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 획 특 집

[가톨릭, 리더를 만나다] (3) 봉두완 다윗 (성 라자로 마을 돕기 회장)

dariaofs 2017. 1. 2. 20:04
안녕하십니까? 봉두완이 바라본 오늘의 삶, 기도하고 실천하며 사십시오!




소위 ‘이름값’을 하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사람이 돈과 시간, 명예를 모두 내려놓기는 쉽지 않다. 주변에 알아주는 사람이 없으면 고독해지고 우울해지는 것도 노욕(老慾)의 한 원인이 된다.


특히 물질적인 탐욕은 내려놓기 어려워 노추(老醜)의 극단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언론인과 정치인으로 역동적인 삶을 살았지만 이제는 모두 내려놓은 이가 있다. 하지만 신앙인의 삶은 내려놓지 않았다.


하느님을 닮은 가난하고 소외된 약자들을 향한 열정은 여전히 뜨겁다. 46년 동안 성 라자로 마을에서 한센병 환자들을 돕고 있는 봉두완(다윗) 한미클럽 회장이다. 봉 회장은 사랑을 건네려다 오히려 사랑을 받고 진정한 위안과 행복을 느낀 곳이 성 라자로 마을이라고 말한다.

글=서종빈 기자 사진=이힘 기자



▲ 봉두완(오른쪽) 대표가 가톨릭평화방송 서종빈 보도총국장과 성 라자로 마을에서 환담을 나누고 있다. 이힘 기자



▲ 1977년 전 서강대 이사장 진성만(뒷줄 가운데)신부와 봉두완 대표 가족들. 가족 모두가 진 신부에게 세례를 받았다.



▲ 12년간 천주교한민족돕기회장을 역임한 봉두완(오른쪽) 대표가 북한동포돕기걷기대회에 참석한 김수환 추기경, 당시 김대중 고문과 함께한 모습.



▲ 성 라자로 마을 원장 박현배(가운데) 신부와 마을 가족들인 한센인들과 함께한 봉두완(오른쪽) 대표. 봉두완 대표 제공



▶경력이 워낙 많으셔서 호칭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각하라고 부르시죠.(웃음) 이번에 라자로 돕기 회장을 다시 하게 됐고 한미클럽이라고 워싱턴 특파원 출신 모임 회장하고 있고요. 또 북한대학원 대학교의 석좌교수입니다. 한 세 가지 감투만 쓰고 있어도 상당히 바쁘죠.

▶언젠가 가장 명예로운 감투는 성 라자로 마을 후원 회원이라고 말씀하셨죠.

그렇죠. 라자로 돕기 회장을 벌써 네 번째 합니다. 이경재 신부님이 초대 라자로 마을 원장을 하셨는데 8만 7000평의 땅에 이처럼 엄청난 마을을 형성하셨습니다. 그


분을 따라서 한 지 벌써 45년이 됐고요. 지난번에 이용훈 주교님께 상도 받았어요. 반세기를 성 라자로 마을과 생활하고 있는데 아주 영광스럽습니다. 기쁘고요.

▶대한민국 최초의 앵커시고 1970년대를 풍미하셨는데 “안녕하십니까? 봉두완입니다.” 앵커 멘트 시원하게 한번 해주시죠.

“뉴스 전망대에서 바라본 오늘의 세계. 포식하고 장수하시오.” 잘 먹고 잘살라는 뜻인데 당시 이게 유일한 희망으로 많은 분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1970년대만 하더라도 로스토우의 4단계 경제발전 단계론을 이룩할 때인데 나환우 쪽이 그늘진 데가 많았습니다. 거기서 신음하고 고통받는 분들을 대변했다고 할까. 그분들의 목소리를 대신 들려주는 바람에 제가 사랑을 많이 받았죠.

▶지금 국정을 바라보면 혼란스러운데요. 국민들에게 앵커로서 ‘대한민국의 안부’를 물어 주세요.

혼란기에 접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저는 황해도 이북에서 1946년 10월에 월남하고 나서 오늘까지 한 번도 편안한 날이 없었습니다.


자유당 말기에 기자가 되고 나서 이승만 박사가 하야하고 4ㆍ19 혁명과 5ㆍ16 쿠데타가 일어났죠. 오늘의 현실을 바라볼 때에도 대한민국은 국민들의 의사가 표출되는 민주적인 바탕을 이루고 있는 나라라고 믿고 있습니다.


국민은 곧 하느님 아닙니까. 하느님을 믿는 사람은 국민을 믿으면 되는 거죠. 촛불시위를 했지만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답답한 심정을 표출하는 거죠. 결국, 정치권에 있는 분들 또 정권을 잡은 분들이 문제가 많다는 게 이번에 다시 뚜렷하게 드러난 거죠.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해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기자를 하다 보니 눈치가 있습니다. 4ㆍ19 때도 당장 나라가 어떻게 될 것 같고, 5ㆍ16 때도 나라가 어떻게 될 것 같고 했는데 여기까지 온 건 하느님의 뜻입니다. 성장 과정에 일어나는 정치적인 소용돌이입니다.


이번에 어려운 일을 다 겪고 나면 주변에서 부러워하는 반듯한 대한민국으로 다시 태어날 것입니다. 너무 걱정하실 것 없고요.

▶어떤 이유로 대통령이 국회 탄핵을 당했다고 보시나요.

일단 국민들이 화가 났죠. 국정이 질서정연하게 이뤄진 게 아니고 최순실이라든가 이상한 족속들이 국정에 들어오고 대통령이 거기에 묻혀서 국정을 흩트려놨습니다.


국민들이 분노하면 탄핵도 하는 것이죠. 그러나 이번 기회에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은 여야 간에 자기의 이득만을 너무 챙기다 보면 국민에게 손가락질을 받습니다. 본인들의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에 이어 대통령이 국회에서 두 번씩이나 탄핵이 되는 나라, 정상적이라고 보시나요.

노무현 대통령도 탄핵할 만한 사안이 아닌데 강경세력들이 앞장서서 탄핵하려다가 결국 역풍을 맞이한 것 아닙니까. 그렇게 하는 거 아녜요. 대통령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뭔가 하고 싶어 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나라 팔아먹으려고 했습니까.

▶국민들의 분노 촛불은 꺼지지 않고 있습니다. 국민들에게 ‘뉴스 전망대’ 클로징 멘트 한마디 해주시죠.

이런 정국이 밤낮없이 돌아가는 대한민국은 아니니까요. 국민들이 분노를 보여줬고 위정자들도 다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대한민국은 무궁한 영광을 위해서 전진할 나라다’라는 자부심을 가졌으면 합니다.


생업에 충실하게 종사하면서 아이들 교육을 잘하고 나쁜 제도를 바꾸는, 그런 국민의식을 새로이 다져야 하겠다는 말씀을 드릴 수가 있죠. “오늘은 2016년 12월 27일. 봉두완이 바라본 오늘의 세계. 잘 먹고, 오래 사시오.”

▶오랜만에 들으니까 정말 시원합니다. 국회의원을 두 번이나 하셨죠. 정치인 봉두완을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잊어버렸습니다. 국회의원 했다고 (사람들이) 하도 욕을 해서요. 다른 국회의원 욕할 때는 가슴이 철렁합니다.


 ‘내가 국회의원 한 것을 알면 어떡하지’ 하고요. 한다면 대통령이나 한번 해야죠. (웃음) 사실 정치도 앵커맨도 워싱턴 특파원도 재미있게 했어요. 하는 일마다 저는 재미있게 합니다.


라자로 돕기도 벌써 45년째인데 재미없으면 왜 하겠어요. 하느님 사업도 재미있어야 하죠. 신부님에게 끌려가서 하면 재미없습니다.

▶언론인으로서 스스로 몇 점 정도라고 평가하십니까.

수습기자 때 4ㆍ19가 났습니다. 경찰이 ‘땅~땅’ 발포를 하니까 학생들이 쓰러졌는데 당시 현장에 있던 제가 총소리가 나자 제일 먼저 도망갔다고 동료들이 이야기했습니다.


그 정도로 당시엔 무기력하고 무능한 기자였어요. 그런데 제가 창피하지만 고해성사하듯이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그것 때문에 기자로서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앵커할 때 국민 편에서 방송했다고 자부하고 있거든요. 만약 그때 깃발을 날리고 앞장섰다면 나중에 적당히 지냈을 거예요. 그때 부끄러운 일도 많았고 기자답지 못한 그 양심의 가책 때문에 죽을 뻔한 고비까지 넘겼습니다.

▶한센병에 대한 인식도 많이 바뀌었는데요.

라자로 마을은 가톨릭 시설이고 재단이기 때문에 가장 인간적이고 사랑이 넘치는 파라다이스, 낙원입니다. 이경재 신부님이 생일에 자신의 생일상을 차리지 말고 한센인 중에서 그달에 함께 생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위해 생일상을 차려줍니다.


밴드도 오고 대단하죠. 놀랄 정도입니다. 지금 (라자로 마을에) 서른여덟 분이 계시는데 끝까지 아름답고 귀한 생명을 지켜주는 가톨릭 정신이 이곳에 있습니다.

▶봉두완 회장님께 라자로 마을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요.

제가 괴로울 때나 외로울 때나 급할 때나 고통을 받을 때 위로를 받는 곳이 성 라자로 마을입니다. 언론계나 정계를 떠날 때 기꺼이 맞이해준 분들이 여기 계셨고 지금 많이 돌아가셨지만 제 사랑을 되찾은 모델 하우스가 여기 있습니다.


한센병 환우들은 기도를 많이 합니다. 은인들을 위한 기도를 꼭 합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욕먹는 것보다 기도를 받는 게 얼마나 아름답고 귀한 행동입니까. 하느님께서 누구의 기도를 더 많이 듣겠어요. 그분들의 기도를 하느님께서 “안 돼!” 이러시겠어요?

▶라자로 마을에 들어오면 예수님 십자가 상 아래에 ‘목마르다’라는 유명한 말씀이 있는데요. 회장님께선 아직도 목이 마르십니까.

목마르죠. 우리 주님도 떠나실 때 목마르다고 한 이유가 있어요.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일치하고 합치하는 정신을 우리한테 던져주고 가신 분 아닙니까.


고통받는 사람이나 사랑에 궁핍한 사람을 외면하지 말고 살아야 한다는 가톨릭 정신을 라자로 마을의 ‘목마르다’는 형상을 보면서 피부로 느끼고 있죠.

▶세례명이 다윗이시잖아요. 성인의 어떤 점이 모범이 되십니까.

다윗은 한자로 다위(多慰)인데요. ‘많을 다(多)’, ‘위할 위(慰)’, 많이 봉사하라는 뜻입니다. 영어로는 데이비스인데 왕으로 하느님의 용서를 받으면서 나라를 통치했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신부님이 세례명을 주신 것 같아요.

▶우리 사회가 가야 할 방향에 대해 젊은이들에게 한 말씀 해주시죠.

좋은 방향으로 가야죠. 좌고우면하면서 살아봤는데 결과는 똑같아요.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나팔을 불면서 전진해야 영광이 있더라고요. 꾸르실료 단기 교육과정을 했는데 그때부터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하느님에 대한 굳건한 믿음이 생겼습니다.


내 나이에 행동해야죠. 믿기만 하면 뭐합니까. 말만 하면 뭐합니까. 예수님 말씀을 옮기기만 하면 뭐합니까. 본인이 실천해야죠. 실천한다는 데에는 굉장한 고통이 따릅니다. 그것을 아셔야 합니다.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으세요.

천국에 가려고 하는데 티켓이 안 나와서 지금 못 가는데 열심히 이대로만 살 생각입니다.


고집스럽게 정직하게 정확하게 살아보려고 한번 노력하는 것이죠. 과거 앵커맨이나 정치판에 있을 때는 그게 잘 안되더라고요. 후배들이나 우리 후손들이 지켜보는데 좀 아름다운 모습으로 인생의 결말을 지어볼까 합니다. 그렇다고 죽는다는 거 아니에요. 나 오래 살 거예요.

▶어떤 사람이 ‘리더’라고 보십니까.

천주교는 가장 낮은 곳에서 봉사해야 하거든요. 낮은 곳이라는 게 어디입니까. 나환자들이나 장애인들이 있는 이런 곳이 낮은 곳 아닌가요. 여기서 45년을 봉사한 것이 제 자부심이고 자존심이거든요.


다 내어 놓으라고 하면 문제가 있지만 내놓고 사는 생활을 좀 말씀드리고 싶어요. ‘리더’는 희생과 봉사를 함께 짊어지고 가는 사람입니다.


총회장을 한다고 리더가 덜컥 되는 게 아닙니다. 가진 재산도 반 이상 내놔야 하고, 자기 노력도 충분히 해야 하고, 고통도 함께 느껴야 하고요. 그게 복합적으로 형성돼야 리더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감투만 쓴다고 ‘리더’가 되는 건 아닙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나눌 줄 알고, 함께 사는 기쁨을 느껴야 리더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것은 내놓고 희생하라고 하면 과연 ‘리더’를 할 사람이 있을까요.

그래도 있습니다. 하느님은 다 점지하고 있지요. 본인들이 모르고 있지. 자기 것을 버릴 줄 알아야 하느님의 은총이 그 빈자리에 담기는 것이거든요. 제가 돈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돈이 있을 때도 똑같은 생각을 했던 사람이에요.

▶새해를 맞이하는데요. cpbc 시ㆍ청취자와 독자들에게 새해 덕담 한 말씀 해주시죠.

예수님 열심히 믿으시고요. 가톨릭평화방송 역할이 중요합니다. 가톨릭 신자들이 많이 보기 때문에 신자들을 새롭게 일깨우는 그런 내용을 많이 담으면 가톨릭 커뮤니티에서 시청률 1위로 발전해 나갈 것입니다.


가톨릭 신자들만 본다고 생각하시면 안 되고요. 신자가 아닌 사람도 끌어들일 수 있는 매체가 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내용도 풍부하게 만들고 좋은 프로그램 많이 내보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돈을 좀 벌어서 여유가 있는 분들은 가톨릭평화방송ㆍ평화신문에 봉헌을 좀 해야 합니다. 돈이 있어야 가톨릭평화방송도 프로그램을 잘 만들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