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후는 왕이 되자 이방인과의 관계를 끊었다. 예언자들의 지지를 받았기 때문이다. 페니키아엔 등을 돌렸고 바알 신전은 철저히 파괴했다. 하지만 베텔과 단의 금송아지 상은 철거하지 않았다.
우상인 줄 알면서도 그대로 뒀다. 단과 베텔은 이스라엘 북쪽 끝과 남쪽 끝에 있던 도시다. 그곳에 금송아지 상을 세운 건 민중이 남쪽으로 가는 걸 막기 위해서였다. 예루살렘이 아니더라도 단과 베텔에서 제사드리라는 것이었다.
앞선 왕조들의 몰락 이유다. 그런 스토리를 알면서도 예후는 방치한 것이다. 그의 왕조 역시 살룸의 쿠데타로 끝나게 된다. 당시 각광받던 예언자는 엘리사Elisha였다. 쿠데타 세력의 정신적 지주였다.
예후의 지나친 학살에 제동을 걸 수 있었건만 침묵했다. 이제벨 세력 청산이 우상숭배 근절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우상 문제는 시급한 과제였다. 하지만 남쪽엔 이제벨 딸 아탈야가 정권을 잡고 있었다.
아버지 나라에서 친족이 몰살되는데 무심할리 없다. 이후 남과 북은 돌이킬 수 없는 관계가 된다. 아합 때 시작된 화합 무드는 깨진 것이다. 같은 조상과 같은 신앙을 공유한 공동체가 다시 원수가 되었다.
남과 북엔 예언자들이 많았다. 그런데도 힘을 쓰지 못했다. 훗날 호세아는 예후를 비난하는 예언을 남겼다(호세 1,4).
엘리사는 활동에 지장을 받지 않았다. 예언자들 대부분이 비난과 핍박을 받았지만 엘리사는 예외였다. 하지만 겸손했고 청렴하게 처신했다. 열왕기 하권 4장과 5장은 그가 행한 기적 이야기다.
제자의 아내를 위해 기름이 많아지게 했으며 보리빵 스무 개로 군중을 배불리 먹였다. 수넴 여인의 죽은 아들까지도 살렸다(2열왕 4,35).
5장은 아람의 군인 나아만을 낫게 하는 이야기다. 나병에 걸린 그가 엘리사 지시대로 강물에 몸을 담그자 병이 낫는다(2열왕 5,14). 간단한 사실이 장황하게 묘사되어 있다.
아람은 이방인의 나라다. 그곳까지 엘리사의 위대함은 알려졌다는 것이다. 엘리사는 평범한 농부였지만 부르심을 받자 즉시 응답했다. 그리곤 동네 사람들을 불러 성대한 송별식을 가졌다(1열왕 19,21).
부자였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허름한 옷에 지팡이를 들고 다니는 대머리였고 가끔 아이들 놀림감이 되기도 했다(2열왕 2,23). 기적의 예언자였지만 소박했던 것이다. 공포정치의 예후와 대비되는 모습이다.
엘리사는 이스라엘이 아람과 전쟁 중일 때 선종했다(2열왕 13.20). 당시 임금은 예후의 손자 여호아스였다.
신은근 바오로 신부(마산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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