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 어린 기도와 꾸준한 봉사, 환자들에게 영적 위로 전하다
미사·병자영성체와 함께
수시로 면담하고 성사 베풀어
자원봉사자 60여 명 활동 중
병실 방문과 기도는 기본
노숙인 환자 위한 목욕봉사도
2월 11일은 교황청이 정한 세계 병자의 날이다. 1992년 5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루르드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인 2월 11일에 ‘세계 병자의 날’을 거행하도록 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시민단체와 가톨릭의료기관이 환자에게 최선의 도움을 보장하고 자원봉사자들의 소중한 참여를 더욱 장려하며 의료진의 정신적·도덕적 교육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성직자와 수도자가 고통받는 사람들 편에서 일하고 모든 이들이 병자들에 대한 신앙적 도움의 중요성을 더욱 잘 인식하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이날을 제정했다고 밝혔다.
1993년 처음 거행된 ‘세계병자의 날’은 올해 25번째를 맞는다. 본지는 병자의 신앙을 위해 일반병원 사목일선에서 분투하고 있는 서울대학교병원 운영 서울특별시 보라매병원(이하 보라매병원) 천주교 원목실을 찾았다.
“당신이 어떤 모습이든지 당신은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임을 기억합니다.”
고경환 신부(보라매병원·고대구로병원 천주교 원목실장)는 중풍으로 보라매병원에 입원 중인 김 야고보(69)씨를 위해 이렇게 기도했다.
김씨는 중풍으로 쓰러진 뒤 “아픈 모습을 보이기 싫다”며 성당에 발길을 끊었다. 또 “지은 죄가 많아서 속죄하려고 본당 연령회에서 20년이나 봉사를 했는데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났다”며 울먹이기도 했다. 하지만 고해성사를 하며 신앙을 되찾고 병자영성체를 신청했다.
김씨의 안부를 물으며 병자영성체 예식을 시작한 고 신부는 “오랜만에 영성체를 하셔서 의미가 남다르실 것 같다”며 김씨의 회심을 격려했다.
성체를 모시면서 눈물을 흘린 김씨는 “나이가 들면 여성호르몬이 많아진대요”라며 농담을 하기도 했다. 병자영성체를 마친 뒤 고 신부는 “야고보 형제님, 괜찮습니다. 힘내십시오”라고 격려했다.
이날 병자영성체를 한 또 다른 환자 김 마리아(47)씨. 인대에 염증이 생겨 수술을 하고 치료를 받고 있었다.
봉사자 우연희(루치아·60·서울 대방동본당)씨 말에 따르면 처음에는 병세가 위중해 많이 힘들어했는데 지금은 많이 좋아져 표정이 밝아졌다고 전했다.
김씨는 고 신부와 최상옥 수녀(보라매병원 원목실 담당), 봉사자를 반갑게 맞으며 농담도 주고받았다. 대화 도중 자녀들 이야기가 나오자 표정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최 수녀는 김씨의 자녀들을 만난 이야기를 하면서 “아이들이 엄마가 빨리 나았으면 좋겠다고 기도하는데 참 예뻤다”고 칭찬했다. 이 자리에서 김씨는 “아들이 사제성소가 있는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며 고 신부에게 성소 상담을 하기도 했다.
■ 원목실에서는
고경환 신부는 “그냥 병원을 지나가다가 신부님이냐고 묻기도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 자리에서 면담이나 성사를 청하기도 한다. 신분이 드러나기 때문에 오히려 전교에 도움이 되는 것 같다”고 했다.
최상옥 수녀는 대세를 베풀었던 경험을 이야기했다. “너무 고통스러워하면서 침대에서 뒹구는 환자가 있었다. 게다가 줄이 꼬여 환자를 칭칭 감고 있었다. 너무 힘들어 보여 본인 동의를 받고 대세를 드렸는데 그 순간부터 편안해졌다.
자원봉사팀장을 맡고 있는 우연희씨는 보라매병원의 봉사자가 60여 명이라고 밝혔다. 보라매병원 봉사자들에게 기본활동은 환자 방문과 기도다.
보라매병원은 공공의료기관으로서 노숙인을 위한 무료병동을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는 노숙인 전용 병상이 있으며 노숙인 환자를 위해 일주일에 두 번 목욕봉사를 실시한다.
우 팀장은 보라매병원 원목실 특징으로 담당 사제, 수도자가 봉사자들을 격려하는 데 특별히 마음을 쓰는 것을 꼽았다. “오늘 같은 경우 신부님이 목욕 봉사자들과 식사를 같이 하기로 돼 있고 평소에도 봉사자들에게 굉장히 잘해주신다.
■ 거부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보라매병원은 서울대병원이 운영하는 서울시립 병원이다. 가톨릭재단에서 운영하는 병원이 아니기 때문에 가끔 곤란한 일을 겪기도 한다.
최 수녀는 “부활, 성탄 때 원목실에서 선물을 준비한다. 선물을 전하러 가면 ‘천주교가 주는 선물은 안 받는다’고 하는 분이 가끔 있다”고 했다. “그럴 경우 그냥 그러시냐고 인사하고 나온다. 섭섭하거나 야속하지는 않다. 다른 걸 인정하고 만나면 괜찮은 것 같다”고 말했다.
우 팀장은 “환자들 마음이 상황에 따라 다르다. 기분이 좋을 때는 반겨주고 아닐 때는 인사만 겨우 받아주시고는 한다. 그에 따라 일어나는 마음의 힘겨움은 봉사자의 몫”이라며 병원봉사를 하면서 겪는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했다.
고 신부는 “이제는 거부당하는 것이 익숙하다. 처음에는 반겨주지 않는 것이 어색하고 서운했는데, 환자가 어떤 상태인지 이해되면 거부하는 반응을 보여도 받아들이게 된다”며 환자의 입장에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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