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7년 1월 1일 가해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dariaofs 2017. 1. 1. 00:30



                                                                  (루카 2,16-21)


<평화>


“그리고 서둘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운 아기를 찾아냈다.
목자들은 아기를 보고 나서,
그 아기에 관하여 들은 말을 알려 주었다(루카 2,16-17).”


여기서 ‘그 아기에 관하여 들은 말’은 천사가 목자들에게 해 준 말입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보라, 나는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한다.
오늘 너희를 위하여 다윗 고을에서 구원자가 태어나셨으니, 주 그리스도이시다.
너희는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보게 될 터인데,
그것이 너희를 위한 표징이다(루카 2,10-12).”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들었으니 목자들의 마음은 기쁨으로 가득 찼을 것입니다.
그러면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본 다음에 그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아기 예수님은 구유에 누워서 잠들어 있고,

마리아와 요셉은 그 옆에서 예수님을 굽어보고 있는 장면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평화’입니다.
목자들의 마음에도 평화가 가득 찼을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아기를 보고 나서’ 라는 말을,
“아기에게 경배를 드리고 나서” 라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목자들이 구유에 누워 있는 메시아를 ‘구경’만 했다고 생각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들은 동방박사들처럼 비싸고 귀한 예물을 드리지는 못했겠지만,
자기들 나름대로 뭔가 정성껏 예물을 드렸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만일에 믿음도 없고, 평화를 바라지도 않는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았다면,
예수님과 성가정의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모습 때문에 실망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목자들은 천사가 자기들에게 말한 대로 듣고 본 모든 것에 대하여
하느님을 찬양하고 찬미했습니다(루카 2,20).


그것은 그들의 마음이 기쁨과 평화로 가득 찼음을 나타냅니다.


천사가 목자들에게 기쁜 소식을 알려 준 다음에
수많은 천사가 나타나서 이렇게 찬미했습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루카 2,14)”


여기서 말하는 ‘평화’는, 하느님의 축복을 총체적으로 표현하는 말인데,
이것은 하느님께서 당신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은총의 선물입니다.


구유에 누워 있는 예수님의 모습은, 어떤 속된 욕망이나 이기심 같은 것도 없고,
권력이나 재물 같은 세속적인 힘도 전혀 없는 모습인데,
‘참 평화’는 그런 세속적인 것들로는 얻을 수 없음을 나타냅니다.


그런 점에서 예루살렘 입성 장면이 연상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아직 아무도 탄 적이 없는 어린 나귀’에 올라타셨습니다(루카 19,30).


예수님께서 올라타신 ‘어린 나귀’는 겸손과 평화를 상징합니다.
(‘구유’도 겸손과 평화를 상징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세속의 왕들과 장군들이 타는 군마(軍馬)는 교만과 전쟁을 상징합니다.


예루살렘 입성 때 사람들은 이렇게 찬미했습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임금님은 복되시어라.’
하늘에 평화, 지극히 높은 곳에 영광!(루카 19,38)”


이 찬미는 목자들이 들었던 천사들의 찬미와 많이 비슷합니다.
어떻든 예수님은 ‘평화의 왕’이신 분입니다.
우리에게 평화를 주시는 주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일흔두 제자’를 파견하실 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태오복음에서는 열두 사도를 파견하실 때 하신 말씀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먼저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하고 말하여라.
그 집에 평화를 받을 사람이 있으면 너희의 평화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고,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되돌아올 것이다(루카 10,5-6).”


다른 사람에게 평화를 빌어 주는 일은 모든 신앙인의 임무입니다.
그런데 평화를 빈다고 해서 무조건 평화가 내리는 것은 아닙니다.


받는 쪽에서 평화를 잘 받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평화를 빕니다.” 라는 말은 “하느님의 축복을 빕니다.” 라는 뜻도 됩니다.
하느님의 복을 받으려면 하느님 뜻에 합당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라고 인사할 때,
우리는 어떤 ‘복’을 빌어주고 있는가?
또 어떤 복을 받기를 바라는가? 를 반성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돈인가, 권력인가, 세속의 명예인가?
그런 것들은 겉으로는 ‘복’처럼 보이겠지만,
하느님께서 주신 것이 아니라면 ‘복’이 되기는커녕 ‘화’가 될 수도 있습니다.


신앙인이 서로 빌어주어야 할 ‘복’은, 또 받기를 바라는 ‘복’은,
‘주님께서 주시는 참 평화’이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 설교의 참 행복 선언에서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마태 5,9).”
이 말씀은, “평화의 실현을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들은
하느님의 자녀가 될 것이기 때문에 복된 사람들이다.” 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을 반대로 생각하면, 평화의 실현을 거부하거나 반대하는 사람들은
하느님의 자녀가 될 수 없다는 경고 말씀이 됩니다.


온갖 부정한 방법으로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자들,
그 과정에서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을 착취하고 억압하는 자들,
자신의 탐욕 때문에 다른 사람의 평화를 파괴하는 자들,
그런 자들은 회개하지 않는다면 하느님 나라의 참 평화를 얻지 못할 것입니다.


지금은 모든 것을 가졌다고 생각하겠지만,
언젠가는 그것들이 모두 먼지처럼 사라지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참 평화를 얻지 못하는 것은 모든 것을 잃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뒤에,
제자들은 두려움 때문에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숨어 있었는데,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오셔서 그들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한 20,19).
이 말씀은 단순한 인사말이 아니라, 그들에게 평화를 주시는 축복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게 된 제자들의 마음에는 기쁨이 가득 찼고,
그 믿음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화를 얻게 되었습니다(요한 20,20).


주님의 평화를 받은 것은 모든 것을 얻은 것과 같습니다.
더 바랄 것이 없는 행복한 상태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주님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아까워하지 않고 바칠 수 있는
위대한 사도들로 변화되었습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전주교구 신풍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