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사무 16,1ㄴ.6-7.10-13ㄱ; 에페 5,8-14; 요한 9,1-41
"보지 못하는 이들은 보고, 보는 이들은 눈먼 자가 되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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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sus Heals A Man Born Blind
♣ 믿는 우리가 지녀야 할 눈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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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은 하느님을 믿는 이들이 지녀야 할 눈길에 대해 묵상하도록 초대합니다.
주님께서는 말씀을 따르지 않는 사울을 배척하시며, 사무엘에게 새로운 임금을 선택할 기준을 알려주십니다.
"겉모습이나 키 큰 것만 보아서는 안 된다. 나는 사람들처럼 보지 않는다.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는 대로 보지만 주님은 마음을 본다.”(1사무 16,7)
실제로 키 크고 잘 생긴 사울 임금은, 주님 말씀을 따르지 않고 임금의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여, 주님의 눈 밖에 나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합니다.
그러나 미성년자인 다윗은, 막내아들이었고 힘없는 목동이었으나, 하느님의 도구로 선택받습니다. 하느님의 눈길은 세상의 눈길과 전혀 다르지요.
더 크고, 더 멋있어 보이는 것들을 추구하며 허세를 부리는 세속적인 눈길을 거두어야겠지요.
사회적 지위, 학력, 재산과 업적, 재능 등 외형적인 조건으로 인간을 저울질하는 눈길에서 벗어나야 할 것입니다.
사목적 이유나 성장 논리를 앞세우며 사업을 벌이고, 성지를 개발하며, 이벤트성 행사를 벌리고,
신자수에 관심을 집중하는 것은 분명 하느님의 눈길이 아니며,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 일이 될 것입니다.
교회는 보잘것없고, 작고, 가난한 교회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도 작고,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신앙인으로 다시 태어나야겠지요.
그분의 눈길은 ‘지켜보는’ 바리사이의 눈길과는 달리, 자비의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우리가 지녀야 할 눈길은 예수님의 자비의 눈길, 복음의 눈길이며 연민의 눈길입니다.
우리가 자비의 눈길로 다른 이들과 세상을 포용하는 눈길, 함께 하는 애정 깊은 친교의 눈길을 지니지 않는다면, 바리사이와 무엇이 다를까요?
나와 우리, 이 세상 한복판에서 하느님이 보이고 하느님이 드러날 때까지...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이 언제든 찾아와 위로를 받는 교회가 될 때까지!
자비의 눈길로 바라봄으로써, 소경이 눈을 뜨고, 귀머거리가 들으며, 절름발이가 걸을 수 있게 하는 창조와 해방을 이어가는 오늘이길 기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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