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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칼럼] (1) 모든 것은 서로 연결돼 있다

dariaofs 2017. 1. 15. 03:07

생명에 대한 ‘겸손한 존중’ 필요


가톨릭신문은 새해부터 ‘생태/환경’면을 신설하고 새로운 칼럼도 연재한다. 이번 칼럼은 조현철 신부(프란치스코·예수회)와 강금실 대표(에스테르)가 공동으로 집필한다.


조현철 신부는 탈핵천주교연대 공동대표로서 오랫동안 생태와 환경 문제에 대한 다양한 활동과 연구를 함께해왔다. 강금실씨는 ‘포럼 지구와 사람’ 대표로서, 오늘날의 문명을 통합적인 생태 문명으로 전환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 모든 것은 근원적 유대로 엮여 있다.

프란치스코 교종께서도 회칙 「찬미받으소서」에서 거듭 강조하는 세상의 질서다(16, 42, 89, 117항 등). 우리는 흔히 세상 만물을 서로 이질적이고 단절돼 있다고 여기는 생물과 무생물로 구분한다.


하지만 흙 없는 나무도, 물 없는 물고기도 있을 수 없다. 흙과 물은 무생물이 아니라, 개별 생명체의 근원이 되는 ‘확장된 생명체’다. 흙과 나무, 물과 물고기는 단절이 아니라 존재와 생명 차원의 근원적 유대로 연결돼 있다.

동물은 산소를 들이마시고 이산화탄소를 내놓는다. 녹색식물은 이산화탄소를 흡수하여 광합성을 하고, 산소를 배출한다.


동물은 다시 산소를 흡수한다. 동물과 식물, 이산화탄소와 산소는 연결되어 하나의 원을 형성한다. 원을 이루는 순환이 바로 생명의 원천이다.

세상은 철저히 ‘관계적 질서로 이뤄진 촘촘한 그물망’이란 시각은 다음과 같은 함의를 지닌다.

첫째, 온전한 그물망에 모든 그물코가 필요하듯이, 세상 만물은 자신의 고유한 존재 이유와 본질적 가치를 지닌다. 우리가 인간 중심으로만 다른 것의 가치를 판단하는 것은 잘못이다. 기본적으로 타자를 존중해야 한다.

둘째, 버려서 없앤다는 의미의 쓰레기는 없다. 모든 것이 연결돼 있으니, 버린다고 없어지지 않는다. 다만 어디론가 가서, 다른 방식으로 존재할 뿐이다. 그리고 언젠가 어떤 식으로든 우리에게 다시 돌아온다. 무엇을 만들고 버릴 때, 신중해야 한다.

셋째, 우리는 세상에서 우리가 하는 행동의 결과를 잘 모른다. 모든 것이 밀접하게 연결돼 서로 영향을 깊이 주고받기 때문이다. 겸손해야 한다.

넷째, 공짜 점심은 없다. 모든 것이 긴밀히 연결돼 있으므로, 우리가 누리는 편익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 신중해야 한다.

모임에 가면 일회용품 아닌 것을 찾기 힘들다. 마시고 가는 손님에게도 일회용 컵을 주는 카페가 늘고 있다. 그래서 쓰레기가 넘쳐난다.


한번 쓰고 버린 것은 없어지지 않고 어딘가에 쌓여, 지구를 점점 “쓰레기 더미”로 만들고 있다(21항). 편익에는 반드시 비용이 따르고, 우리는 그 비용이 어떤 것일지 잘 모른다.

세상이 “서로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보편 가정, 곧 숭고한 공동체”를 이룬다면, 타자에 대한 적합한 태도는 “겸손한 존중”이어야 한다(89항). 이것을 거부하고, 우리가 “절대적 지배자임을 자처하면, 인간 삶의 기초가 붕괴”된다(117항).

지난해 11월 중순부터 우리나라를 휩쓸고 있는 조류 인플루엔자(AI)의 근원은 고병원성 바이러스가 아니라 ‘공장식 축산’이다. 바이러스를 옮기는 철새는 괜찮은데, 밀집 사육하는 닭과 오리는 바이러스에 속수무책이다.


멀쩡한 닭과 오리가 예방적 살처분으로 엄청나게 죽어나간다. 이 재앙은 바로 공장식 축산의 저주다.


 ‘공장’과 ‘처분’이란 말은 우리가 사육 동물을 생명체가 아닌 물건으로 여기고 있음을 말해준다. 여기에 다른 생명체에 대한 겸손한 존중의 태도는 찾아볼 수 없다.

동물을 물건 취급하는 사회는, 사람도 결코 존중하지 않는다. 2015년 산재로 사망한 노동자의 95%가 하청노동자였다.


사회에서도 약자들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오늘 우리는 “사회적인 동시에 환경적인 하나의 복합적인 위기”에 직면해있다(139항).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생태학의 근본 통찰이 더욱 절실해지는 때다.



                                              조현철 신부(예수회) 탈핵천주교연대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