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요한 6,44)
아버지께서 아드님을 세상에게, 사람들에게 보내시더니, 이번에는 사람들을 아드님에게로 이끌어 주십니다.
아버지께서 아드님과 사람을 만나게 해 주시고 엮어 주신 것이지요. 이 관계 형성의 목적은 다름이 아니라, "나에게 오는 사람은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릴 것이다."(요한 6,44) 하시는 예수님의 강한 의지대로 영원한 생명입니다. 구원입니다.
오늘 독서에서는 필리포스의 선교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성령께서 이르시는 대로 어떤 수레에 다가간 필리포스는 이사야서를 읽고 있는 에티오피아 궁전의 고관인 한 내시를 만납니다. 그는 이사야서 53장 주님의 종의 넷째 노래를 읽는 중이었습니다.
아마도 그는 "그의 생명이 이 세상에서 제거되어 버렸으니 누가 그의 후손을 이야기하랴?"(사도 8,33) 대목에서 멈칫 하지 않았을까 짐작해 봅니다.
내시라는 신분은 보통사람이 누리지 못하는 권력에 근접해 있기는 하지만 보통사람이 누리는 생명을 이을 권리는 내려놓은(박탈당한) 이들인데, 말씀은 대개 읽는 이의 실존을 건드리며 다가오시기에 그렇습니다.
"누가 나를 이끌어 주지 않으면 내가 어떻게 알아들을 수 있겠습니까?"(사도 8,31)
말씀을 읽고 다가오신 말씀에 머무르는 자체는 이미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현존 앞에, 현존 안에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현존을 알아보고 깨닫는 눈은 아버지의 이끄심으로 열린다는 걸 그 내시가 고백한 셈입니다.
복음에서 예수님도 같은 말씀을 하시지요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 그러니 예수님 곁에 모여 교회를 이루고 있는 우리는 이미 아버지의 손길에 이끌려 예수님을 만나고 그분과 엮인 사람들입니다.
복음 후반부에서는 예수님의 자기 계시가 점층적으로 열립니다. "나는 생명의 빵이다"(요한 6,48) 하시더니,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요한 6,53) 하시며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십니다.
그러더니 급기야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요한 6,51)라고 폭탄 선언을 하십니다.
누구나 곡식 가루를 이용해 만들 수 있는 "빵"과, 인간 육신을 구성하는 "살"은 둘 다 생명을 지탱하는 요소이기는 하지만 재료와 중요도 면에서는 천지차이의 가치를 지닙니다.
열심히 돈을 벌어 자식 입에 넣어 줄 빵을 사다 건네는 인간 부모의 사랑도 참으로 고귀한데 예수님은 당신 생명인 "살"을 주고 먹으라 하십니다. 결국 아낌없이 목숨을 내주시겠다는 뜻입니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요한 6,51)
예수님의 살이 일시적으로 배를 불렸다가 꺼지는 물리적 빵과 비교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영원성"입니다. 영원히 산다는 것은 시간의 주인이신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하는 것이고 사람에게 일시적으로 주어졌던 지상의 생명을 초극하는 은총입니다.
다시 독서의 내시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필리포스를 통해 "예수님에 관한 복음"(사도 8,35)을 전해 들은 내시는 자원하여 세례를 받습니다.
보통사람이 영원성에 대한 본능적 생명 욕구를 자자손손 이어지는 후손을 통해 성취한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은 그의 살을 나누어 먹음으로써 영원히 살 것이라 하니 그에게는 진정 기쁜 소식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성령께서 필리포스를 잡아 채듯 데려가시는 통에 내시는 "그를 더 이상 보지 못하였지만 기뻐하며 제 갈 길을 갔다"(사도 8,39)고 합니다.
하느님께서 내시를 예수 그리스도께로 이끄시기 위해 쓰신 도구(필리포스)가 사라졌어도 말씀을 통해 기쁜 소식을 접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얻은 그는 개의치 않습니다. 기쁘게 제 갈 길을 갔다는 표현에서 그가 이미 영원한 생명에 들어섰음이 느껴집니다.
사랑하는 벗님 여러분, 오늘 미사의 독서와 복음에서는 우리 신앙 생활의 두 축인 말씀과 성체에 대한 본질이 담겨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말씀으로, 성체로 현존하십니다. 아버지께서 우리를 말씀과 성체께로 이끌어 주시며, 성령께서 이를 알아듣도록 우리 내면을 들썩이시고 불을 놓으시고 감응을 일으키십니다.
그러므로 구원을 위한 삼위 하느님의 협력에 순응하는 이들,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요한 6,47) 것입니다. 아멘.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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