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 19,3-12)
<혼인과 이혼>
“너희는 읽어 보지 않았느냐?
창조주께서 처음부터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나서,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될 것이다.’ 하고 이르셨다.
따라서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마태 19,4-6).”
인간이 남자와 여자로 태어나는 것,
또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결합해서 부부가 되는 것은 모두
‘하느님의 뜻’이고,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라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합이 아닌,
다른 형태의 결혼은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일입니다.
‘이혼’은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는 일이기 때문에,
역시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일입니다.
혼인을 앞둔 미혼 남녀의 경우에,
그들은 자기들이 선택하고 결정해서 혼인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즉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일에 자신들이 응답함으로써
혼인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응답이 완전해지고, 거룩해질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만일에 혼인이 순전히 인간의 선택과 결정으로만 이루어지는 일이라면,
인간에게 이혼할 권한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혼인이란,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일에 인간이 응답하는 일이기 때문에
인간에게는 이혼에 대한 권한이 없게 됩니다.)
혼인을 해서 가정을 이룬 부부의 경우에,
자신들의 가정의 가장은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잊으면 안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부부를 맺어 주실 뿐만 아니라, 부모와 자녀의 인연도 맺어 주시고,
가정이 성가정이 될 수 있도록 보호해 주십니다.
하느님의 그 사랑과 보호에 제대로 응답하려면,
항상 기도하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어떤 위기 상황에 놓여 있는 부부의 경우에,
인간적인 해결책을 찾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은 ‘기도’입니다.
‘기도’는 혼인성사의 은총을 계속 유지하기 위한 필수 조건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기도하지 않는 부부는 쉽게 위기에 빠집니다.
끝내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이혼한 부부의 경우에 대해서는
두 가지로 나누어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1) 세속의 법에 의해서 이혼은 했지만 재혼하지 않은 경우.
그 경우에 교회법적으로는 혼인 관계는 여전히 유효하며, ‘별거’ 상태일 뿐입니다.
‘별거’는 조당이 아니고, 신앙생활을 정상적으로 계속할 수 있습니다.
2) 세속의 법에 의해서 이혼하고 재혼한 경우.
그 경우에 대해서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혼한 다음 재혼한 이들도 여전히 교회에 속해 있으며,
교회는 특별한 관심으로 그들과 함께 하고,
그들이 비록 영성체를 할 수 없다 하더라도
정기적인 미사 참례와 하느님 말씀의 경청, 성체 조배, 기도, 공동체 생활 참여,
사제나 영성 지도자와의 솔직한 대화, 헌신적인 사랑 실천, 참회 행위,
자녀 교육을 위한 노력 등을 통하여
그리스도인의 삶을 최대한 충만하게 살도록 격려해야 합니다.”
(출처 - 베네딕토 16세 교황 권고 <사랑의 성사>)
우리 교회는 조당 상태에 놓여 있는 이들이 정상적인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어떻게든 해결 방법을 찾아서 도와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거부하지 않는 한, 어떤 사람도 구원에서 제외되지 않습니다.
혼인과 가정에 관해서 묵상하기에 좋은 구절이 ‘룻기’에 나옵니다.
“어머님을 두고 돌아가라고 저를 다그치지 마십시오.
어머님 가시는 곳으로 저도 가고, 어머님 머무시는 곳에 저도 머물렵니다.
어머님의 겨레가 저의 겨레요, 어머님의 하느님이 제 하느님이십니다.
어머님께서 숨을 거두시는 곳에서 저도 죽어 거기에 묻히렵니다.
주님께 맹세하건대, 오직 죽음만이 저와 어머님 사이를 갈라놓을 수 있습니다.”
이 말은, 며느리 ‘룻’이 시어머니 ‘나오미’에게 한 말인데,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뿐만 아니라, 부부 사이에도,
또 부모와 자녀 사이에도 적용할 수 있는 말입니다.
우리 교회의 혼인성사 때의 서약문도 다시 읽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나 ( )는 당신을 아내로(남편으로) 맞아들여,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나, 성할 때나 아플 때나
일생 신의를 지키며, 당신을 사랑하고 존경할 것을 약속합니다.”
이 서약문의 모든 말이 다 중요하지만,
‘존경’할 것을 약속한다는 말을 특별히 더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혼인 관계를 잘 유지하려면 사랑만으로는 부족하고,
서로에 대한 ‘존경심’이 있어야 합니다.
존경심을 바탕으로 한 사랑이어야 참 사랑이 이루어집니다.
실제로, 배우자에게 존경(존중)받지 못하고 있다는 서운함이 갈등으로 이어지고,
그 갈등이 위기 상황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랑한다면, 상대방을 무시하면 안 됩니다.
(이것은 부모와 자녀 사이에도 해당되는 말입니다.)
그런데 존경할 것을 약속한다는 말을 반대로 생각하면,
존경을 받을만한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다는 약속도 됩니다.
배우자와 가족은 하느님께서 주신 최고의 선물입니다.
(십자가가 아니라 은총의 선물입니다.)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에게 알맞은 협력자를 만들어 주겠다(창세 2,18).”
“주 하느님께서 사람에게서 빼내신 갈빗대로 여자를 지으시고,
그를 사람에게 데려오시자, 사람이 이렇게 부르짖었다.
‘이야말로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로구나!
남자에게서 나왔으니 여자라 불리리라.’(창세 2,22-23)”
(부부는 원래 한처음부터 한 몸이었습니다.
서로 모르는 남남이 만나서 한 몸이 된 것이 아니라.)
송영진 모세 신부 (전주교구신풍성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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