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그분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됩니다.> (1요한 4,12)
사실 그 어떤 열심한 신앙인도 하느님을 직접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하느님을 잘 안다고 여깁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할까요?
내가 사랑하면 할수록,
내가 나누면 나눌수록,
내가 희생하면 할수록,
그만큼 사랑이신 하느님을, 자비와 은총의 하느님을 점점 더 깨닫기 때문이지요.
이처럼 사랑은 우리를 하느님과 비슷하게 만들어줍니다. 그러니 어찌 더 사랑하지 않을 수 있고, 어찌 "하느님은 사랑이시다"(1요한 4,16)고 고백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오늘도 사랑 때문에 울고웃는 그런 날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복음은 물 위를 걸으시는 예수님 이야기를 전해 줍니다. 이는 예수님이 마치 중국 무협지에서 나오는 무예가 출중한 사람처럼 도통한 사람임을 드러내려는 이야기는 아닐 겁니다. 그럼 무얼 말하려는 걸까요?
제자들은 호수 한가운데서 맞바람을 만나 위기를 겪습니다. 마치 우리가 이 세상풍파 가운데 살아가며 때론 맞닥뜨리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런 위기의 순간에 제자들이 요청하지 않았는데도 예수님이 먼저 찾아오셔서 도와주시고자 하십니다.
사실 예수님은 당신의 벗들을 사랑하시기에 위기에 처하도록 내버려 두실 수가 없는 분이십니다.
마치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을 보고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를 구하기 위해 물속으로 뛰어드는 사람처럼, 그렇게 예수님은 사랑하는 당신 제자들을 위기에서 구하시기 위해 발이 땅(물)에 닿지 않을 정도로 재빨리 달려 오십니다.
물 위를 걸으시는 것은 예수님의 이적이 아니라 사랑의 기적입니다.
그런데도 제자들은 이렇게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오신 예수님조차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합니다. 아직도 예수님의 사랑의 크기와 깊이를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그래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쫓아냅니다. 두려움은 벌과 관련되기 때문입니다. 두려워하는 이는 아직 자기의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사람입니다."(1요한 4,18)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두려움을 쫓아내도록 격려하십니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마르 6,50) 그리고 배에 올라 그들과 함께 하십니다.
마치 두려움에 떨다가 엄마가 와서 안아주고 함께하니 아기가 울음을 뚝 그치고 금새 평화를 되찾듯이, 풍랑도 잔잔해지고 제자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쉽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이라는 바다를 항해하는 조그만 배를 타고 여행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목적지인 하늘 나라에 도착하기까지 가끔은 풍파에 시달리게 되고 위험에 처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 두려워 떠는 우리 앞에 그분이 홀연히 나타나셔서 우리와 함께 해 주실 겁니다. 그분은 그렇게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러니 우리는 그저 그 사랑을 믿고 우리도 사랑 안에 더 성장하는 것밖에 다른 할 일이 없습니다.
사랑은 풍랑마저 잠재웁니다. 아멘.
오상선 바오로 신부 (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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