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9.09.08. 연중 제23주일 - 오상선 바오로 신부

dariaofs 2019. 9. 8. 04:25



"너희 가운데에서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루카 14,33)

여러분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싶지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 예수님은 당신 제자가 되기 위한 필요충분 조건을 하나 제시하십니다. 자기 소유를 다 버려야 한다는 것. 잉~ 너무 지나친 주문이 아닌가요? 어떻게 일부야 버릴 수 있겠지만 다 버리라구요!

예수님이 주문하시는 것을 한걸음 더 들어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사실 우리가 우리 소유라고 생각하며 집착하고 있는 것들을 한번 볼까요?

이것을 더 잘 알아듣기 위해서는 앞서 하신 말씀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습니다.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루카 14,26)

우리가 제일 소중히 여기는 부모, 배우자, 자녀, 형제자매 등이 정말 내 것입니까? 아니, 내 목숨마저도 실제로 내 것이라 할 수 있나요? 다 하느님의 것이지요.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일 뿐이지요.


그런데 그것을 내 것이라고 착각하며 소유물로 여길 때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라 할 수 없겠지요. 그러니 그 집착에서 벗어나라는 의미에서 미워하라고 하시는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소유하는 것이 나에게 밀착시키는 행위라면 미워하는 것은 나에게서 멀리 위치시키는 행위가 되니까요. 내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것임을 알아야 한다는 말씀이겠지요.

그러니 미워하라는 말은 사랑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내 것으로 집착하지 말라는 뜻으로 들립니다.


또한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가족과 자기 목숨까지 미워해야 한다는 말씀은, 어느 관계를 막론하고 그들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해야 하고 또 부르심을 받을 때 그들을 흔연히 떠날 수 있는 내적 자유가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루카 14,27)


그에 덧붙여 예수님은 당신 제자가 되기 위한 두 번째 자질로서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네요. 내가 소유하는 것이 나를 예수님의 제자로 만들어 주지 않습니다.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나의 능력이나 자질, 스펙을 가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나의 약점이나 허물,


장애 등 내 것이 아니기를 바라는 것들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고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으로만 주님을 따를 수 있다는 고백인 셈이지요. 사실 그것만이 내 것이라 주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느 훌륭한 누군가를 흉내내면서 괜찮은 사람인 척 치장하지 말고, 자기의 약함과 어두움, 수치와 모욕, 고통과 죽음이라는 자기 고유의 실존을 인정하고 받아안은 채 당신을 따라야 한다고 하십니다.


제 십자가야말로 자기는 물론 타인을 위해서도 구원의 도구가 될 수 있으니까요.

성 프란치스코는 "우리 것이라고는 죄악과 허물밖에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모든 좋은 것은 그 주인이신 하느님께 돌려드리고 자기 것으로는 아무것도 남겨두지 않는 종이 참으로 가난한 자요 그래서 복된 종"이라고 권고하였지요.

오늘 제2독서는 참으로 아름다운 일화를 전해줍니다. 바오로가 감옥에서 얻은 아들, 자기 심장이라고 할 정도로 가장 소중하고 아끼는 오네시모스를 원래 그 주인이었던 필레몬에게 돌려보내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를 묵상하면서 저는 "아, 바오로야말로 정말 예수님의 참제자였구나"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진정 내 소유라 할 수 있는 것을 내려 놓을 때 아들, 형제, 동지를 모두 얻게 된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습니까. 만약 바오로가 "심장"으로 여기니 그를 자기 것으로 계속 두고 필레몬에게 돌려 보내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마도 오네시모스는 평생 도망친 노예로서 죄책감을 안고 살았을 것이고 바오로와 필레몬도 참동지가 못되고 불편한 관계가 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필레몬과 오네시모스의 관계도 원래의 주인과 종의 관계에서 형제 관계로 발전하지 못하고 원수 관계로 추락하고 말았을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바오로처럼 내 소유(라 여기는 것을)를 버리는 사람은 참으로 예수의 제자가 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 스스로 사도 바오로가 이야기하듯 아버지와 똑같은 분이시면서도 기꺼이 자기를 내려놓고 순명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도 내 소유를 내려놓고 내 십자가를 지고 그분을 따를 수밖에요.


보통 사람들은 반대로 내 소유를 지고 내 무거운 십자가는 내려놓고 그분을 따르고 싶어하지요.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이렇게 세속적인 영웅을 따르는 길과는 정반대의 길입니다.

그런데 뭔가 당시 주류와는 다른 점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의 조건으로 가문, 종족, 직업, 학문, 재산, 신분, 성격 등을 따지시지 않고 다만 온전히 투신할 수 있는지를 보신다는 점입니다.


다른 어느 종교 지배계급과 달리 외적 조건보다 마음을, 열정을 중요하게 여기신다는 점에서 어부도 세리도 마귀 들렸던 이도 따라나설 수 있으니 이 또한 새로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제1독서에서 지혜서의 저자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당신께서 지혜를 주지 않으시고 그 높은 곳에서 당신의 거룩한 영을 보내지 않으시면 누가 당신의 뜻을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렇게 해 주셨기에 세상 사람들의 길이 올바르게 되고 사람들이 당신 마음에 드는 것이 무엇인지 배웠으며 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지혜 9,17-18)

바오로가 그랬듯이, 이런 깨달음으로 예수님 제자가 되신 벗님은 참으로 복됩니다. 축하드립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