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9.02.08. 연중 제4주간 금요일

dariaofs 2019. 2. 8. 11:38



이제 예수님의 이름이 계속 알려지며 유명해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다보니 세인들 사이에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 일기 시작합니다.


소문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되는데, 세례자 요한의 환생이라는 설과 엘리야의 환생이라는 설 그리고 예언자 중의 한분의 환생이라는 설입니다.


그중 사람들 안에 가장 강력했던 설은 세례자 요한의 환생설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삶이 최근까지 목격되었기에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죄사함의 세례와 회개하라는 외침은 예수에게서도 계속 이어지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였겠지요.

세례자 요한을 죽인 장본인인 헤로데 왕 또한 예수님을 요한의 환생으로 여겼습니다. 무고한 의인을 죽인 것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렸기에 꿈에도 자주 보였을 것이니까 그럴 수밖에 없었겠지요. 여하튼 남을 해꼬지 하고서는 맘 놓고 발 뻗고 잘 수 없는가 봅니다.

그런데 소문은 소문일 뿐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세례자 요한도 엘리야도 또다른 예언자의 환생이 아니고 예수님일 뿐이었으니까요. 소문은 진실이 아닙니다. 사실에 가까울 수는 있어도 진실은 아닙니다.


그러니 어떤 사람에 대해 어떤 소문이 돌 때, 거기에 너무 흔들릴 필요는 없습니다. 소문일 뿐이니까요. 내가 직접 목격하고 체험하고 아는 것이 아니라면 소문에 연연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늘 복음에는 예수님께서 등장은 하시는데, 사람들의 소문을 통해, 그리고 헤로데의 추측을 통해서 거론되시는 정도입니다.


복음에서 오히려 길게 이어지는 내용은 세례자 요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그 역시 대사도 심경 묘사도 없이 어떤 행위의 대상으로 등장할 뿐입니다. 이 대목을 표면적으로 이끄는 주인공은 헤로데입니다.

"헤로데는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그를 두려워하며 보호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말을 들을 때에 몹시 당황해하면서도 기꺼이 듣곤 하였다."(마르 6,19)고 합니다. 여기까지의 진술로 볼 때 헤로데는 제법 훌륭한 통치자같습니다.

모두가 다 의인이나 예언자가 될 수 없어도 그들이 받는 같은 상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있는데, 그건 바로 의인을 의인이라서 예언자를 예언자라서 받아들일 때 그렇습니다.(마태 10,41 참조)


그래도 헤로데가 세례자 요한에 대해서 바르게 인식했고 합당히 대접했던 건 사실이지요. 딱 여기까지는 말입니다.

스캔들 가득하고 선정적이며 드라마틱한 사연을 거쳐 세례자 요한은 죽음을 맞이합니다. 복음사가는 그의 유언이나 반응에 대해서 일언반구도 전 하지 않습니다. 오늘 복음 안에서 세례자 요한의 죽음을 통해 예수님께서 현존하십니다.


 "의인의 죽음은 어리석은 이들에게 징벌로 보이나 그들은 하느님 품에서 안식을 누린다."(지혜 3,1-9)고 하잖아요. 그렇듯 예수님은 모든 의인의 삶과 죽음 안에 계십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이 어떻게 살다가 죽었는지 살펴보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으십시오."(히브 13,7)


세속의 눈에 그들의 죽음이 불운과 파멸일지 몰라도, 믿는 이들의 눈에는 승리의 영광이고 본향으로의 완전한 회귀이며 지상에서 그토록 고대하던 님과의 일치입니다.

"나는 결코 너를 떠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겠다."(히브 13,5)는 말씀이 박해와 죽음을 모면하게 해준다는 뜻이 아니라, 그 지독한 고통의 순간에도 당신께 믿음, 희망, 사랑을 견지하도록 함께해 주시겠다는 뜻이 아닐까요?

"환난의 날 그분은 나를 당신 초막에 숨기시고 당신 천막 은밀한 곳에 감추시며 바위 위에 나를 올려 세우시리라."(화답송) 시편 저자는 예언자들,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 무수한 의인들이 하느님을 증거하는 죽음을 통해 하느님 안의 깊고 은밀한 성소에 감추어지고, 바위이신 주님 위로 들어올려 세워지는 부활을 맞이하리라 예견합니다.

헤로데의 선의가 딱 거기까지였다는 것이 안타까우면서도, 탐욕과 불륜 간음에 대해서 그를 빗댄 듯한 경계는 히브리서 저자의 교훈으로 충분한 것 같기에, 얽히고 설킨 구원 역사 안에서 제 역할을 했을 뿐인 헤로데에게 연민의 눈길을 보냅니다.

불쌍한 헤로데의 문제는 무엇이었을까요? 의인을 의인으로 알아보고, 예언자를 예언자로 알아보았고,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한번 만나보고 싶어할 정도로 나름 괜찮은 사람이었습니다.


동생의 아내를 취한 약한 인간 본성을 지녔지만 의붓딸의 귀여움 앞에 모든 것을 다 주고 싶어하는 좋은 아버지의 마음도 지녔습니다.

그의 유일한 문제는 체면과 위신이었고 허세와 진지하지 못한 맹세였습니다. 그 때문에 돌이킬 수 없는 죄를 범하게 되고 역사 안에 길이 악명높은 인물로 남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벗님 여러분, 오늘 소문에 휘둘리지 말로, 위신과 체면 때문에 부끄러운 행동이나 말을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지키지도 못할 과도한 약속이나 헛된 맹세는 아예 꿈도 꾸지 말아야겠습니다. 그저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오' 할 것은 '아니오' 하는(마태 5,37) 오늘 되시길 축원합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 (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