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대 간호대 호스피스연구소 소장 용진선 수녀
▲ 용진선 수녀. |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리코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났다. 강도들은 그의 옷을 벗기고 그를 때려 초주검으로 만들어놓고 가 버렸다. …
여행을 하던 어떤 사마리아인은 그가 있는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서는,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그에게 다가가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맨 다음, 자기 노새에 태워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주었다.”(루카 10,30-34)
생면부지의 낯선 이에게 연민어린 돌봄을 베푼 ‘착한 사마리아인’ 이야기다. 예수 그리스도는 병자와 고통받는 이들을 가엾이 여기고 사랑으로 다가가 그들을 고쳐주셨다. 육체적 고통만이 아니었다. 마음과 영혼까지 치유해주셨다.
현대 의학에서 치료는 주로 신체적 차원에 국한된 것이다. 육체적 ‘치료’를 넘어 영혼을 포함한 전인적 차원의 ‘치유’에 초점을 맞춘 ‘영적 돌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평화로운 선종, 영적 돌봄의 목표
국내 ‘영적 돌봄’ 연구와 실천의 중심인 가톨릭대 간호대 호스피스연구소 소장 용진선(가톨릭대 간호대 교수,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 수녀는 “영적 돌봄은 환자의 고통에 절대적으로 공감하고,
그들의 감정을 지지하며, 그들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자비로운 마음으로 보살피는 것”이라며 “영적 돌봄의 핵심은 연민”이라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삶이 뿌리째 흔들리는 임종기 환자가 전인적 보살핌을 받아 평화로운 선종을 맞게 하는 것이 영적 돌봄의 목표입니다. 요즘은 말기 환자라도 웬만한 통증은 조절이 가능합니다.
그런 환자들에게 더욱 절실하게 다가오는 것이 삶의 의미와 목적입니다. 영적 돌봄은 말기 환자들의 피할 수 없는 고통을 함께 나누고, 진심어린 배려와 관심을 아끼지 않는 영적 위로를 통해 환자가 존엄성을 되찾고 내적 평화를 누리게 하는 것입니다.”
용 수녀는 “삶의 의미와 목적, 영적 존재로서 초월성 추구, 사랑받고자 하는 욕구를 채워주는 것이 영적 돌봄”이라며 “그런 의미에서 영적 돌봄은 호스피스의 핵심이자 꽃”이라고 평가했다.
그렇게 중요한 영적 돌봄이 제대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충분한 사전 교육과 훈련이 필요한 것은 물론이다. 용 수녀는 “영적 돌봄에 관한 인식이 매우 낮은 것이 현실”이라면서 영적 돌봄 교육의 제도화를 주문했다.
“선진국의 경우 80%가 의학 교육 과정에 영적 돌봄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실제 의료 현장에서도 의료진과 영적 돌봄 전문가인 원목자의 협업이 잘 이뤄지고 있고요. 불행히도 우리나라는 아직 그렇지를 못합니다.
의학 교육 과정에 영적 돌봄 과목을 넣어야 합니다. 그리고 영적 돌봄 전문가를 양성해야 합니다.”
호스피스 의료수가, 법제화로 책정
현재 호스피스 병동에서 일하려면 보건복지부가 인정한 60시간의 호스피스 완화의료 표준 교육 과정을 이수하고 자격증을 받아야 한다.
최근에는 법제화를 통해 호스피스도 의료수가가 책정됐다. 호스피스가 최근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은 이러한 체계적 교육 프로그램과 법제화 때문이라는 것이 용 수녀의 진단이다.
용 수녀는 “영적 돌봄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교육 프로그램과 함께 자격증을 부여하는 전문가 양성 과정이 꼭 필요하다”면서
“한국가톨릭원목자협회가 지난해 6월에 10주 과정으로 개설한 한국가톨릭원목자 제1기 기초 교육 과정은 영적 돌봄을 제도화하기 위한 첫 단추라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고 밝혔다.
용 수녀는 요즘 영적 돌봄의 교과서라고 불리는 「헬스케어 영성」 시리즈(총 5권) 출간에 온 힘을 쏟고 있다.
용 수녀가 박준양 신부, 김주후(요한 보스코) 교수, 조재선(베드로) 교사와 함께 번역 중인 시리즈는 건강에 관한 개념 분석부터 영적 돌봄의 핵심, 현장 사례까지 영적 돌봄의 모든 것을 아우르는 영적 돌봄의 백과사전이다.
조만간 나올 마지막 5권 「정책과 교육, 그리고 미래의 도전」은 특별히 영적 돌봄의 교육 과정과 교과목 등 전문가 양성을 위한 구체적 방안을 담고 있다.
용 수녀는 우리나라의 영적 돌봄을 한 단계 끌어올릴 것으로 관심을 모으는 이 시리즈가 적극적으로 활용되기를 희망했다.
“제가 몸담고 있는 호스피스연구소가 정기적으로 국제 영성 학술대회를 개최하는 것은 영적 돌봄을 확산하기 위해서입니다.
지난해 WHO(세계보건기구) 협력센터로 재인증받은 호스피스연구소는 WHO와 영적 돌봄의 지침을 만드는 작업을 함께하고 있습니다. 세계 지역별로 각기 다른 문화적 특성을 살린 지침이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용 수녀는 최근 교황청 생명학술원 완화의료 국제자문위원으로 위촉됐다. 전 세계 8명으로 구성된 국제자문위원단은 이번에 처음 생겼다.
임기는 올해 1월부터 3년이며, 용 수녀는 아시아 지역을 대표한다. 용 수녀는 3월 31일 교황청에서 열리는 첫 회의에 참석해 호스피스ㆍ완화의료에 관한 아시아 현황을 보고할 계획이다.
“완화의료 국제자문단이 꾸려진 것은 호스피스ㆍ완화의료가 보편 교회의 관심 주제로 부각된 것을 의미합니다.
하느님의 자비를 가장 온전하게 드러내는 활동이 영적 돌봄 아닐까요? 교회 안팎의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합니다. 영적 돌봄을 제도화하는 데 힘을 모아야 합니다.”
글ㆍ사진=남정률 기자(가톨릭평화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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