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9.05.07. 부활 제3주간 화요일

dariaofs 2019. 5. 7. 05:59



빵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그만큼 인간 삶에서 기초적이고도 절박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현대와 같은 풍요의 시대에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끼니 걱정을 하는 이들이 많은데 오랜 식민지 수탈과 불이익으로 피폐해진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어쩌면 당연한 이슈일 겁니다.

"그러면 무슨 표징을 일으키시어 저희가 보고 선생님을 믿게 하시겠습니까?"(요한 6,30)

"그러면" 군중에게는 믿는 데도 조건이 필요합니다. 믿을 만하면 믿어 주고 그렇지 않으면 다른 메시아를 알아보겠다는 뜻 같습니다. 여기서 하느님의 믿음과 인간의 믿음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나지요.

하느님께서는 별로 믿을 구석이 없어 보이는 우리를 그냥 믿어주십니다. 이 믿음은 우리의 자질에 기인하지 않고, 우리 꼴을 뻔히 아시면서도 한 쪽 눈을 감아 주시는 하느님의 관대함에 기인하지요.


그래서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믿음은 그분의 능력일 것입니다. 반면 인간은 믿을 만한 증거를 달라고 요구합니다.


 내가 믿을 수 있게 "무슨 일"(요한 6,30)이든 해보라고, 보여달라고 합니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이것은 믿음이 아닐 겁니다.


믿음은 이성과 감각으로 확신할 수 없어도 마음과 영혼이 감지하는 길을 따라가는 능력입니다. 그래서 종종 논리나 합리성과 부딪힐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빵은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빵이다."(요한 6,23)

아들을 얼마나 사랑하면 그를 "빵"이라 부를 수 있을까요! 안타깝게도 우리 언어의 용례에서는 "너는 내 밥이다." 하면 상대를 내 맘대로 해도 되는 존재로 무시하는 표현이 되어버렸지만, 실상 "밥"이라는 말, "빵"이라는 말은 "생명"과 맞먹는 말입니다.


 "목숨"과 같은 뜻이지요. 그래서 우리의 옛 조상들은 밥알 한 톨, 풀 한 포기도 소중히 여겼습니다.


없어서 귀하게 여기기도 했지만 없어봐서 그 한 톨이 생명을 살리고 유지하는 데 얼마나 소중한지 알기에 그랬을 겁니다. 그래서 곡식 한 톨에 생명이, 세상이 담겼고 그 자체가 생명임을 직관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요한 6,35)

이스라엘 역사상 어떤 판관이나 임금, 예언자가 자기를 "빵"이라 부른 적이 있었던가요? 대신 싸워주고 지켜주고 가르치기는 했어도 자기를 먹으라고 한 적이 있었던가요?


 예수님은 당신을 낮추고 낮추어, 작아지고 또 작아져, 비우고 또 비워 스스로 먹이가 되겠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너희의 생명이, 목숨이 되겠다고 하십니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요한 6,35)

군중은 물리적인 "먹을 것"을 이야기하지만 예수님은 영혼의 양식을 이야기하십니다. 이 양식은 영혼의 갈증과 허기뿐만 아니라 육신의 그것까지 채워줄 수 있는 믿음의 열매입니다.

독서는 스테파노의 죽음을 이야기합니다. "보십시오. 하늘이 열려 있고 사람의 아들이 하느님 오른쪽에 서 계신 것이 보입니다."(사도 7,56)


스테파노와 같이 신실한 증거자에게는 믿기 위해 굳이 이 엄청난 현현이 필요하지는 않겠지만, 하느님께서는 그는 믿음을 보시고 당신 영광을 보여 주십니다.

"그들은 큰 소리를 지르면 귀를 막았다."(사도 7,57)

믿지 않기로 작정한 이들에게는 그 어떤 표징도 무의미합니다. 오히려 보게 될까 봐, 듣게 될까 봐 온 몸으로 거부하지요.


믿게 되면 그간 익숙하게 길들여진 삶에 균열이 생기고 변화가 일어나는데 이를 감당할 마음이 아직 없기에 그런 것 같습니다. 그래서 믿음은 은총이라고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습니다.

"주님, 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돌리지 마십시오."(사도 7,60)

스테파노의 죽음은 영을 넘겨드리고 자기를 해치는 이들을 위해 용서를 청하는 모습에서 예수님의 그것과 흡사합니다.


부족한 인간일지라도 생명이신 분 곁에 머물며 그분의 생명을 먹고 마신 영혼은 저 뱃속 밑바닥부터 꽉꽉 채워졌기 때문에 어떤 결핍이나 두려움에 휘청거리지 않고, 미움과 증오, 의혹에 동요되지 않습니다.


그는 자기에게 생명이 되어 주신 예수님처럼 마지막까지 완성의 길을 걷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니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라고 믿나이다."(영성체송)

사랑하는 벗님 여러분, 우리는 우리에게 빵이, 밥이, 생명이 되어 주시는 분과 함께 죽기도 하고 살기도 하는 삶 한복판에 이미 서 있습니다.


오직 필요한 건 그분과 함께 잘 죽고 잘 사는 일일 겁니다. 이 길에는 미움과 증오, 의혹과 두려움이 들어설 자리가 없습니다. 오로지 믿음만이 이정표가 되어줄 것입니다.

먹을 것이 없어 굶어죽는 사람이 우리 주위엔 없어 보이나 아직도 수많은 아이들이 굶주림과 기아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정말 먹을 것이 없어 굶어죽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배부르게 먹고 맛집만 찾아다니는 우리 모두의 숨은 죄이기도 합니다. 생명의 빵이신 주님을 우리가 믿고 있다면 적어도 흥청망청 먹고 마시며 낭비하는 삶을 살아서는 안되겠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물질적 풍요에도 영적으로 더욱 배고프고 목마른 영혼들이 더 넘쳐나는 것같습니다. 참 생명의 빵이신 주님을 믿고 있는 우리가 더욱더 영적으로 충만한 삶을 살아야하는 이유입니다.

남아도는 육신의 빵과 재물을 기아와 굶주림에 허덕이는 이들에게 나누듯이, 우리의 충만한 영으로 영적으로 배고프고 목마른 영혼들에게 작은 힘이 되어주는 것이 주님을 참 생명의 빵이요, 참 영혼의 주인이 되게 하는 길이 아닐른지요?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