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7년 1월 21일 나해 연중 제3주일

dariaofs 2018. 1. 21. 00:30





 강론   :   (마르 1,14-20)


 

<갈릴래아 전도를 시작하시다. 어부 네 사람을 제자로 부르시다.>

 

“요한이 잡힌 뒤에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에 가시어,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14-15)”

 

여기서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라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복음’(기쁜 소식)이고,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라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복음을 들은 사람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때가 차서”는 “이제 때가 찼다.”, 즉 “구원의 때가 시작되었다.”입니다.

(“곧 온다.”가 아니라, “이미 시작되었다.”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구원받은 사람들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되는 나라입니다.

“가까이 왔다.”는 “시작되었다.”입니다.

(근처 가까운 곳에 와 있다는 뜻이 아니라, 이미 우리 가운데에 있다는 뜻입니다.)

하느님의 나라가 언제 오느냐고 바리사이들이 물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또 ‘보라, 여기에 있다.’,

또는 ‘저기에 있다.’ 하고 사람들이 말하지도 않을 것이다.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루카 17,21).”

하느님의 나라는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셨을 때 시작되었고, 지금 진행 중이고,

종말의 재림 때에 완성될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우선 먼저 회개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복음을 믿어야 합니다.

복음을 믿는다는 말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예수님의 뒤를 따르고,

예수님의 가르침들을 실천하는 것을 모두 포함하는 말입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야 할 ‘때’는 바로 ‘지금’입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에는 믿지 않는 악한 마음을 품고서

살아 계신 하느님을 저버리는 사람이 없도록 조심하십시오.

‘오늘’이라는 말이 들리는 한 여러분은 날마다 서로 격려하여,

죄의 속임수에 넘어가 완고해지는 사람이 하나도 없도록 하십시오(히브 3,12-13).”

‘오늘’은 신앙생활을 하라고 하느님께서 사람들에게 주신 시간입니다.

‘내일’은 하느님의 권한에 속한 날입니다.

인간은 내일의 일을 알지 못합니다(야고 4,14).

(‘내일’이라는 시간이 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루카복음을 보면,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약속하면서도, 다른 일을 먼저 해야 하니까

따르는 일은 ‘나중에’ 하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나옵니다.

“또 다른 사람이 ‘주님, 저는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그러나 먼저 가족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게 허락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루카 9,61-62)”

예수님을 따르는 일은 ‘지금’ 해야 하는 일입니다.

(여기서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 라는 말씀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라는 뜻입니다.)

사랑과 선행을 실천해야 하는 때도 항상 ‘지금’이고,

용서하고 화해해야 하는 때도 항상 ‘지금’입니다.

지금이 아닌, 다른 적당한 때는 없습니다.

따라서 ‘좋은 때’를 기다리기만 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고, 어리석은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호숫가를 지나가시다가,

호수에 그물을 던지고 있는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아를 보셨다.

그들은 어부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그러자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예수님께서 조금 더 가시다가, 배에서 그물을 손질하는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을 보시고, 곧바로 그들을 부르셨다.

그러자 그들은 아버지 제베대오를 삯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두고

그분을 따라나섰다(마르 1,16-20).”

 

이 이야기에서는, 예수님께서 어부들을 제자로 부르시자마자

그들이 ‘곧바로’ 따라나섰다는 것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어부들은 하던 일을 중단하고, 가족들에게 작별 인사도 하지 않고,

곧바로 예수님을 따라나섰습니다.

(그물을 ‘버리고’ 라는 말과 아버지를 ‘버려두고’ 라는 말은,

제자들이 어떤 마음으로 예수님을 따라나섰는지를 잘 나타냅니다.)

만일에 그들이 “하던 일을 마무리할 시간을 조금만 주십시오.” 라고 청했다면?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

라고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지금’ 부르시니, 따라나서는 일도 ‘지금’ 해야 합니다.

(이 말은 사도들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루카 12,35-36).”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는 것은,

주인의 도착 시간이 ‘나중’이 아니라 ‘지금’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주인이 늦게 올 수도 있는데, 그것은 주인 쪽의 일이고,

종의 입장에서는 항상 ‘지금’이어야 합니다.

 

예수님 말씀에서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라는 말씀은,

“내가 너희를 사람을 살리는 사도로 삼겠다.” 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물은 ‘죽음’을 상징하고,

물속에 있는 사람을 물 밖으로 꺼내는 일은 사람을 살리는 일을 뜻합니다.)

사람을 살리는 일도 항상 ‘지금’ 해야 하는 일입니다.

선교활동은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서 ‘생명의 복음’을 전해 주는 일이기 때문에

그 일도 역시 항상 ‘지금’ 해야 하는 일입니다.

선교활동을 하기에 가장 좋은 때는 따로 없습니다.

언제나 항상, 바로 지금 해야 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말씀을 선포하십시오.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꾸준히 계속하십시오(2티모 4,2).”

기회가 좋거나 나쁜 것을 따질 겨를이 없습니다.

생명과 죽음의 갈림길에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지금’이 바로 ‘그때’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전주교구신풍성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