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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신년 대담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에게 듣는다

dariaofs 2017. 1. 4. 00:30
어둠이 빛을 이겨본 적 없어, 희망으로 빛을 증언하는 사람 돼야


2017년 정유년(丁酉年) 새해가 우리 곁을 찾아왔다. 한국 사회에 드리워진 어둠이 쉬이 물러날 것 같지 않아 무거운 마음으로 맞는 새해 아침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희망을 좇아 하느님께 매달리는 이가 그리스도인이 아닐까.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은 새해 인터뷰를 통해 “어둠이 빛을 이겨본 적은 없다”며 하느님께 희망을 두라고 용기를 북돋웠다. 




성문은 닫혔지만 화해와 용서의 문 닫지 말아야



새해를 맞으며 지난 한 해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가톨릭교회는 2016년 ‘자비의 특별 희년’을 지냈다.


자비의 특별 희년은 2015년 12월 8일 시작했는데 이날은 교회가 역사 안에서 새로운 길을 걷도록 이끈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막을 내린 지 50주년이 되는 날이다.


염 추기경은 “교회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50주년을 기념하며 자비의 특별 희년을 선포한 것은 신자 개개인의 회심이 하느님 자비 앞으로 이끌고, 그 자비만이 우리를 온전히 변화시키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교황님께서 ‘특별히’ 자비의 희년을 선포한 것은 신자들이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를 체험하고, 이를 통해 기쁘고 활기찬 신앙생활을 해나갈 수 있도록 하려는 데 있습니다.


교황님은 희년 선포 칙서 「자비의 얼굴」에서 토마스 아퀴나스의 통찰을 빌려 ‘하느님의 고유한 본질은 자비를 베푸시는 것이고, 자비 안에서 하느님의 전능이 드러난다’고 밝혔습니다.


교황님은 ‘당신 백성에게 자비하고, 너그럽고, 분노에 더딘 분이 하느님(탈출 34,6)이고, 하느님 자비의 얼굴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했습니다.


하느님은 심판하고 벌하기에 앞서 연민과 자비로 우리를 끝까지 용서해주시고, 특별히 힘없는 사람들에게 기쁘게 자비를 선포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염 추기경은 2016년 11월 20일 바티칸에서 거행된 자비의 특별 희년 폐막 예식에도 참석했다. 염 추기경은 “성문(聖門)은 닫혔지만 화해와 용서의 문을 결코 닫아서는 안 된다고 한 교황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교황님은 주님께서 우리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하시듯, 우리도 차이와 악을 뛰어넘어 타인에게 희망과 기회를 줘야 한다고도 강조하셨습니다.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주님의 자비를 체험한 우리가 애써야 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가깝게는 내 가족과 주위 사람들에게 이를 실천하길 바랍니다.”

  

미사는 새로운 복음화의 중심


새해를 맞아 서울대교구가 발표한 2017년 사목교서 주제는 ‘미사는 새로운 복음화의 중심’이다.


올해 사목교서 주제를 미사로 정한 배경에 대해 염 추기경은 “미사의 핵심은 일치이기 때문”이라면서 “주님께서는 미사 안에서 현존하시며 우리를 거룩하게 해주시고, 우리가 한마음 한뜻이 되도록 인도해주신다”고 강조했다.


“2000년 전 배경과 기질이 서로 다른 제자들을 하나로 불러모으신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서로 다른 우리가 신앙 안에서 하나가 되도록 미사 안에 현존하시며 이끌어주고 계십니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인 교회가 주님과 일치를 이루면서 형제적 공동체의 모습을 가장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이 미사입니다. 주님은 우리 모두가 당신과의 일치 안에서 가족과 같은 교회 공동체를 이루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사람이 가정 안에서 육체적ㆍ정신적으로 성장하듯이 신앙인은 교회 공동체 안에서 신앙적ㆍ영적으로 성장하기 때문입니다.”


염 추기경은 최근 한국인 절반 이상이 종교가 없다고 대답한 통계청 발표에 우려를 나타냈다. 이와 같은 결과는 통계 조사가 시작된 이래 처음이다. 특히 종교가 없다고 한 이들 가운데 10대와 20대 비율이 높았다.


염 추기경은 “개인주의 성향이 늘면서 세상은 점점 종교를 찾지 않고 있다”고 진단하며 “우리 신앙인이 진정으로 교회 안에서 하나 되고 일치할 때 교회 밖 사람들이 하느님 나라를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염 추기경은 한국 교회 초기 신앙 공동체 이야기를 꺼냈다. 사제 한 명이 전국의 신자들을 만나느라 신자들은 1~2년에 한 번 겨우 미사를 드릴 수 있었던 역사를 기억했다.


“그 시절에 우리의 신앙 선조들은 귀천에 상관없이 사람들을 따스하게 보듬고 소외된 이웃을 돌봤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천주교에 귀의한 사람도 적지 않았습니다. 이런 신앙 선조들을 본받아 우리 신앙인이 진정한 신앙으로 하나 될 때, 세상의 더욱 많은 이들이 복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염 추기경은 “올 한 해 미사 안에서 더욱 일치하는 교회 공동체가 되면 좋겠다”고 바람을 드러냈다.

 

생명의 문화로 죽음의 문화 극복해야


생명과 가정 문제는 염 추기경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지원해온 사목이다. 특히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생명 운동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럼에도 세상은 여전히 반생명적이고 반윤리적인 배아줄기세포 연구, 낙태, 인공수정, 안락사 등을 거리낌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 이에 염 추기경은 “생명에 대한 경외심을 갖고 교만을 경계해야 한다”고 일침을 놓았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시고 관장하시는 생명의 존귀함과 신비를 잊지 않고 이것을 해치는 것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생명을 위협하는 온갖 죽음의 문화에 영향을 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OECD 국가 중 최고의 자살률을 유지하고 있으며, 특히 노인 자살률이 급속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미’ 한 사람인 인간 배아의 조작과 파괴를 전제로 하는 배아줄기세포 연구가 난치병 치료와 국가 경쟁력 강화라는 이름으로 승인된 것도 심히 우려스럽습니다.


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우리 사회에서 병약한 노인들과 불치병 환자들은 더 큰 사랑과 보살핌을 받아야 하지만, 이 귀중한 생명을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짐처럼 여기는 현실은 우리 시대 죽음의 문화의 일면입니다.”

 해법은 없을까. 염 추기경은 “기도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그러고는 “죄 많은 인간을 위해 사람으로 오셔서 돌아가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십자가 아래서 생명의 고귀함을 깨달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죄 많은 인간을 위해 사람으로 오셔서 돌아가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십자가 아래서 생명의 고귀함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을 따라 희생과 사랑을 실천해야만 온갖 죽음의 문화가 판치는 이 세상에 생명의 문화를 건설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염 추기경은 “우리 사회가 죽음의 문화를 극복하고 약한 생명을 보호하며 새 생명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진리 안에서 참된 행복을 추구할 수 있도록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앞장서자”고 당부했다.


가정 문제에 관해서는 “현대 사회가 잊고 사는 가치를 재인식하는 교육과 세심한 가정사목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염 추기경은 지난해 연말 ‘가정’을 주제로 스리랑카에서 열린 제11차 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FABC) 정기총회에 참가했던 시간을 되짚었다.


제11차 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 정기총회 주제는 ‘아시아의 가톨릭 가정 : 자비의 사명을 실천하는 가난한 가정 교회’였다.


염 추기경은 “물질 중심주의, 이기주의가 인간 소외를 낳고 있는 오늘날, 주님의 자비를 전하고 신앙을 키워가는 못자리인 가정의 중요함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한국 사회를 보더라도 이혼율과 자살률이 높고, 결혼이 늦어지는 것에 따른 저출산 문제도 심각합니다. 이렇듯 가정이 깨져나가는 상황에서 우리 교회가 노력할 부분이 무엇인지 고민이 많습니다.


근본적으로 예비부부를 위한 혼인교리, 모든 가족 구성원을 대상으로 한 생명교육 등 현대 사회가 잊고 사는 가치를 재인식하는 교육과 세심한 가정사목 서비스를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가정이 성사 안에 머물게 하고, 복음 안에 살 수 있도록 가족 구성원을 교회로 이끄는 동시에 언제 어디서든 교회 가르침을 접할 수 있도록 하는 다양한 사목 서비스도 필요해 보입니다.”



▲ 염수정 추기경은 무상으로 체험한 하느님 자비를 먼저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 실천할 것을 당부했다. 사진은 염 추기경이 지난해 11월 13일 명동대성당 자비의 특별 희년 성문을 닫는 예식을 거행하고 신자들을 축복하는 모습. 가톨릭평화신문 DB


 

북녘 땅의 신앙 간직한 이들을 기억해야


새해는 평양교구 설립 90주년을 맞는 해이기도 하다. 한국전쟁 발발 전 북한 지역엔 57개의 성당과 5만 명이 넘는 신자가 있었다.


그러나 전쟁으로 많은 신자와 수도자, 성직자들이 목숨을 잃었다. 평양교구장 자리도 공석이 됐다. 이에 서울대교구장은 평양교구장 서리를 맡고 있다.


염 추기경은 “북한 지역엔 여전히 본당 57곳이 설정돼 있고 우리가 만나지 못한 신자들이 어딘가에 분명히 있다”면서 “그곳에 교회가 있었고 아름다운 신앙을 간직한 이들이 주님을 찬미했다는 사실을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야만 북한 지역에 다시 복음의 기쁨이 가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저는 매일 아침에 기도하면서 북녘땅에 살고 있는 주민들과 어려움 속에서 신앙을 지켜가고 있을 신자들을 위해 묵주기도를 바치고 있습니다.


서울대교구 신자들은 형제와 같은 평양교구 신자들을 잊지 않기 위해 ‘내 마음의 북녘 본당 갖기 운동’도 진행해왔습니다. 마음으로부터 북녘땅에 사는 북한 주민들을 기억하고 그들에게 평화를 빌어주는 구체적 실천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서울대교구는 통일이 되면 평양교구에서 사목할 사제를 양성하고 있다. 염 추기경은 여전히 신앙의 끈을 놓지 않았을 북한 신자들을 향해 “여러분을 위해 남녘에서 끊임없이 기도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음을 잊지 말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재 남북 교류는 단절됐고 통일의 길은 멀고도 험난하다. 염 추기경은 “교회의 힘만으론 주변국과 민족 내부의 문제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문제를 풀 수 없지만, 교회가 평화에 대한 영감을 주는 가장 중요한 역할은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교회가 많은 사람에게 평화를 사랑하고, 평화를 실천하고, 평화를 전파하도록 영감을 주는 가장 중요한 역할은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기도를 통해 북녘땅에 살고 있는 모든 이가 하느님의 자비하심을 느끼며 평화롭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주님께 간구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매일 이렇게 기도한다면 서로 미워하고 대결할 일이 없을 것입니다.”


염 추기경은 미사 중 성체를 모시기 전 평화의 인사를 나누는 시간을 상기시켰다. 


 “평화의 인사는 이웃에게 하느님의 축복을 전해주는 것”이라며 “이는 평화가 개인의 소유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며 공동체적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예식”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대화와 타협, 그리고 타인에 대한 관용에서 오는 관계의 평화가 우리 사회에 뿌리내린다면 한반도 평화도 자연스럽게 정착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세상의 등불이 되길


이 밖에도 염 추기경은 ‘최순실 게이트’로 휘청거린 국민과 한국 교회 신자들에게 덕담으로 ‘어둠이 빛을 이겨본 적이 없습니다’라는 요한복음 1장 5절 말씀을 골랐다. 


 염 추기경은 “세례자 요한처럼 우리는 빛을 증언하는 사람이 돼야 한다”면서 “주님 안에서 항상 희망을 가지고 주님의 자비와 사랑을 이웃에 실천하는 한 해를 보내길 바란다”고 했다.


또한 가톨릭평화방송ㆍ평화신문에 대해서도 “교회의 목소리를 정확하게 듣고 전해주는 진정한 가톨릭 언론으로 남아 평신도와 수도자, 성직자들의 등불이 돼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남정률 기자 (가톨릭평화신문)

사진=이힘 기자 (가톨릭평화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