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9.04.09. 사순 제5주간 화요일

dariaofs 2019. 4. 9. 06:01



"당신은 누구요?"(요한 8,25)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하시며 당신의 신원을 차츰차츰 드러내 오셨는데도 유다인들이 이제와서 누구냐고 물으니 참 생뚱맞게 들립니다.


 어쩌면 그들은 예수님의 정체성을 아무리 듣고 체험해도 자기들이 원하는 답이 아닌 이상 입력을 거부할 겁니다. 그리고 원하는 답이 나올 때까지 묻고 또 묻겠지요.

"내가 나임을"(요한 8,24.28)

곧 "I Am"입니다. 예수님의 이 존재론적 신원을 우리는 이미 탈출기에서 접했지요. 모세에게 나타나셨던 하느님께서 <"'있는 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여라.">(탈출 3,14) 하실 때, 역시 "I Am"이라 하십니다.


 아버지와 한 분이신 예수님께 이 이름만큼 그분다운 호칭이 또 있을까요! 그러나 유다인들은 당신을 드러내시면서 아버지까지 함께 언급하는 예수님의 계시를 여전히 깨닫지 못합니다. 아직 때가 되지 않아서겠지요.

오늘은 말씀 안에 담긴, 아버지께 대한 예수님의 태도가 유독 다가옵니다. "나는 그분에게 들은 것을 이 세상에 이야기할 따름이다."(요한 8,26) "내가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 말한다."(요한 8,28)


이 말씀을 잘못 들으면, 마치 예수님이 당신 생각도 의견도 없이 앵무새나 녹음기 정도로 말씀하고 살아오신 건가 오해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자주성 독립성 주체성에 열광하는 현대인들에게는 더욱 의아한 표현이 될 수 있으리라 짐작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독서에서 이와 비슷한 모습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백성을 위해 기도하였다."(민수 21,7) "그리하여 모세는 구리 뱀을 만들어 그것을 기둥 위에 달아 놓았다."(민수 7,9)


 '그래서, 그리하여'라는 접속사에서 알 수 있듯이, 모세는 불평하고 위협하던 이스라엘 백성의 기도 요청에 두 말 않고 기도를 드려주고, 처방을 알려 주시는 주님께도 일언반구 불평 없이 시키는 대로 합니다.


그는 하느님의 뜻 앞에서 자기 생각을 섞지 않습니다. 사심도 사욕도 감정도 배제하고 즉시 이행하되 물흐르듯 행동으로 이어지기에 억지같은 힘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아버지께 대한 예수님의 태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보내신 분께서 참되시기에"(요한 8,26) 아버지와 하나이신 예수님께 다른 것이 끼어들 수 없습니다. 예수님 역시 온전한 "참" 진리를 드러내실 수밖에 없으십니다.

잘 아시다시피, 우리 인간도 하느님과 관계가 깊어지면 차츰 수동적인 모습으로 나아가지요. 기도가 그 한 예가 될 수 있겠습니다.


기도를 배워가는 초반에 능동적으로 하느님께 달아들며 그분에 대해 연구하고 그분을 찾고 매달리던 기도가, 그분의 은총으로 차츰 고요해지면서 주도권이 하느님께로 넘어가게 되지요.


지성, 추리, 기억, 상상 등은 차츰 잠잠해지고 하느님께서 사랑의 의지마저 잠재우시면서 우리를 소유하시면 영혼은 하느님께서 하시는 대로 자신을 온전히 내어맡긴 채 그분과의 일치로 접어듭니다. 이제 스스로 할 일은 거의 없습니다.

하느님 아버지와 하나이신 예수님은 이미 일치 안에 계시기에 다른 목소리가 필요 없으시지요. 하느님 말씀이 곧 당신 자신이시고 하느님 뜻이 당신 뜻입니다.

지금 세상 한가운데서 당신을 적대하는 이들에 둘러싸여 처절히 홀로이신 듯하지만 예수님은 하느님과 함께이심을 알고 계십니다. "나를 보내신 분께서는 나와 함께 계시고 나를 혼자 버려두지 않으신다."(요한 8,29)

예수님께서는 조만간 광야의 "구리 뱀"(민수 21,9)처럼 높이 들어 올려져, 당신을 쳐다보는 이들을 죽음에서 생명으로 구원하실 겁니다.


유다인들과의 실랑이를 통해 구속사업의 혹독한 여정이 점점 윤곽을 드러내는 중이지만, 홀로이시나 홀로가 아니시기에 그 외로운 길을 가실 수 있으십니다. 이미 아버지와 온전히 하나이신 예수님께 이제는 자기의 힘이 남아있지 않으시지요.


여태 그러셨듯이 말씀도 가르침도 행동도 그리고 희생제사도 오직 아버지 뜻에 일치하는 가운데 나아가실 겁니다. 그것이 너나 없이 "I Am" 이신 아버지와 예수님의 길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여러분, 하느님도 예수님도 항상 "I Am" 이십니다. 우리도 "I am"(지금 여기)을 삽시다. "I was"(과거)도 아니고 "I will"(미래)도 아닙니다. 과거의 죄와 씨름하지 말고 미래의 근심걱정과도 다투지 맙시다. 오직 지금 묵묵히 사랑하며 살아갑시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 (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