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서 하느님의 자비를 체험한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첫째로 예수님을 세번이나 부정한 베드로입니다.
둘째로 예수님을 박해한 바오로입니다.
셋째로 간음한 여인이라고 여겨지는 마리아 막달레나입니다.
넷째로 많은 죄인과 세리들입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에 나오는 의심의 대표자로 여겨지는 토마스입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하느님을 법을 지키지 않았거나
예수님을 부정하고 배신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예수님을 통해서 체험한 하느님의 자비는
마치 칠흙같은 어두움 속에서
한줄기의 빛이 더욱 강렬하게 빛나듯이
어두웠졌던 그들의 마음 속에
‘자비’라는 두 글자가 강렬하게 새겨지게 됩니다.
자비의 예수님이라는 성화를 볼 때,
우리도 성경의 인물들과 같이
성심으로부터 찬란하게 뿜어져 나오는
두 줄기의 물과 피는 무한한 자비의 샘을 느끼게 됩니다.
사도 바오로가 로마서에서
“죄가 많아진 그곳에 은총이 충만히 내렸습니다.”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언제나 우리의 죄보다 하느님의 은총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훨씬 큽니다.
그러기에 죄를 많이 지은 이들은
자신의 죄보다 더 큰 자비를 얻게됨으로써 느끼는
영혼의 안도와 감사를 더욱 강렬하게 체감하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나오는 토마스 사도는
예수님 부활의 소식을 믿지 못하고
직접 예수님을 만나뵙고
그 상처에 손을 넣어보고서야
자신의 의심을 버리고, 자신의 신앙을 새롭게 합니다.
그로인하여
토마스 사도는 Dominus meus et Deus meus
즉,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이라고 말하며
교회 역사상 가장 완벽한 신앙고백을 하게 됩니다.
성 프란치스코 역시 토마스 사도의 고백을 따라서
Mio Dio e mio Tutto
나의 하느님, 나의 전부이시여!
라고 고백합니다.
토마스 사도와 성 프란치스코는
자신의 한계와 부족함을 채우고도 남는
하느님의 자비를 체험했기에
자신을 온전히 하느님의 자비에 내어 맡기게 됩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하느님의 자비를 강렬하게 체험하기 위해서
굳이 죄를 지어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죄인을 용서하시는 하느님의 자비를 신뢰하고
하느님의 자비에 나를 의탁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피 한방울로도 온 세상을 구원하실 수 있으심에도 불구하고
당신 자신을 온전히 하느님께 바치셨습니다.
그리하여
십자가의 희생이 사도들에게는 자비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죄지은 이를 탓하지 않고, 오히려
스스로 희생양이 되신 예수님의 자비로움을 고스란히 체험한 것입니다.
사도들은 그저 자비로움을 체험한 것으로 멈추지 않았습니다.
하느님의 자비를 믿는 사도들은
하느님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자비로운 사람으로 변해 갔습니다.
그들은 자비를 행하면서
제2의 그리스도, 제3의 그리스도가 되어갔습니다.
이처럼 자비를 체험한 사람들은 자비의 사도가 됩니다.
하느님 자비주일을 지내는 우리들도
나를 박해하고, 나를 미워하는 사람들을 자비롭게 대하면서
제 2의 그리스도, 제 3의 그리스도가 될 수 있도록
하느님의 자비에 우리 자신을 내어 맡기도록 합시다.
박동현 제노 신부 (대전교구 목동성당 보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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