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후손들에게 전해진 하느님의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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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탈리아 로마 성 바오로 대성전 내부. 가톨릭평화신문 DB |
구원을 가져다 주는 하느님의 힘
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의 서문에서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복음에 대한 바오로 사도의 생각입니다.
그는 “이 복음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예언자들을 통하여 미리 성경에 약속해 놓은 것으로, 당신 아드님에 관한 말씀”(로마 1,2-3)이라고 표현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예수님에 대한 내용이, 특별히 그의 죽음과 부활을 통한 구원의 내용이 이미 구약성경에, 예언서들에 약속으로 주어져 있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다윗의 후손에서 태어난 메시아로서 그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하느님의 아들로 우리에게 드러난 분입니다.
바오로 사도에게 이 복음은 “믿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구원을 가져다주는 하느님의 힘”입니다.(로마 1,16) 그리고 이 “복음 안에서 하느님의 의로움이 믿음에서 믿음으로 계시됩니다.”(로마 1,17)
바오로 사도의 구원에 대한 생각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의로움’과 ‘믿음’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편지에서 비교적 후대에 쓰인 편지들은 이 주제를 가장 중요하게 다룹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난 하느님의 의로움은 믿음을 가진 이들에게 주어집니다. 율법을 통해 의로움을 얻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통해 선사되는 의로움은 그 대상에서도 차이가 납니다.
율법을 통한 구원은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 유다인들에게 유보된 것이었습니다. 하느님의 구원은 아브라함의 혈통을 이어받은 이들에게 약속되었고 그들에게 주어진다는 것이 유다인들의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바오로 사도에게 아브라함은 믿음을 통해 의롭다고 인정받은 사람으로(로마 4,3) 그에게 주어진 하느님의 약속은 혈통의 후손이 아닌 믿음의 후손들에게 전해집니다.
바오로 사도나 유다인들 모두 아브라함으로부터 전해지는 하느님 약속을 말하지만, 대상에 있어 큰 차이가 있고, 이것이 그리스도교와 유다교를 구분하는 기준이 되기도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오는 하느님의 의로움은 믿는 모든 이를 위한 것입니다. 거기에는 아무런 차별도 없습니다.”(로마 3,22)
‘피의 속죄’는 믿음으로 얻어진 것
의로움은 바오로 사도에게 있어서 하느님의 구원을 요약해 주는 표현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속죄의 제물로 내세우셨습니다. 예수님의 피로 이루어진 속죄는 믿음으로 얻어집니다.
사람들이 이전에 지은 죄들을 용서하시어 당신의 의로움을 보여 주시려고 그리하신 것입니다.”(로마 3,25) 피로 이루어진 속죄와 믿음, 그리고 죄의 용서와 의로움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느님의 구원 업적을 이야기합니다.
그리스도 통해 드러난 화해와 용서
바오로 사도에게 죄는 하느님의 영광으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것이고 예수님은 다시 하느님과 화해할 수 있도록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신 분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우리를 죄로부터 자유롭게 한 사건이자 죄에서 벗어나 하느님과 관계를 회복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사건입니다. 이 일에서 사람들이 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그리스도를 통한 하느님의 은총으로 거저 주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구약성경에서 표현되던 하느님의 정의나 의로움은 심판에 관한 것으로 자주 받아들여집니다.
하지만 바오로 사도는 예수님을 통해 드러난 하느님의 의로움은 화해이며 죄의 용서라고 강조합니다.
필요한 것은 이러한 하느님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죄를 용서받고 하느님과 화해하며 하느님으로부터 의롭다고 인정받는 것은 믿음을 통해 의로움을 얻은 아브라함의 후손들, 곧 믿음의 후손들에게 지속적으로 전해집니다.
그렇기에 하느님은 믿는 모든 이들의 하느님입니다. 여기에는 어떤 구분이나 차별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 바오로 사도의 생각이고 이것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바오로 사도가 자신의 편지에서 들려주는 내용입니다.
지금 믿는 이들은 모두 아브라함의 믿음의 후손들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에게 했던 하느님의 약속은 우리에게 전해집니다. 곧 믿음으로 의롭게 되고 구원받는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기 위한 것이고, 그의 부활은 우리를 의롭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께 대한 믿음으로 우리 역시 죄를 용서받고 의롭다고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가톨릭대 신학대학 성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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