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세계] 즈루빠벨 성전 (2)
즈루빠벨 성전에 대한 기록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솔로몬 성전보다 소박했던 것으로만 알려져 있다. 기공식 때 옛 성전을 봤던 노인들은 울었다고 성경은 전한다(에즈 3,12). 규모가 작았기 때문이다.
옛 성전 중심은 계약 궤를 보관한 지성소였다. 궤 안에는 십계명을 새긴 석판을 넣었고 주님께서 현존하는 장소로 여겼다. 대사제만 출입할 수 있었던 이유다. 그런데 성전 파괴 때 잃어버린다. 엄청난 쇼크였다. 이후 다시 만들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즈루빠벨 성전이 등장한 것이다. 자연스레 생활의 중심이 되었고 사제들은 한층 강화된 권위를 가졌다.
제2성전은 희랍 시대를 거치며 헤롯 대왕 때까지 500년간 유지된다. 즈루빠벨 뒤를 이어 느헤미야가 유대 총독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성전 주위 성벽을 다시 쌓았고 BC 437년 마무리했다.
기원전 331년 페르시아는 그리스에 굴복한다. 오리엔트 지역이 알렉산드로스 휘하에 놓인 것이다. 하지만 이듬해(BC 323년) 알렉산드로스 왕이 급사하자 이 지역은 셀레우코스 장군 휘하에 들어간다. 그는 보병부대 지휘관이었다.
혼란을 수습한 그는 스스로 임금이 되었고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 셀레우코스 왕조의 시작이다. 4번째 임금이 안티오코스 4세로 에피파네스라 불린 인물이다.
유대인에게 희랍 문화를 보급시킨다는 구실로 종교적 박해를 가했기에 폭군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는 즈루빠벨 성전 안에 제우스 신상을 세웠고 제단에는 돼지를 죽여 피를 뿌리기도 했다.
에피파네스란 ‘신이 등장했다.’라는 뜻이다. 자신을 희랍의 신이 나타난 것으로 선포한 것이다. 그러니 왕을 따르는 자체가 신심 깊은 유대인들에겐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정통 유대인들이 반발하자 군대를 보내 핵심 인물들을 처형했고 예루살렘 성벽을 허물기도 했다. 성전에서의 종교예절과 할례를 금했고 안식일을 지키면 사형에 처했다. 발견되는 두루마리는 모두 불태워 버렸다. 당연히 저항이 있었다.
기원전 167년 마카베오 가문을 중심으로 독립투쟁이 일어난 것이다. 3년 후인 BC 164년 안티오쿠스 4세는 죽고 독립전쟁은 승리한다. 마카베오는 즈루빠벨 성전 안에 있던 제우스 상을 없애고 새롭게 제단을 쌓았다.
성전 정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유대인들은 이날을 기념하기 위해 성대한 축제를 벌였다. 지금까지 지켜지고 있는 하누카(Hanukkah) 축제다. 하누카는 봉헌(奉獻)을 뜻한다. 매년 12월 25일 시작해 8일간 이어진다.
신은근 바오로 신부(마산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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