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세계] 즈루빠벨 성전 (1)
유배에서 돌아온 유대인은 예루살렘 성전 재건에 몰입한다. 믿음의 중심인 건물이었기 때문이다. 역사에 등장하는 즈루빠벨 성전이다. 당시 유대 총독이 즈루빠벨(Zerubbabel)이었기에 그의 이름을 붙인 것이다.
유다 지파 사람으로(마태 1,12) 바빌론에서 태어난 2세였다. 즈루빠벨 뜻은 바빌론 출신이란 의미다. 이스라엘 이름은 세스바차르였다(에즈 1,8). 유대인 본국 귀환이 시작될 때 키루스 왕은 그를 총독으로 임명했다.
5만의 군중을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가야 하는 막중한 임무였다. 1차 바빌론 귀환이다(BC 537년). 이렇게 해서 즈루빠벨은 이스라엘 행정을 책임진 관료가 되었다.
그와 함께 대사제 예수아는 바빌론이 약탈해간 성전 기물을 되찾아왔다. 물론 키루스 왕의 호의였다.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이듬해 둘째 달(에즈 3,8). BC 537년 5월경, 즈루빠벨과 대사제 예수아는 성전 기공식을 한다. BC 587년 바빌론이 파괴한 솔로몬 성전을 다시 짓는 것이었다. 장소는 그대로였다. 하지만 규모는 초라했다.
옛 성전의 웅장함을 봤던 노인들은 눈물을 흘렸다(에즈 3,12). 그러나 백성 전체는 환호하였다. 이후 사마리아인과 불화 사건에 휩싸인다. 그들의 성전 건축 동참을 원로들이 막았기 때문이다.
이교도와 섞여 살았다는 것이 이유였다. 부정한 존재가 되었는데 어떻게 참여시키겠냐는 것이었다. 사마리아인의 자존심을 건드린 것이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건축을 반역행위로 몰았다(에즈 4.16). 예루살렘 성이 완공되면 반란을 일으킬 것이라 고발한 것이다. 이후 성전 공사는 16년간 중단된다. 즈루빠벨은 본국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예언자 하까이와 즈카르야는 민중을 독려하며 기다리자고 외쳤다. 마침내 다리우스 왕 2년 공사가 재개된다(BC 520년). 임금은 국고지원을 명했고 조공 일부가 건축비로 들어오게 된다(에즈 6.8). 모든 결정의 중심에는 즈루빠벨 총독이 있었다.
마침내 기원전 516년 성전은 완공되고(에즈 6,15) 이듬해 봉헌식을 가졌다. 역사에서 말하는 제2성전이며 즈루빠벨 성전이다. 훗날 헤롯 대왕은 화려하게 증축했다. 46년 걸렸다. 제3성전이라 불리는 헤롯 성전이다.
하지만 70년 독립전쟁으로 무참히 파괴되었고, 통곡의 벽이라 부르는 서쪽 벽만 남아 있다. 제1성전은 솔로몬 성전이다. 기원전 967년 짓기 시작해 7년 뒤 완성되었다.
길이 31m, 폭 10m, 높이 15m 당시 건축 기술로는 획기적인 건물이었다. 세 성전 모두 예루살렘 북동쪽 같은 장소에 세워졌다.
신은근 바오로 신부(마산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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