교황 성 대 그레고리우스 1세(Gregorius I, 9월 3일)와 함께 서방 교회의 4대 교부 가운데 한 분으로 추앙받는다. 또한 그의 저서 중에 “신비에 대해서”란 책이 있는데, 여기서는 주로 세례, 견진 그리고 성체에 대한 글이 실려 있다.
그는 시편을 대중적인 찬미의 기도로 활용하도록 가르친 첫 번째 인물이다. 그의 주요 저서로는 “성직자들의 직무론”(De Officiis Ministrorum), “동정녀”(De Virginibus), “신앙론”(De Fide) 등이 있다.
강론 : (마태 11,28-30)
<안식>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마태 11,28-30).”
이 말씀에서 ‘안식’은
예수님께서 주시는 ‘구원의 은총’을 뜻합니다.
그 구원은 지금 여기서 시작되고 하느님 나라에서 완성될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멍에와 짐에서 해방되어서 안식을 얻는 일도
지금 여기서 시작되어서 하느님 나라에서 완성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통해서 안식을 얻게 되는데,
살아서는 고생만 하다가 죽어서 저 세상에 가서야 안식을 얻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부터
안식을 누리게 됩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신앙생활 자체가 곧 안식입니다.)
‘짐’과 ‘멍에’를 좁은
뜻으로 생각하면,
‘무거운 짐과 멍에’는 구약시대 때부터 사람들을 억압해 온
온갖 율법들과 규정들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내
멍에’는 예수님의 계명들과 가르침들로 해석되는데,
이렇게 해석하면 예수님의 말씀은,
율법주의에 짓눌리고 있었던 사람들에게 해방을
선포하신 말씀이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해석할 때 조심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계명들과 가르침들을 ‘내 멍에’ 라고 표현하셨다고 해서
진짜로 멍에는 아니라는
점입니다.
예수님의 계명들과 가르침들은 결코 멍에도 아니고 짐도 아닙니다.
우리에게 ‘안식’을 주는 열쇠입니다.
예수님은 더
무거운 멍에를 벗기고 덜 무거운 멍에를 주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를 짓누르는 멍에 자체를 없애 주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라는 말씀은,
“내가 주는 계명들과 가르침들은
멍에와 짐에서 너희를 해방시켜 주는 편안함이고
가벼움이다.”로 해석됩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안식을
얻으려면,
그분이 주시는 멍에를 메는 일을 감수해야 한다.” 라고 해석하는 이들이 있는데,
이런 해석은 잘못된
해석입니다.
아무리 가벼워도 멍에는 멍에입니다.
안식은 멍에를 통해서 얻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계명들과 가르침들은 우리가
감수해야 할 멍에가 아니라,
기뻐하면서 참여해야 할 해방이고 자유입니다.
“원수를 사랑하여라.” 라는 예수님의 계명을 예로
들면,
이 계명 실천은 우리가 감수해야 할 멍에가 아니라,
우리를 증오심과 적대감이라는 멍에에서 해방시켜 주는 열쇠가
됩니다.
원수를 사랑하려고 노력함으로써 참 자유와 해방과 안식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짐’과 ‘멍에’를 넓은
뜻으로 생각하면,
인생살이에서 겪는 온갖 고난과 시련들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내 멍에’는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신앙생활로 해석됩니다.
이렇게 해석하면 예수님의 말씀은, 글자 그대로 ‘메시아의 복음 선포’가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해석할 때에도
조심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안식’은 세속적인 부귀영화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멍에에 관한 말씀은 십자가에
관한 말씀과 함께 생각해야 합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마태
16,24).”
이 말씀에서 “내 뒤를
따라오려면”을
“내가 주는 안식을 얻으려면”으로 바꿔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께서 주시는 참된 안식을 얻기를
바란다면,
자신을 버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지는 십자가는 멍에인가, 아닌가?”
십자가는 멍에가 아닙니다.
우리를 멍에에서 해방시켜 주고, 우리에게 자유를 주는
열쇠입니다.
만일에 십자가를 멍에라고만 생각한다면,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는 일은 아주 괴로운 중노동이 되고 말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견디기 어려운 고역(苦役)으로 변해버릴 것입니다.
물론 각자 지고 가는 십자가가 힘들고 어렵고 괴로울 때가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도 십자가는 멍에가 아닙니다.
믿음이 있고, 희망이 있고, 사랑이 있다면,
십자가를 지고 가는 일도
‘기쁨’으로 할 수 있습니다.
그때 신앙생활은 기쁨 가득한 생활, ‘신나는 생활’이 됩니다.
신앙인들도 몸이 이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고통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인간 세상에서 여러 가지 어려움들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신앙생활은 믿음과 희망과 사랑으로 그런 어려움들을 극복하는 생활입니다.
그런 어려움들을 극복하는 과정이 곧
십자가입니다.
(고난과 시련이 십자가가 아니라, 그것들을 극복하는 과정이 십자가라는 것.
종교박해를 예로 들면, 박해가 십자가가
아니라,
박해를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앙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일이 십자가라는 것.
바로 그런 점에서 십자가는 멍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말로 중요한 점은,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지고 가는 십자가는
‘예수님과 함께’ 지고 간다는
점입니다.
(우리를 내버려 두시는 주님이 아니라는 것.)
시편 작가는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제가 비록 어둠의 골짜기를 간다 하여도 재앙을 두려워하지 않으리니
당신께서 저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막대와 지팡이가 저에게 위안을 줍니다(시편 23,4).”
이 시편에서 말하는 ‘어둠의 골짜기, 재앙’을 ‘멍에,
짐’으로,
‘두려워하지 않음, 위안’을 ‘안식’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함께 계시는 것 자체가 안식입니다.
(또는
주님께서 함께 계신다는 믿음 자체가 안식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전구교구 신풍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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