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교 관습에 얽매인 그릇된 가르침을 경계하라
▲ 티모테오에게 보낸 서간에서 바오로 사도의 차명 저자는 유다교적 관습에서 비롯된 그릇된 가르침을 멀리하라고 강조한다. 사진은 로마 병사들이 유다교 촛대(메노라)를 운반하는 모습이 새겨진 1세기 시대의 부조물의 모형. 【CNS 자료사진】 |
바오로 사도의 이름으로 보낸 차명 서간 중에 그의 협력자를 수신인으로 하는 편지가 있습니다. 티모테오에게 보낸 첫째와 둘째 서간, 그리고 티토에게 보낸 서간이 그것입니다. 이 서간들은 바오로의 차명 서간이면서 사목서간으로도 불립니다.
왜냐하면, 서간들의 공통적인 내용이 바오로 서간의 주제와는 차이가 있고 특별히 그릇된 가르침과 그에 대한 반박 그리고 교회에 봉사하는 직무에 대해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한 개인에게 써 보낸 편지의 형태로 되어 있지만 실제로 편지에서 다루는 것은 교회 제도와 직무의 권한에 관한 것이고 넓은 의미에서 사목직에 관한 것입니다.
사목서간은 모두 100년 즈음 소아시아 지방에서 기록되었을 것으로 봅니다. 하지만 서간에서 에페소가 자주 언급된다는 점에서 에페소를 저술 장소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1티모 1,3; 2티모 1,18; 4,12)
또한 꽤 많은 학자는 이 서간들이 하나의 모음집 형태였을 것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만큼 내용상으로 공통된 주제를 다루며 간혹 서로 보완하는 설명들을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티토에게 보낸 서간 2장 1-15절에 표현되는 다양한 이들에게 대한 가르침은 티모테오에게 보낸 첫째 서간 6장1-2절의 내용과 함께 의미를 조금 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목서간에서 찾을 수 있는 첫 번째 주제는 그릇된 가르침에 대한 경고입니다. “신화나 끝없는 족보에 정신을 팔지 말라고 지시하십시오. 그러한 것들은 믿음을 통하여 알려지는 하느님의 계획에는 도움이 되지 않고, 억측만 불러일으킵니다.
그러한 지시의 목적은 깨끗한 마음과 바른 양심과 진실한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입니다.”(1티모 1,4-5) 여기서 언급되는 ‘신화나 끝없는 족보’는 서간에서 강조하는 ‘건전한 믿음’과 반대되는 표현입니다.
많은 이들은 유다교의 율법을 강조하는 가르침과 당시 많은 영향을 주었던 영지주의(靈地主義, Gnosis)가 결합된 형태로 생각합니다. 이런 면에서 보면 사목서간 역시 바오로 사도의 주된 신학을 그대로 이어받고 있습니다.
유다교의 율법과 관습을 비판하는 내용은 사목서간에 고루 퍼져 있습니다.
티모테오에게 보낸 첫째 서간만이 아니라 티토에게 보낸 서간에서도 유다교의 경향을 가진 반대자들을 언급하는데 그 안에서 ‘할례받은 자들’(티토 1,10)이나 ‘유다인들의 신화와 진리를 저버리는 인간들의 계명’(티토 1,14)이라는 표현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런 표현들을 통해 사목서간에서 말하는 건전하지 못한 그릇된 가르침은 유다교적인 바탕에서 전해지는, 유다교의 관습과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을 결합하는 경향들을 일컫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스도교로서 자리를 잡아가던 초대 교회는 이런 그릇된 가르침으로부터 신앙인들을 보호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내부적으로 가장 큰 갈등을 겪었습니다. 그릇된 가르침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목서간에서 강조하는 것은 건전한 가르침입니다.
이에 관해서 티모테오에게 보낸 첫째 서간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건전한 가르침은 복되신 하느님의 영광스러운 복음에 따른 것으로, 나는 이 복음을 위임받았습니다.”(1티모 1,11)
복음은 바로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하시는 하느님에 관한 것입니다. “하느님은 한 분이시고 하느님과 사람 사이의 중개자도 한 분이시니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당신 자신을 모든 사람의 몸값으로 내어주신 분이십니다.”(1티모 2,5-6)
바오로 사도에게서 볼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목서간은 구원의 보편적인 전망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줍니다. 하느님의 은총은 모든 이들에게 구원을 가져다줍니다.(티토 2,11)
사목서간에서 이런 구원을 표현할 때 특징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나타난다’입니다. 이 표현은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사건에도(2티모 1,10), 그리고 다시 오심을 언급할 때에도 사용됩니다.(1티모 6,14; 티토 2,13)
사목서간이 드러내는 초대 교회의 모습은 예수님의 첫 번째 오심과 두 번째 오심의 중간 시기에 해당합니다. 이 시기는 ‘현재’의 시간입니다. 우리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시간을 살고 있습니다.
<가톨릭대 신학대학 성서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