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사회는 최소한의 투자로 최대한의 이윤을 얻는다는 경제논리를 근저에 깔고 있습니다. 요즈음 은행예금 금리가 낮아서 돈 좀 있는 사람들은 그 돈을 어떻게 불릴까 머리를 많이 굴립니다.
공격성 펀드와 주식에 투자하는 사람들도 있고, 부동산 불패신화 운운하며 부동산에 투자하는 사람도 있고, 대부분의 소시민들은 정기적금이나 예금으로 만족하기도 하지요.
여러분은 어떤 투자를 하고 있나요? 어디서 재미를 보았고, 어디서 실패를 하였나요? 투자의 귀재 워렌 버핏과 점심식사 한번 하는데도 몇 억원이라던데 그것도 예약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란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어떤 투자가 가장 이윤도 높고 안전하고 확실할까요? 그렇다면 모든 재산 다 팔아서 올인하겠지요? 제가 가르켜 드릴까요?
저는 대학 들어가서 첫 경제학원론 시간에 '최소한의 투자로 최대의 이윤을 얻는 법'을 공부하는 것이 경제학이란 말을 듣고, 학교를 그만두었습니다.
그것이 내가 추구하는 방향이 아니다고 확신하였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찾은 투자가 예수님께 올인하는 것이었고, 신학교와 수도원에 들어가게 되었었지요.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마르 10,28) 오늘 제자들이 예수님께 말하는 것처럼 그렇게 말이지요. 그 결과는 어땠을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린다면, 성공한 투자라는 겁니다. 그럼, 어떻게 예수님께 투자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오늘 성공하는 투자의 조건으로 '버림과 따름'을 이야기하십니다.
첫째 조건은 "나 때문에, 또 복음 때문에"(마르 10,29)입니다. 버림과 따름의 근본 목적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이름을 위해, 또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위해 감행될 때 비로소 바른 목적과 지향을 갖게 됩니다.
둘째 조건은, 버리되 쓸모없고 불필요한 아무거나 버리는 것이 아니라, "집, 형제, 자매, 어머니, 아버지, 자녀, 토지"처럼 이 지상에서 내 존재에게 특별히 소중한 선물로 주어진 존재들을 더 큰 사랑을 위해 버리는 겁니다.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네게 주신 대로 바치고 기꺼운 마음으로 능력껏 바쳐라."(집회 35,12)는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가 가진 것은 모두 그분에게서 받은 것이기에 주신 대로 기꺼이 능력껏 바쳐야 합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께서 귀한 것을 주셨으니 우리도 그 귀한 것을 바치는 것이 당연하지요.
세번째 조건은, 예수님께서 "현세에서 백 배나 받고 내세에서도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마르 10,30)이라 하신 말씀은 당시 제자들은 물론 후대의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되기는 합니다만, 그런 보상을 의식한 소위 '거래'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그분에게 뇌물을 바치지 마라 ... 불의한 제사에 기대를 갖지 마라."(집회 35,14)는 말씀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순수하지 못한 속셈과 의도를 깔고 무언가를 바친다면 그건 "뇌물"이고 '세속적 투자, 딜'에 불과할 뿐, 아무 공로가 되지 못합니다. 오히려 하느님을 언짢게 해드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첫째가 꼴찌가 되고 꼴찌가 첫째가 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마르 10,31) 예수님은 "그런데"라는 표현에서부터 제자들의 고정관념을 뒤집으십니다. 하늘 나라의 보상이라는 것이 너희의 잣대와 기대를 뛰어넘을 거라는 말씀 같습니다.
버리고 바친 것의 가치는 오로지 하느님만 아시기에 그렇습니다. 때문에 바리사이의 대단한 봉헌에서 눈을 돌리시고(루카 18,9-14) 과부의 헌금을 칭찬하신 것입니다.(루카 21,1-4)
주님께 무언가 바칠 때는, 그저 당신을 사랑하기에 뭐라도 드리고 싶은 '마음의 순결함'과, 당신께서 주신 것을 되돌려 드리니 받아주십사 청하는 '마음의 가난함'을 지니라는 초대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봉헌자로서의 최적의 자격은 <복음환호송>에 등장하는 "철부지"가 아닐까 합니다.
집회서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주님께서는 갚아 주시는 분이시기에 일곱 배로 너에게 갚아 주시리라."(집회 35,13)
예수님은 한걸음 더 나아가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와 토지를 백 배나 받을 것이고,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마르 10,30)고 하십니다.
이보다 더 확실한 투자가 어디 있을까요? 백배의 보상 플러스 영원한 생명이라니요!
사랑하는 벗님, 여러분은 스승 예수를 따르기 위해 버리거나 포기한 것이 있나요? 많은 수도자 성직자들은 예수께 올인하기 위해, 직장도 포기하고 결혼도 포기하고 재물도 포기하고 자기 의지도 포기합니다.
그런데 그분을 위해 포기하면 할수록 더 많은 것을 얻어 누리니, 참으로 아이러니 합니다.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투자하느냐에 따라 첫째가 꼴찌가 되고 꼴찌가 첫째됩니다.
여러분은 누구에게 투자하시겠습니까? 무엇에 투자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의 투자가 참으로 성공한 투자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 (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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