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간음하다 잡힌 여인의 기막힌 용서와 구원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오늘 독서는 수산나라는 아름다운 유다의 딸과, 그녀에게 음욕을 품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도리어 그녀에게 죄를 씌워 수치스런 죽음을 안기려는 두 원로,
하느님의 영에 의해 모든 진실을 밝히는 젊은이 다니엘, 그리고 이 느닷없는 영의 재판을 가능케 한 회중을 통해 기가 막히게 위기에서 벗어나는 여인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너희의 율법에도 두 사람의 증언은 유효하다고 기록되어 있다."(요한 8,17)
최소 두 명 이상의 증언이 있어야 믿을 만하다는 조항은 원래 범법자로 몰린 이를 보호하려는 의도지만, 독서의 이야기는 두 사람이 작당해 일을 꾸미고 말을 맞출 경우에는 오히려 흉기가 될 수도 있음을 보여줍니다.
율법의 완전함은 하느님께로부터 왔다는 사실에 기인하지만, 이를 해석하고 적용하는 이는 인간이기에 때에 따라서 유용한 도구도 될 수 있고 남을 해치는 무기도 될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독서에 나오는 사람들과 복음 속 사람들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수산나를 처형하려 끌고 갈 때 "하느님께서 다니엘이라고 하는 젊은 사람 안에 있는 거룩한 영을"(다니 13,46) 깨우십니다.
그가 불쑥 소리치자 사람들은 그 새파란 젊은이에게 원로 지위를 부여하고 그에게 재판을 맡깁니다. 지금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지요. 그건 당시 원로들과 회중이 그의 입을 통해 말씀하시는 분이 하느님이심을 믿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반면 복음에서 바리사이들을 비롯한 유다인들은 예수님을 통해 활동하시는 하느님의 영을 믿지도, 받아들이지도 않고 오히려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린다고 수근대며 거부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께서 인간을 위해 친히 마련하시고 손수 새겨주신 율법이 사람에 의해 희석되거나 변질되는 것이 안타까우셨기에 때가 차자 말씀이신 아드님을 보내시어 율법을 완성하게 하십니다.
하지만 세상은 이미 제 편의대로 율법을 운용할 수 있기에 그 본질이나 정신을 굳이 들출 이유가 없고 다른 시각이나 접근방식도 거부합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가까이 하고 싶지 않고, 믿고 싶지 않은 거추장스런 존재일 뿐입니다.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나의 아버지도 알았을 것이다."(요한 8,19) 예수님은 줄곧 당신과 아버지가 하나이고, 두 분이 함께 하는 증언과 심판은 올바르다고 하시지만 그들에게는 "소 귀에 경 읽기"와 다름없습니다.
믿지 않기로 생각을 굳히고 마음을 닫은 이들은 하느님의 영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친히 오신다 해도 더, 더, 더 강력한 표징을 요구하면서 눈 하나 꿈쩍하지 않을 겁니다.
그들이 이미 "빛이신 예수님"(요한 8,12)이 아니라 어둠을 택하기로 정하였기 때문입니다.
독서에서 수산나는 다니엘을 통해 활동하시는 하느님의 영을 믿고 받아들인 온 백성 덕분에 목숨을 구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야기는 온 회중이 "당신께 희망을 두는 이들을 구원하시는 하느님을 찬미"(다니 13,60)하면서 끝을 맺습니다.
절체절명 위기의 순간에 죽음이 밀물처럼 목구멍까지 차오른다 해도 주님과 함께 있으면 어둠도 어둠이 아닙니다.
"어둠의 골짜기를 간다 하여도 당신 함께 계시오니 두려울 것 없나이다."(화답송)는 노래는 어둠을 걸어 본 이, 그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으로 다가오신 하느님을 만난 이의 내밀한 고백입니다.
성별, 나이, 소속,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사람을 선택하시는 하느님의 영께서 누구를 도구로 쓰실지 우리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니 영혼의 눈을 크게 뜨고 경청의 귀를 쫑끗 세우고 마음을 활짝 열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귀한 시간 속에서 "무죄한 이가 피를 흘리는"(다니 13,62) 날이 이제는 없어야 하니까요.
사랑하는 벗님 여러분, 오늘 하느님께서 당신의 말씀을 여러분에게 전하실 것입니다. 누구를 통해서 말씀하실지 모릅니다.
오늘 내가 만나는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여 봅시다. 그 말씀은 분명 사람을 단죄하거나 심판하는 말이 아니고 사람을 살리고 구원하는 말씀이라는 것만 명심하십시오. 아멘.
오상선 바오로 신부 (작은형제회)
'강 론 말 씀 ' 카테고리의 다른 글
| 2019.04.10. 사순 제5주간 수요일 (0) | 2019.04.10 |
|---|---|
| 2019.04.09. 사순 제5주간 화요일 (0) | 2019.04.09 |
| 2019.04.07. 사순 제5주일 - 서광희 신부 (0) | 2019.04.07 |
| 2019.04.06. 사순 제4주간 토요일 (0) | 2019.04.06 |
| 2019.04.05. 사순 제4주간 금요일 (0) | 2019.04.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