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7년 1월 7일 가해 주님 공현 전 토요일(페냐포르트의 성 라이문도 사제)

dariaofs 2017. 1. 7. 04:30



에스파냐 북동부 카탈루냐(Cataluna)의 페냐포르트 태생인 성 라이문두스(Raymundus, 또는 라이문도)는 1222년에 도미니코 회원이 되었는데, 이때는 이미 바르셀로나(Barcelona)와 볼로냐(Bologna)에서 학문을 연구하고 또 설교한 경험이 풍부하였다.


1230년 그는 로마(Roma)로 초빙되었는데, 여기서 그는 교황청의 회의와 칙서 등을 소장하는 업무를 맡았고, 이것의 결과로 '숨마 카수움'(Summa Casuum)이 발간되었다.

1236년 에스파냐로 돌아 온 성 라이문두스는 2년 동안 총장직을 역임한 뒤, 모슬렘과 유대인의 개종을 위하여 헌신 노력하였다.


이즈음에 그는 성 토마스 데 아퀴노(Thomas de Aquino, 1월 28일)를 격려하여 "대이교도대전"(對異敎徒大全, Summa Contra Gentiles)을 쓰게 하였으며, 아라비아어와 히브리어를 가르치는 학교를 세웠다.


또한 그는 성 베드로 놀라스코(Petrus Nolasco, 1월 28일)와 함께 '메르체다리오회'의 설립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100세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를 위한 생애를 살았던 성 라이문두스는 1275년 1월 6일 선종하였다. 그의 시신은 처음에 바르셀로나의 카타리나 수도원 성당에 안치되었다가 1878년에 바르셀로나의 주교좌 성당의 요한 바오로 소성당으로 옮겨져 안치되었다.


교회법 학자의 수호성인인 그는 1601년 교황 클레멘스 8세(Clemens VII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성인의 축일은 1671년에 1월 23일로 로마 보편 전례력에 추가되었으나, 1969년 성인이 선종한 다음날인 1월 7일로 변경하여 기념하고 있다.



강론   :   (요한 2,1-11)


<예수님>


1월 7일의 복음 말씀은 요한복음 2장 1절-11절, ‘카나의 혼인 잔치’입니다.
주님 공현 대축일을 앞두고 ‘카나의 혼인 잔치’ 이야기를 읽는 것은
“예수님은 어떤 분인가?”를 묵상하기 위해서라고 생각됩니다.


카나의 어떤 집에서 혼인 잔치를 하는데, 잔치 도중에 포도주가 떨어집니다.
그러나 성모 마리아께서 예수님께 그것을 말씀하시고,
예수님께서는 그 상황을 해결해 주십니다.


“거기에는 유다인들의 정결례에 쓰는 돌로 된 물독 여섯 개가 놓여 있었는데,
모두 두세 동이들이였다.


예수님께서 일꾼들에게 ‘물독에 물을 채워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이 물독마다 가득 채우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다시,
‘이제는 그것을 퍼서 과방장에게 날라다 주어라.’ 하셨다.
그들은 곧 그것을 날라 갔다(요한 2,6-8).”


여기에 나오는 ‘물독’은 정결례에 쓰는 것이었으니 ‘빈 물독’은 아니었을 것이고,
물독마다 어느 정도는 물이 들어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물독에 물을 ‘가득’ 채우라고 지시하신 것은,
이제 곧 일어날 기적의(또는 은총의) 풍요로움을 암시하신 것으로 해석됩니다.


물독 여섯 개를 가득 채운 포도주는
손님들이 모두 취하도록 마신 뒤에도 아주 많이 남게 될 양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빵 다섯 개로 오천 명 이상의 군중을 먹이셨을 때에도
사람들이 배불리 먹고도 남은 빵이 열두 광주리였습니다(요한 6,13).
빵이 모자라서 못 먹은 사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꼭 물이 있었어야 했나? 만일에 물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답은, “물이 없었어도 상관없다.”입니다.
하느님(예수님)의 기적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기적입니다.


만일에 꼭 물이 있어야만 했다면,
즉 물이 없는 상황에서는 포도주를 만드는 기적을 행하지 못한다면,
그러면 전능하신 분이라고 말할 수 없게 됩니다.
요한복음서 저자는 복음서의 ‘머리글’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요한 1,3).”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창조주 하느님과 같은 권한과 권능을 가지고 계신 분이니,
물이 없었다고 해도 포도주를 만들어내셨을 것입니다.
(아니면 다른 어떤 방법으로 그 문제를 해결하셨을 것입니다.)


따라서 여기서 ‘물’은 기적을 일으키는 과정에서 사용된 보조 재료일 뿐이고,
기적의 필수 요소는 아닙니다.
‘빵의 기적’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아이가 가지고 있다가 내놓은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는(요한 6,9),
기적을 일으키는 과정에서 사용된 보조 재료일 뿐이었습니다.


즉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없었어도,
예수님께서는 기적을 행하셨을 것이고, 군중을 배불리 먹이셨을 것입니다.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기적을 행하실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기적을 행하시려고 하던 참에 마침 그것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들을 사용하셨다는 것.)


(복음서 저자는 물이 언제 어떻게 포도주로 변화되었는지는 말하지 않았는데,
일꾼들이 물독에 물을 가득 채운 뒤에,
그리고 그것을 다시 ‘잔치 맡은 이’에게 가져가기 전에 변화되었을 것입니다.


기적의 과정을 본 사람도 없고, 기적의 방식을 본 사람도 없습니다.
당시에 그곳에 있었던 사람들은 기적의 결과만 보았을 뿐입니다.


기적이란 논리적으로 증명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우리는 기적의 결과를 보고 믿을 뿐입니다.)


“과방장은 포도주가 된 물을 맛보고
그것이 어디에서 났는지 알지 못하였지만, 물을 퍼 간 일꾼들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과방장이 신랑을 불러 그에게 말하였다.
‘누구든지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놓고, 손님들이 취하면
그보다 못한 것을 내놓는데,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남겨 두셨군요.’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처음으로 갈릴래아 카나에서 표징을 일으키시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셨다.
그리하여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요한 2,6-11).”


‘잔치 맡은 이’가 포도주를 맛보고 감탄했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만드신 포도주는 양적으로도 풍요로웠지만,
질적으로도 뛰어난 것이었음을 나타냅니다.


(단순히 물을 포도주로 바꾸기만 하신 것이 아니라,
아주 뛰어난 품질의 포도주를 만드셨다는 것.)
이것은,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청한 것보다(또는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좋은 은총을 주신다는 가르침입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항상 가장 좋은 것을 가장 좋은 때에 주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복음서 저자는,
제자들이 포도주의 기적을 보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는 말만 하고,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이 없습니다.


그래서 일꾼들도, 잔치 맡은 이도, 신랑도, 손님들도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제자들 경우에는 예수님을 안 믿고 있다가 믿게 된 것은 아니고,
‘더욱’ 확신을 갖고 믿게 되었다고 해석됩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에 제자가 된 사람들이니까,
여기서 ‘믿게 되었다.’는 말은 “더욱 깊이 믿게 되었다.”로 해석됩니다.)


믿음이란 ‘믿으려는 노력’입니다.
그리고 믿음에서 믿음이 생기는 법입니다.


안 믿으려고 하는 사람은 기적을 보아도 안 믿지만,
믿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기적을 통해서 더욱 깊은 믿음을 갖게 됩니다.


안 믿으려고 하는 사람의 눈에는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 예수님’이 그저 가난한 집의 갓난아기로만 보이겠지만,


믿음으로 예수님을 찾은 동방박사들 눈에는
보잘것없는 모습으로 누워 있는 그 갓난아기가 메시아로 보였습니다.


그래서 믿음이란, 안 믿는 이들은 보지 못하는 진리를 보게 해 주고,
안 믿는 이들은 받지 못하는 은총을 받게 해 주는 ‘힘’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전주교구 신풍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