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 루카 21,29-33
<무화과나무의 교훈>
“무화과나무와 다른 모든 나무를 보아라. 잎이 돋자마자, 너희는 그것을 보고
여름이 이미 가까이 온 줄을 저절로 알게 된다.
이와 같이 너희도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 알아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가 지나기 전에 모든 일이 일어날 것이다.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루카 21,29-33).”
여기서 “여름이 이미 가까이 온 줄을 저절로 알게 된다.” 라는 말씀은,
“종말의 날이 오면 누구나 저절로 그것을 알게 된다.” 라는 뜻입니다.
(당시 그 지역에서는 여름이 추수철이었습니다.
성경에서 추수는 심판을 상징합니다.)
“너희도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이라는 말씀에서 ‘이러한 일들’은,
루카복음 21장 25절-26절에 기록되어 있는 표징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해와 달과 별들에는 표징들이 나타나고,
땅에서는 바다와 거센 파도 소리에 자지러진 민족들이 공포에 휩싸일 것이다.
사람들은 세상에 닥쳐오는 것들에 대한 두려운 예감으로 까무러칠 것이다.
하늘의 세력들이 흔들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에 ‘사람의 아들이’ 권능과 큰 영광을 떨치며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볼 것이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이다(루카 21,25-28).”
그 날이 되면 ‘전우주적인’ 어떤 표징들이 나타날 것입니다.
(어떤 지역에서만 일어나는 재난이 아니라, 우주 전체에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종말이 왔다는 것을 ‘저절로’ 알게 될 것입니다.
‘그 날’은 곧 ‘심판의 날’입니다.
심판받을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은 사람들은 까무러칠 정도로 무서워하겠지만,
준비를 제대로 한 사람들은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게 될 것입니다.
즉 구원과 생명을 받기 위해서 예수님을 맞으러 나갈 것입니다.
멸망할 사람들에게는 종말의 날이 무서운 ‘죽음의 날’이 되겠지만,
구원받을 사람들에게는 그 날은 상을 받는 ‘기쁜 날’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선포하기 시작하실 때부터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셨습니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15).”
이 말씀과 종말에 관한 말씀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복음을 선포하실 때 하신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말씀은,
하느님의 나라가 시작되었다는 뜻으로,
종말에 관해서 말씀하실 때 하신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말씀은,
하느님의 나라가 완성될 날이 왔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셨을 때 하느님의 나라가 시작되었고,
재림하실 때에 그 나라가 완성될 것입니다.
(‘종말’로 표현을 바꾸면,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셨을 때 종말이 시작되었고,
재림하실 때에 종말이 완성된다고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 종말의 시대를 살고 있는 셈입니다.
언제인지 모르는 먼 훗날의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세대가 지나기 전에 모든 일이 일어날 것이다.” 라는 말씀은,
정확한 뜻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그래도 이 말씀에 “종말은 틀림없이 온다.”는 뜻이 들어 있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도대체 종말의 날이 언제인가?” 라고 묻는 것은 부질없는 일입니다.
종말의 날이 언제인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신다(마르 13,32).”
인간의 과학을 총동원해도 그 날과 그 시간은 알아낼 수 없습니다.
하느님 아버지의 권한에 속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 날이 언제인지 알아내려고 시도하는 것은 지극히 어리석은 일입니다.
종말이 언제 오든지 간에 아무도 하느님의 심판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누구나 예외 없이 지상 생애를 마치면 하느님의 심판대에 서야 하기 때문입니다.
종말의 날이 아직 멀었다고 해도 나의 인생은 그 전에 끝날 수 있고,
최후의 심판을 받기 전에 사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나 다 회개를 서둘러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언제 부르실지 알 수 없습니다.
야고보서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생명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리는
한 줄기 연기일 따름입니다(야고 4,14).”
시편 저자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당신께서는 인간을 먼지로 돌아가게 하시며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아, 돌아가라.’
정녕 천 년도 당신 눈에는 지나간 어제 같고 야경의 한때와도 같습니다.
당신께서 그들을 쓸어 내시면 그들은 아침잠과도 같고
사라져 가는 풀과도 같습니다. 아침에 돋아났다 사라져 갑니다.
저녁에 시들어 말라 버립니다(시편 90,3-6).”
이런 말씀들은 단순히 “인생은 허무하다.”는 뜻의 말씀들이 아닙니다.
허무하지 않은 것을, 즉 영원한 것을 추구하라는 가르침입니다.
코헬렛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젊은이야, 네 젊은 시절에 즐기고
젊음의 날에 네 마음이 너를 기쁘게 하도록 하여라.
그리고 네 마음이 원하는 길을 걷고 네 눈이 이끄는 대로 가거라.
다만 이 모든 것에 대하여
하느님께서 너를 심판으로 부르심을 알아라(코헬 11,9).”
심판을 의식하지 않고 마음대로 막 살면 안 됩니다.
아무리 인생을 즐겁게 살았더라도 그렇게 살았던 사람들은
‘그 날’이 왔을 때 후회만 하게 될 것입니다.
(아마도 ‘후회’와 ‘절망’이
‘그 날’ 받게 될 벌 가운데에서 가장 무서운 벌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서,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라는 말씀은,
당신의 가르침을 충실하게 실행한 사람은 결코 인생이 허무하게 끝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약속으로도 해석할 수 있고, 영원한 생명을 얻기를 바란다면,
당신의 가르침을 충실하게 실행하라는 훈계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전주교구신풍성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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