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7년 11월 8일 가해 연중 제31주간 수요일

dariaofs 2017. 11. 8. 06:08

 

강론   :   (루카 14,25-33)

 

<버림과 따름>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루카 14,26).”

이 말씀의 뜻은,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얻는 일에 방해가 되는 것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 사도를 꾸짖으신 일이 바로 좋은 예가 됩니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마태 16,23).”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가시는 길을 막았기 때문에

베드로 사도는 ‘걸림돌’이 되었고,

좀 더 편한 길로 가시라는 그의 말은 ‘사탄의 말’이 되었습니다.

가족과 다름없이 사랑하는 제자를 ‘사탄, 걸림돌’이라고 꾸짖으신 예수님의 심정은

결코 편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하셔야만 했습니다.

예수님 자신을 위해서도, 또 베드로 사도를 위해서도

그렇게 단호하고 과감한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었습니다.

 

가족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이고,

우리가 가장 먼저 사랑해야 할 사람들이고, 신앙생활의 동반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항상 가족을 위해서 기도하고,

가족과 함께 구원받기를 희망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만일에 가족이 ‘구원과 생명을 얻는 길’이 아닌

다른 길로 가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

정말로 가족을 사랑한다면, 가족이 가는 길을 막아야 하고,

‘구원과 생명을 얻는 길’로 인도해야 합니다.

그것이 진짜 사랑입니다.

(예를 들면, 가족이 도둑질을 하는 것을 보았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도둑질에 동참하는 것이 옳은가?

그것은 절대로 사랑이 아닙니다.

가족이 범죄자가 되는 것을 막는 것이 진짜 사랑입니다.)

 

그렇지만 가족 안에서 종교 문제로 갈등이 생겼을 때,

그 갈등을 해결하는 일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베드로 1서 저자는 이렇게 권고합니다.

“......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남편들도

아내인 여러분의 말 없는 처신으로 감화를 받게 하십시오.

그들은 여러분이 경건하고 순결하게 처신하는 것을 지켜보다가

그리될 것입니다(1베드 3,1-2).”

“이교인들 가운데에 살면서 바르게 처신하십시오.

그래야 악을 저지르는 자들이라고 여러분을 중상하는 그들도

여러분의 착한 행실을 지켜보고,

하느님께서 찾아오시는 날에 그분을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1베드 2,12).”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만, 가족 간의 종교 갈등은

논쟁이 아니라, ‘착한 행실로’ 감화시키는 방법으로 극복해야 합니다.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루카 14,27).”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 예수님의 뒤를 따라서 길을 걷다 보면,

쉽고 편한 구간도 만나고, 어렵고 힘든 구간도 만납니다.

만일에 쉽고 편한 구간에서만 예수님의 뒤를 따르고,

어렵고 힘든 구간에서는 따르지 않는다면,

예수님의 뒤를 끝까지 따라갈 수 없고,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없습니다.

쉽든지 어렵든지, 편하든지 힘들든지 간에

끝까지 한결같은 마음으로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야 합니다.

 

“너희 가운데 누가 탑을 세우려고 하면,

공사를 마칠 만한 경비가 있는지 먼저 앉아서 계산해 보지 않느냐?

그러지 않으면 기초만 놓은 채 마치지 못하여, 보는 이마다 그를 비웃기 시작하며,

‘저 사람은 세우는 일을 시작만 해 놓고 마치지는 못하였군.’

할 것이다(루카 14,28-30).”

이 말씀은 “마치지 못할 것 같으면 시작도 하지 마라.” 라는 말씀이 결코 아니고,

“처음부터 끝까지 전력을 다하여라.” 라는 가르침입니다.

 

세례를 받았지만 끝까지 충실하게 신앙생활을 할 자신이 없어서

중간에 신앙생활을 중단하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고,

그렇게 될까봐 아예 처음부터 세례받기를 포기하는 것도 어리석은 일입니다.

신앙생활은 사람의 힘만으로 하는 생활이 아닙니다.

우리를 부르신 예수님은 부르시기만 하고 내버려두시는 분이 아니라,

항상 끊임없이 우리를 도와주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면 예수님께서 도와주신다는 것도 믿어야 합니다.

바로 그 믿음 속에서, 우리 쪽에서도 계속 노력해야 합니다.

가다가 넘어지면 예수님께서 일으켜 주실 텐데,

예수님께서 내밀어 주시는 손을 잡고 다시 일어서는 것이 우리가 할 일입니다.

 

“또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가려면,

이만 명을 거느리고 자기에게 오는 그를 만 명으로 맞설 수 있는지

먼저 앉아서 헤아려 보지 않겠느냐?

맞설 수 없겠으면, 그 임금이 아직 멀리 있을 때에

사신을 보내어 평화 협정을 청할 것이다(루카 14,31-32).”

이 말씀은, “누가 하느님과 맞서서 이길 수 있겠느냐?

아무도 하느님을 이길 수 없으니,

심판의 날이 닥치기 전에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여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복음을 받아들이고,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사는 것이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하느님께서 주시는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그러나 만일에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하느님의 뜻을 거부한다면,

심판의 날에 멸망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와 같이 너희 가운데에서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루카 14,33).”

이 말씀은, 실제로 모든 것을 버리고 속세를 떠나서 도를 닦으라는 뜻이 아니고,

허무한 것들에 대한 집착을 버리라는 가르침입니다.

신앙인은 영원한 것을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허무한 것들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허무하다는 것을 몰라서 그런 것들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알면서도 집착하고, 알면서도 죄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눈앞의 이익만 생각하고 영원한 행복은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전주교구신풍성당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