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르고 실천하라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대한, 에페소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이하 에페소서)의 성찰은 교회 안의 삶으로, 신앙인들의 실천적인 모습으로 옮겨갑니다. 에페소서에서 전하는 생활에 관한 권고는 상당히 구체적입니다.
가장 먼저 강조하는 것은 새로운 생활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신앙인의 새로운 삶이고 이것은 하느님의 새로운 창조로 표현됩니다.
“여러분의 영과 마음이 새로워져, 진리의 의로움과 거룩함 속에서 하느님의 모습에 따라 창조된 새 인간을 입어야 한다는 것입니다.”(에페 4,23-24; 콜로 3,10 참조) 여기서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창세기에서 표현하는 인간의 창조입니다.
인간은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되었지만(창세 1,26-27) 죄와 그릇된 생활방식으로 창조 때의 모습을 잃어갔습니다. 하느님은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창조를 이루십니다. 잃었던 ‘하느님의 모습’을 회복하고 누릴 수 있도록 해주는 것입니다.
너그럽고 자비롭게
이런 새로운 창조 안에서의 삶으로 제시되는 것은 자비와 용서입니다. “서로 너그럽고 자비롭게 대하고,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에페 4,32)
신약성경의 서간들에서 강조되는 것은 바로 ‘자비와 용서’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위한 바탕은 그리스도의 모범입니다.
십자가 희생을 통해 우리 죄를 없애신 그리스도의 업적은 하느님 자비의 궁극적인 표현입니다. 초대 교회에서 이런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르는 것은 신앙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표현됩니다.
에페소서는 이렇게 권고합니다. “여러분은 한때 어둠이었지만 지금은 주님 안에 있는 빛입니다. 빛의 자녀답게 살아가십시오. 빛의 열매는 모든 선과 의로움과 진실입니다.
무엇이 주님 마음에 드는 것인지 가려내십시오.”(에페 5,8-10) 하느님을 빛으로 표현하는 것은 신약성경에서 낯설지 않습니다.(1요한 1,5; 2,8)
빛의 반대 표현인 어둠은 하느님을 알지 못하는 상태를 나타내기도 하고(에페 4,18) 하느님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 생활을 나타내기도 합니다.(로마 13,12)
이제 신앙인들은 빛의 자녀로 다시 태어난 이들이고 그들은 빛을 따라 살아가는 이들입니다. 그것이 초대 교회 안에서 신앙인들에게 요청했던 가장 중요한 실천적인 모습입니다.
에페소서는 윤리적인 차원에서 실천해야 할 신앙인들의 자세에 대해 설명하면서 악의 세력에 대항하여 영적인 투쟁을 준비하도록 권고합니다.
“악마의 간계에 맞설 수 있도록 하느님의 무기로 완전히 무장하십시오.”(에페 6,11) 이 표현의 구체적인 의미는 악마의 간계에 맞서 굳게 서 있도록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주님 안에 굳건히 서 있다는 것은 성경에서 말하는 흔들림 없는 믿음을 나타냅니다. 에페소서는 비유적으로 ‘믿음이라는 방패’와 ‘성령의 칼’을 말합니다. 성령의 칼은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악의 세력에 맞서 믿음과 하느님의 말씀으로 영적인 투쟁을 이어가도록 권고하는 에페소서는 그 근거를 그리스도에게서 찾습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마귀를 쫓아내고 병든 이들을 치유하는 것을 통해 이미 악의 세력을 물리쳤음을 보여줍니다.
또한, 악의 세력을 없애는 하느님의 힘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드러났습니다. 결국, 이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영적으로도 악마의 유혹에 맞서 투쟁하는 것 역시 그리스도의 모범에 충실한 모습입니다.
그리스도도 믿음도 하나
초대 교회의 실천적인 내용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을 바탕에 둡니다. 교회의 삶은 철저하게 예수님의 모범을 따르는 것이고 실천을 통해 그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이런 교회의 삶에서 강조되는 것은 일치입니다.
“성령께서 평화의 끈으로 이루어주신 일치를 보존하도록 애쓰십시오.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실 때에 하나의 희망을 주신 것처럼, 그리스도의 몸도 하나이고 성령도 한 분이십니다.
주님도 한 분이시고 믿음도 하나이며 세례도 하나이고, 만물의 아버지이신 하느님도 한 분이십니다.”(에페 4,3-6)
하나의 세례를 받고 하나의 몸을 이루며 성령을 따르는 삶을 살아가는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르는 실천적인 공동체입니다.
내적으로는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일치를, 그리고 외적으로는 예수님을 통해 체험한 자비와 용서를 살아가는 것이 교회의 모습입니다.
<가톨릭대 신학대학 성서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