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9.06.09. 성령강림 대축일 - 오상선 바오로 신부

dariaofs 2019. 6. 9. 04:06



기쁨으로 지내온 50일간의 부활 시기는 오늘 성령 강림 대축일로 막을 내립니다.


제1독서인 사도행전에서는 제자들이 성령을 받은 오순절 체험을 이야기하고, 제2독서는 성령의 능력에 힘입어 하느님 백성으로 새롭게 탄생한 교회와 그리스도의 관계를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요한 복음은 세상 창조 때 성부 하느님께서 하셨듯, 인간에게 숨을 불어넣으시는 성자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오늘 미사 때 듣게 되는 성경 구절들을 잘 귀기울여 듣다 보면 "가득"이라는 말씀이 자주 반복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온 세상을 채운 주님의 영(입당송), 온 집안을 가득 채운 성령의 현존(제1독서), 성령으로 가득 찬 제자들(제1독서),


온 세상이 당신이 지으신 것으로 가득하다는 시편 저자의 고백(화답송), 우리 마음을 성령으로 가득 채워달라는 청원(복음환호송), 모두 성령으로 가득 찼다는 영성체송까지...

이 말씀들에 머무르며 온 세상 만물, 공기와 사물, 사람, 모든 존재를 가득 채우고 계신 성령께 머무릅니다. 과연 온 누리는 성령과 함께 새로워지고 기쁨이 넘실대고 있습니다.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 곁을 떠나신 후 약속하신 성령을 보내주시고, 그렇게 오신 보호자, 주님의 영께서는 우리와 모든 피조물, 온 누리 어디든 현존하시고, 무엇이든 가르치시며, 만물을 지탱하십니다

"성령을 받아라!"(요한 20,22)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숨을 불어넣으시며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으로 예수님의 숨이 그분에게서 우리에게로 옮겨옵니다. 숨이 곧 영입니다.


진리의 영, 사랑의 영, 평화의 영, 용서의 영... 그분 육신과 존재 안을 내밀하게 채워 흐르던 숨이 고스란히 내게로 흘러들어와 나를 채웁니다.


나의 것이 됩니다. 숨을 나누어 받는 것은 호흡을 주고 받는 것이고, 생명을 공유하는 것입니다. 창조주와 피조물의 사랑은 이처럼 근원적이고 절실합니다. 숨이 곧 생명이니까요.

주님께서 내게 숨을 불어넣을 때 그 거룩하고 복되고 선한 숨을 최대한 많이 받아들이려면 나의 내부가 가능한 최대로 비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내가 비운 만큼 주님의 숨결, 주님의 영이 가득 채워질 수 있으니까요. 그분으로 가득 찬 여기에 지금 "우리가 있습니다!"

"가득"이란 말씀에서 성령의 속성을 봅니다. 가득 찼다는 건 빈 곳이 없다는 뜻이지요. 온전함을 가리킵니다. 일부만, 절반만, 거의... 처럼 부분적으로 점유된 상태가 아니라, 그야말로 통째로, 싸그리(몽땅), 남김 없이 채운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성령과 함께 주신 "평화"(요한 20,19)에도 적당선은 없습니다. 조금만 평화롭게 살자든가 약간 평화롭다는 말은 성립되지 않는다는 말이지요. 평화는 성령의 속성처럼 온전해야 하고 가득 채워야 평화인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성령과 함께 주신 "용서"의 권한도 마찬가지입니다. 반쯤 용서한다든가 조금만 용서할 수는 없습니다. 용서는 그 자체로 온전히 베풀어져야 하고, 한 존재를 해방과 감사의 영으로 가득 채우는 힘입니다.

"새로움", "사랑의 불", "기쁨"... 이처럼 다양한 성령의 자취는 선하고 진실되고 아름다우며 복됩니다.

"성령"에 힘입어 "성자"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는(1코린 12,3 참조)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곧, 우리가 성령을 통해 얻은 은사와 직분과 활동이 "공동선을 위한"(1코린 12,11)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성령으로 가득 찬 이는 그 숨결이 내게 불어넣어지기 전에 거쳐 온 모든 이웃, 모든 피조물, 온 누리의 기쁨과 행복은 물론 고통과 슬픔에도 함께 감응하게 되어 있습니다. 온 존재가 이미 한 성령의 숨결로 하나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여러분, 현실에는 처절한 비극과 고통어린 절규, 집단이기주의적 정치 다툼이 여전한데도 온 우주가 성령으로 가득 차, 그 사랑의 기운이 나의 세포 속속들이 머금어지는 것은 놀라운 신비가 아니겠습니까?


부족한 나에게도 오시는 성령께 마음을 활짝 열고, 그분께서 내 안에 사랑의 불을 놓으시기를, 그 불이 온전히 나를 차지하시기를 함께 청합시다.


 용서와 화해와 치유가 필요한 곳으로 흘러드는 새 창조의 숨이신 성령께서 나와 모든 이웃, 모든 피조물, 온 누리를 사랑의 끈으로 이어주실 것입니다.


성령의 특별한 은사가 벗님을 가득 채워주시길 축원합니다. 아멘. 교회의 생일이요 우리 모두의 생일인 오늘 기쁨 가운데 축하드립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