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묵상을 하다보면, 어떤 날엔 말씀이 귀에 쏙쏙 들어와서 잘 알아듣겠는데 어떤 날엔 도무지 그 말씀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글자와 문맥은 알아듣지만 지금 여기서 나에게 하시는 말씀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말이지요. 여러분도 그러시지요? 왜 그럴까요?
하느님은 직설법으로 말씀하시기보다는 비유법으로 주로 말씀하신다네요.
비유법으로 하시는 말씀을 직설법 언어로 알아들으려니 무리가 따를 수밖에요. 직설법 언어는 머리(지성)로 알아듣고, 비유법 언어는 마음(감성)으로 알아 들어야 더 잘 들립니다.
따라서 마음과 생각이 하느님의 법으로 충만하지 않는다면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명료하게 이해할 수 없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오늘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그들의 마음에 내 법을 넣어 주고 그들의 생각에 그 법을 새겨 주리라."(히브 10,16)
사실 우리 마음이 온갖 세상적인 것들로 더럽혀져 맑지 못하고 죄와 허물로 얼룩져 있다면, 이미 일그러진 마음의 눈으로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알아보거나, 소음에 찌들린 귀로 그 말씀을 어찌 알아들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하느님께서 우리 마음과 생각을 당신 법으로 새겨주시어 우리 마음을 새롭게 정화시켜 주시고자 합니다. 그리되면 하느님께서 말씀하실 겁니다. "나는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의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으리라."(히브 10,17)
이 상태가 되면 마음과 생각이 온전히 정화되었기에 "모든 것이 용서되어서 더 이상 죄 때문에 바치는 예물이 필요 없게" 된답니다.(히브 10,18) 바로 대사제이신 예수님이 그러하셨던 것처럼 말이죠.
그러니 말씀 묵상이 잘 안된다면, 먼저 내 마음 상태부터 보아야겠군요. 내 마음과 생각을 정화시키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하는데, 뭔가 답을 건지려는 마음만 급했을 가능성이 많다고 봐야겠지요.
그런데 왜 하느님의 말씀은 비유로만 전해지는 걸까요? 그냥 모두가 알아듣기 쉽게 말씀해주시면 안되나요? 그건 분명한 것 같아요. 왜냐하면 그렇지 않으면 머리 좋은 사람만이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꿰뚫어 알아버린다는 거잖아요.
그건 아니죠. 머리 나쁜 사람도 알아들을 수 있는 하느님 나라의 신비가 되어야 맞지요. 그게 공평해요. 결국 머리가 나빠도, 공부를 못해도 하늘 나라 가는데는 아무 문제가 없답니다.
그렇다고 마음만 착하다고 그 신비를 다 알아들을 수 있을까요? 그것도 아닌 것 같아요. 마음과 생각이 적어도 맑아야 하는 것은 맞는 것 같은데 또 무엇이 더 필요할까요?
아마도 하느님과 얼마나 가까이 있는가의 문제가 아닐까요? 가까이 있을수록 말과 소리를 더 잘 들을 수 있습니다. 가까이 있어야 더 잘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에서 예수님께서는 비유 말씀의 뜻을 설명해 주시면서 당신 "둘레에 있던 이들"(마르 4,10)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는 하느님 나라의 신비가 주어졌지만, 저 '바깥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그저 비유로만 다가간다."(마르 4,11)
마르코는 어제 복음에서도 그랬듯이, 오늘도 예수님을 중심으로 그분과 가까이 있는 사람들과 바깥에 멀리 있는 사람들을 은근히 대조시키고 있습니다.
그분 곁에 머무는 사람만이 말씀을 알아듣고 하늘 나라의 신비를 깨친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래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온"(마르 1,15) 것을 보고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여러분, 이제 우리가 해야할 일은 명료해졌습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세상의 법이 아니라 하느님의 법으로 가득 채우는 일과 무조건 예수님과 가까운 자리에 머무는 것입니다.
가장 멋지고 아름다운 집을 원한다면, 성당 가까운 곳으로 가십시오. 언제나 마음만 먹으면 예수님 곁에 머물 수 있는 집이 가장 좋은 집입니다.
오늘도 우리의 마음 밭을 깨끗이하여 예수님 곁에 머물면서 좋은 말씀의 씨를 받아(마르 4,20 참조), 하늘 나라의 신비를 충만히 알아듣는 기쁨을 누리시길 축원합니다.
"들을 귀 있는 사람은 들으라."(마르 4,9) 아멘.
오상선 바오로 신부 (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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