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9.05.11. 부활 제3주간 토요일

dariaofs 2019. 5. 11. 05:27



말씀은 살아계시기에 때론 우리 실존을 강력하게 건드리며 다가오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사고방식과 가치관과 지향이 육적이라면, 영이신 말씀의 터치가 부담스럽고 껄끄러운 것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말씀은 우리가 보고 싶지 않은 것을 보게 하시니까요. 게다가 우리를 둘러싼 하느님 현존, 즉 양심과 자연과 선한 이웃들이 이 말씀에 동조해 내 육적 지향을 거스르는 듯 느껴질 때면,


내가 방향을 선회할 각오가 되어 있지 않은 이상 불쾌하기까지 할 수 있습니다. 이미 마음이 고집과 집착으로 완고해졌다면 더욱 그럴 겁니다.

"자신이 바로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빵이요, 자신을 먹고 마시지 않으면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없다"(요한 6,53-58 참조)는 예수님의 폭탄선언을 듣고 많은 군중과 제자들이 하나둘씩 떠나게 되는 상황에서, 충분히 그럴 수 있는 남은 열두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단도직입적으로 질문을 던지십니다.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요한 6,67)

믿지 않는 자, 당신을 팔아넘길 자를 처음부터 아신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에게 물으십니다. 이미 알고 계셨지만 사랑 때문에 안타까우셨을 예수님 마음에 머무릅니다. 떠날지 말지 묻고 답을 기다리는 순간에는 꽤 큰 용기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요한 6,68)

아! 오늘 시몬 베드로는 메시아 고백 때와 마찬가지로, 참으로 핵심적인 신앙을 고백합니다. 예수님께서 영원한 생명의 말씀을 소유하신 분,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심을 선언한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하느님의 거룩한 분이심을 믿고 안다고 덧붙이지요. 저는 "생명의 빵"이라는 예수님의 자기 진술에 "생명의 빵"이라 답하지 않고 "생명의 말씀"이라고 답하는 베드로에게 흠칫 놀라게 됩니다.


정답은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빵이 있습니다."이라는 것을 잘 알텐데 왜 "빵'이라 하지 않고 '말씀'이라고 하는 것일까요? 그렇다면 빵(육)이 곧 말씀(영)이란 뜻이겠지요.

세상은 하느님의 말씀으로 창조되었고 그 말씀은 한 마디도 땅에 떨어지거나 헛되이 스러지지 않고 반드시 하느님의 뜻을 이루고야 마는 실재입니다. 그러니 인간은 어느 누구도 이 말씀과 유리되어 살아갈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 말씀의 영향권 밖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저희가 당신 말고 누구에게 가겠느냐는 반문은 지당합니다. 말씀이신 그분이 전부이고 전체인데 달리 어디를, 누구를 찾아 등을 돌릴 수 있겠습니까!

독서에서 베드로는 스승 예수님께서 하시던 일을 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용서를 체험하고 사랑을 재확인한 그는, 성령의 힘으로 중풍병자 애네아스를 치유하고 죽은 타비타를 되살리지요. 과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간절한 기도가 이를 가능하게 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을 확고히 믿음으로 이 세상에 드러낸 것입니다. 말씀께서는 과연 믿는 이들을 통해 당신의 뜻을 이루고야 마십니다.

사랑하는 벗님 여러분,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으로 촉발된 생명의 빵 논쟁은 이렇듯 예수님께서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심을 선포하는 것으로 마무리됩니다. 예수님의 말씀, 그분의 살과 피(빵)는 분리될 수 없습니다.


그분을 믿는 우리는 이 지상 순례에서 말씀과 성체를 통해 그분 현존을 누리기에 복됩니다.


또 말씀과 성체로 현존하시는 예수님께서 당신을 믿는 이들, 즉 벗님을 통해 당신이 하신 일을 이어나갈 것이니 세상 또한 복됩니다. 영원한 생명의 빵이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신 주님은 찬미받으소서. 아멘.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