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7년 12월 25일 나해 주님 성탄 대죽일 낮미사

dariaofs 2017. 12. 25. 02:00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강론   :   (요한 1,1-18)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요한 1,4-5).”

예수님은 ‘생명’이신 분이고, ‘빛’이신 분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어서 ‘구원의 빛’을 받게 되고 참 생명을 얻게 됩니다.

그러나 사람들 가운데에는 예수님을 배척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믿지 못해서 그러는 사람도 있고, 믿기 싫어서 그러는 사람도 있습니다.

(여기서 ‘깨닫지 못하였다.’는 ‘받아들이지 않았다.’로 번역을 바꿔야 합니다.)

 

1) 사람들 가운데에는 예수님의 겉모습만을 인간적으로 판단해서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필립보가 나타나엘에게 예수님에 대해서 말했을 때,

나타나엘은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

라는 말을 했습니다(요한 1,46).

그는 처음에는 예수님이 나자렛 출신이라는 것만 보았던 것입니다.

(그랬다가 예수님을 직접 만난 뒤에는 믿게 됩니다.)

 

2)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믿기 싫어서 안 믿었습니다.

“안식일이 되자 예수님께서는 회당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많은 이가 듣고는 놀라서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을까? 저런 지혜를 어디서 받았을까?

그의 손에서 저런 기적들이 일어나다니! 저 사람은 목수로서 마리아의 아들이며,

야고보, 요세, 유다, 시몬과 형제간이 아닌가?

그의 누이들도 우리와 함께 여기에 살고 있지 않는가?’

그러면서 그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마르 6,2-3).”

나자렛 사람들은 예수님의 지혜와 기적을 인정하면서도

예수님이 가난한 목수라는 점 때문에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가난한 목수가 지혜로운 말씀을 하고 기적을 행하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예루살렘 사람들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메시아께서 오실 때에는 그분이 어디에서 오시는지 아무도 알지 못할 터인데,

우리는 저 사람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고 있지 않습니까?(요한 7,27)”

이 말에는 두 가지 뜻이 들어 있습니다.

“예수에게는 메시아다운 신비감이 없다. 그러니 메시아가 아니다.”

“우리는 예수의 출신과 직업과 가족 등을 잘 알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을 근거로 해서 생각해 보면, 예수를 메시아로 믿을 수 없다.”

자기들이 예수님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그들의 자만심은 죄입니다.

하느님의 일을 자기들 마음대로 판단하고 배척했기 때문입니다.

 

3) 오늘날에도 예수님을 안 믿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다른 종교를 믿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고,

또는 어떤 사상에 빠져 있어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보다 더 우리가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점은,

교회의 모습과 신앙인들의 모습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을 안 믿으려고 하는 경우입니다.

즉 그리스도교의 안 좋은 모습들을 보고 예수님을 싫어하는 경우입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교회 탓이고, 신앙인들 탓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경우에 대해서 이렇게 경고하셨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그러나 소금이 제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할 수 있겠느냐?

아무 쓸모가 없으니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힐 따름이다(마태 5,13).”

교회 구실을 제대로 하지 않는 교회와 신앙인답지 않게 살고 있는 신앙인들은

‘제 맛을 잃은 소금’과 같습니다.

하느님께도 아무 쓸모가 없고, 세상 구원에도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그러니 버려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 당신의 이름을 믿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다.

이들은 혈통이나 육욕이나 남자의 욕망에서 난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난 사람들이다(요한 1,12-13).”

신앙인은 세례성사를 통해서 하느님의 자녀로 새로 태어난 사람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이 육에 따라 살면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힘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 것입니다.

하느님의 영의 인도를 받는 이들은 모두 하느님의 자녀입니다(로마 8,13-14).”

“그리고 이 성령께서 몸소,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임을 우리의 영에게 증언해 주십니다.

자녀이면 상속자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상속자입니다.

그리스도와 더불어 공동 상속자인 것입니다.

다만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누리려면

그분과 함께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로마 8,16-17).”

하느님의 자녀로서 구원과 생명이라는 은총을 상속 받으려면

세속적인 욕심과 욕망들을 버리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신앙인은 자기 욕망대로 사는 사람이 아니라 성령의 힘을 받아 사는 사람입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외아드님으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았다(요한 1,14).”

하느님이신 분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신 것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즉 우리를 당신이 누리시는 영광 속으로 데리고 가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최후의 만찬 때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이들도

제가 있는 곳에 저와 함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세상 창조 이전부터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시어 저에게 주신 영광을

그들도 보게 되기를 바랍니다(요한 17,24).”

예수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당신이 하느님으로서 누리고 계시는 영광을

신앙인들도 누리는 것, 즉 당신의 나라에서 당신과 함께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여기서 “그들도 보게 되기를 바랍니다.” 라는 말씀은,

“그들도 누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라는 복음서 저자의 고백은,

“그분이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체험했고, 믿게 되었다.” 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 일은 예수님께서 바라신다고 저절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닙니다.

신앙인들 자신들이 스스로 응답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이 영원한 생명을 누리기를 바라셔서 세상에 오셨는데,

그 생명은 얻기를 희망하고 얻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만 얻게 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전주교구신풍성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