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7년 8월 19일 가해 연중 제19주간 토요일(성 요한 외드 사제)

dariaofs 2017. 8. 19. 04:46

 

 

성 요한 에우데스(Joannes Eudes)는 1601년 프랑스 노르망디(Normandie)의 아르장탕(Argentan) 근교 리(Ri)라는 마을의 유복한 가정에서 외과 의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14세 되던 해에 캉(Caen)에 있는 예수회 학교에서 공부하였으며, 결혼하기를 바라는 양친의 소망을 뿌리치고 1623년에 오라토리오회에 입회하였다.

 

파리(Paris)와 오벨빌리엘에서 수학한 그는 1625년 12월 20일에 사제로 서품을 받은 뒤 노르망디 지역에서 본당 사목에 전념하였다.

 

1625년과 1631년에 노르망디 지역을 급습한 전염병의 희생자를 돌보기 위해 활약하기도 했던 그는 이 시기에 설교가로서의 명성을 떨치기 시작하였다.

 

또한 얀센주의(Jansenism)의 강력한 반대자로서의 명성도 획득하였다. 그밖에도 고해성사 등의 성무 활동을 통해 다양한 계층의 신자들과 교류하였다.

오라토리오 회원으로서 사목활동에 종사하던 요한은 당시에 나타난 교회의 악한 표양을 날카롭게 비판하기도 하였다.

 

또한 점차 성직자 교육을 등한시하던 오라토리오회의 활동에 대해 반감을 갖게 되었으며, 만약 각 성당의 사제가 충분한 교육을 받지 못한다면 본당 사목 활동은 단지 일시적인 성공만을 할 수 있을 뿐이라며 성직자 교육을 강조하였다.

 

그는 또한 타락한 여성들을 구제하기 위한 사목에도 흥미를 보여, 1641년 평신도였던 장 드 베르니에르(Jean de Bernieres)와 가스통 드 렌티(Gaston de Renty)와 함께 성체회, 성모 방문 수녀회의 도움을 받아 캉에 ‘회개한 죄인들을 위한 보호소’를 세웠다.

요한은 1643년에 오라토리오회를 떠나 캉에서 새로운 사제회를 설립하였다. 그가 창립한 사제회는 재속 사제회로서 교구 신학교에서 성직자 양성과 본당 선교 활동을 통해 신자들에 대한 사목을 도모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그러나 오라토리오회 총장과의 불화 등의 이유로 그의 새로운 사제회는 오라토리오회와 얀센주의자들로부터 큰 도전을 받아 교황청의 인가를 받지 못하였다.

 

그러나 1650년 쿠탕스(Coutance)의 주교가 교구 내에 신학교를 설립해 달라고 요청하여 활기를 띤 이 사제회는 1851년에 교황청으로부터 인가를 받은 후 ‘예수 마리아 수도회’로 공식 명칭을 정하였으며

 

‘에우데스회’(the Eudists)로도 불린다. 또 같은 해 2월 8일 교구 주교로부터 캉에 개설한 보호소를 새로 구성해 ‘착한 목자회’로 승인을 받았으며, 1666년에 공식적인 수녀회로서 교황의 인가를 받았다.

 

이 수녀회는 주로 ‘타락한 여성들’을 위한 구제 활동을 전개하였다. 요한은 1653년에 리지외(Lisieux)에, 1659년에는 루앙(Rouen)에, 1666년에 에브뢰(Evreux)에, 1670년에는 렌(Rennes)에 신학교를 세웠다.

오늘날 그가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는 예수 성심의 환시를 체험하고 그 신심을 전파시킨 성녀 마르가리타 마리아 알라코크(Margarita Maria Alacoque, 10월 16일)처럼 예수 성심의 신심을 전파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사람들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그는 후에 예수 성심의 공경과 신심이 전파되고 축일이 제정되도록 하는데 선구자적인 역할을 하였다.

 

또한 성모 성심 공경의 보편화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성 요한 에우데스는 1909년에 시복되었으며, 1925년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성되었다.
 

 

                           “하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마태 19,14)
 
                               
                                                                (마태 19.13-15)
                                                            

                              ♣ 모두를 선물로 받아들이며 함께하는 하늘 나라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은 어린이들에게 손을 얹어 달라고 예수님께 데려온 이들을 나무랍니다(19,13).

 

이에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니 그들을 막지 말라고 하시며 어린이들에게 손을 얹어주십니다(9,14-15). 여기서 예수님의 태도와 제자들의 태도가 대조적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가까이 다가가려는 이들을 막습니다. 단순히 하느님의 축복을 받고자 하는 이들을 자기 잣대로 판단하며 힘을 행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성가시게 한다고 생각해서였을까요? 아무튼 제자들은 ‘큰 사람들’로 드러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어린이들을 위해서도 하느님께로부터 파견되셨음을 분명히 하십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는 이런 어린이들의 것”이라 하셨을까요? 어린이들이 순진무구하고 착해서 그런 것일까요? 아닙니다.

 

 여기서 어린이들은 스스로 ‘작은 이들’임을 깨닫는 사람들입니다. 어린이들은 국가에 대한 사회적 권리도 없고 무엇을 성취했다 하여 대가를 주장할 수도 없는 이들이지요.

‘어린이들’은 힘없고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사회적 약자들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존재 자체로 선물이기에 그 어떤 차별 없이 하느님의 축복과 생명 안에 머물도록 초대받았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누가 예수님께 올 수 있고 없는지를 가리려 합니다.

 

그들은 사회적 약자들이 하느님과 관계 맺는 것을 가로막은 셈입니다. 그러나 하늘 나라는 바로 그런 ‘작은 이들’의 것이라는 가르침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처신해야 할까요? 무엇보다도 먼저 하느님께서는 한사람도 빠짐없이 선물로 여기시며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상기해야겠습니다.

 

우리 모두는 사회적 지위나 재물, 학식, 갖가지 인연 등에 상관없이 하느님의 초대를 받았습니다.

 

따라서 그 누구도 하늘 나라에 들어갈 조건이나 예수님의 사랑을 받을 자격 여부를 판단하려 들지 말아야 합니다.

신앙생활에서조차 인간적인 잣대를 들이대며 하느님의 집의 문지기 노릇을 하려는 마음을 버려야겠지요. '큰 사람’이 되려는 태도를 버리고 예수님의 거룩한 수용성을 본받아야겠습니다.

 

하늘 나라는 하느님 없이는 살아갈 수 없음을 처절하게 느끼는 가난한 이들의 것입니다. 그 누구도 차별 받거나 따돌림 당하지 않는 현실이 하늘 나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세상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도 기꺼이 내놓으신 것이지요. 지극히 높으신 그분께서 온 존재를 바쳐 낮추시고 내려오시어 ‘차별과 소외의 빗장’을 빼내신 것입니다.

 

우리도 가정에서 교회에서, 수도공동체에서 빗장을 거는 사람이 아니라 문을 열고 모두를 끌어안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오늘도 차별과 소외와 배척을 조장하는 모든 빗장을 빼내고 모든 이에게 다가가는 ‘열린 사랑 광장’이 되도록 힘써야겠습니다.

 

우월감과 하찮은 잣대, 그리고 폐쇄적인 마음을 지닌 채 살아가는 불행한 ‘큰 사람’이 되지 않도록 관대함과 거룩한 개방성을 청하는 오늘입니다.

 

늘 가난하고 소외된 '작은 이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며 함께하는 선택을 게을리하지 않을 때 하늘 나라를 소유할 수 있지 않을까요?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