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9.02.01. 연중 제3주간 금요일

dariaofs 2019. 2. 1. 01:07




2월의 첫날입니다. 2월은 1년 열두 달 중에 가장 짧은 달이지요. 그만큼 빨리 지나가니 더 알차게 하루하루를 보내야겠습니다. 2월도 말씀 안에 머무르며 말씀 안에서 큰 기쁨을 누리시길 빕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두 가지 비유로써 하느님 나라에 대해 가르치십니다. 먼저 첫번째 비유에 잠시 머무릅니다.

비유에 등장한 "어떤 사람"이 열심히 움직입니다. 씨를 뿌리고, 자고 일어나고 하면서 돌보고, 익으면 낫을 댑니다. 그런데 그는 "어떻게 그리 되는지 모른다."(마르 4,27)고 합니다.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4,28) 한다고 하는데, 이 "저절로"라는 말씀에는 사실 창조주이시고 아버지이시고 농부이신 하느님의 부단한 노고와 수고의 땀냄새가 배어 있습니다.


그분은 지극히 겸손하셔서 당신의 업적을 드러내지 않으시고 우연인양, 자연의 원리 뒤에 머무르십니다.

그래서 "사람"은 모릅니다. 못 알아차리고 못 알아듣습니다. 알려고 하지도 않는 이도 많을 겁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4,33) 말씀을 하시지만, 진리는 육신이 기관으로 듣는데 그쳐서는 그 표면을 뚫고 들어갈 수 없고, 마음의 귀를 거쳐야 그 정수에 가 닿을 수 있기에, 여전히 "사람은 ... 모릅니다."(4,27)

"그러나 당신의 제자들에게는 따로 모든 것을 풀이해 주셨다."(4,34)고 하네요. 주님 곁의 제자들은 얼마나 행복할까요.


 "따로" 더 각별하고 더 친밀하게 그들에게 일러주시니 말입니다. 뭘 알려주셨을까요? 저절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일하시는 방법이 이렇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히브리서 저자는 "빛을 본 뒤에 많은 고난의 싸움을 견디어 낸 때"(히브 10,32)를 기억하라고 합니다.


이렇게 "따로" 챙기시는 주님의 각별한 사랑과 은총 뒤에 따라오는 건 무엇일까요? 세상의 부귀영화가 아니라 모욕, 환난, 재산 몰수 등등의 고난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영적 성장을 한편으론 원하면서도 마음의 중심이 아직 세속에 치우쳐 있는 이들에게는, 어쩌면 "따로" 불러 쏟아주시는 주님의 각별한 사랑의 가르침이 적잖게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습니다.


부귀영화가 아니라 고난이라니... 하느님의 나라와 세상의 나라가 가치와 목적과 방향을 달리하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그건 하느님의 나라가 이 세상에 '이미' 와 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까닭이라 어쩔 수 없습니다.

이 부조화와 극심한 간극 사이에서 주님과 하느님 나라에 대한 신앙과 사랑을 지키며 살려면 어찌해야 할까요? 히브리서 저자는 "여러분의 그 확신을 버리지 말라."(히브 10,35)고 합니다.


흔들릴 수도 있겠지만 믿음을 버리지 말라는 뜻이 내포된 듯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 믿어서 생명을 얻을 사람"(히브 10,39)이기에 그렇습니다.

그럼, 우리의 무지를 넘어 다가오고 확장되는 하느님 나라에 대해 확신을 간직하고 믿음을 견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실 우리도 여느 군중과 진배 없이 여전히 못 알아듣습니다.


그런 우리를 "따로" 불러 사랑의 언어를 조곤히 들려주시는 예수님께 기대어, 그분 심장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어떨까요?


그분 심장에서 자비의 혈류가 흐르는 소리, 사랑의 박동이 뛰는 소리, 연민의 눈물이 넘치는 소리를 듣게 되면, "빛을 받은 뒤에 많은 고난의 싸움"(히브 10,32)이 있음을 진작 체험으로 안다 한들, 그로인한 두려움에 주저하는 일은 없지 않을까요.


"그보다 더 좋고 또 길이 남는 재산"(히브 10,34), 즉 하느님의 나라를 이미 소유하고 있으니까요.

자연스레 두 번째 비유로 넘어가게 됩니다. 하느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답니다. 겨자씨를 본 적이 있으세요? 정말 작더라구요. 좀 굵은 밀가루 정도라고 할까요. 이 작은 씨앗 안에 이토록 큰 나무가 이미 담겨 있습니다.


사실 꽃씨들을 보고 그 꽃을 보면 도무지 상상이 가지 않습니다. 우리가 잉태된 순간의 모습이 지금 우리의 모습이라니 상상이나 갑니까.

하느님 나라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그런 나라임에 틀림 없습니다.


보잘것 없는 씨앗 하나가 그렇게 크고 멋진 나무가 되고, 그 작은 꽃씨 하나가 그렇게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그 작은 씨앗 하나가 서른 배, 육십배, 백 배의 열매를 맺고,


그 작은 정자와 난자가 만나 이렇게 멋진 사람을 만들어낸다면, 하느님의 나라는 얼마나 더 멋지고 아름답고 놀랄만한 것이겠습니까?

이런 작은 미물들 안에 숨어있는 생명의 신비를 간파하는 사람은 이미 하느님 나라를 보고 알게 된 것이나 진배 없습니다. 그래서 불가에서는 "깨달은 자에게는 삼라만상이 부처"라고 하는가 봅니다.

사랑하는 벗님 여러분, 2월의 첫날에 내 삶의 여기저기서 하느님 나라의 감추어진 모습을 발견하고 기뻐하시길 축원합니다. 하느님 나라는 무엇과 같을까? 그 답을 찾는 오늘입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 (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