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앙 돋 보 기

[토머스 머튼의 영성 배우기] 14. 후기 수도원 삶

dariaofs 2019. 10. 18. 02:44

“가난한 세상이 고독 안에 있어야 할 올바른 장소”





                                   ▲ 그림=하삼두 스테파노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마태 7,20)고 하시면서 거짓 예언자와 참된 예언자들을 식별하는 방법으로 ‘삶의 열매’를 강조하셨다.


고독과 침묵, 기도와 명상 속에서 도달한 토마스 머튼의 깊은 관상 생활은 예수님과의 뜨거운 사랑의 일치를 체험하게 했고, 그것은 예수님의 사랑을 이웃과 세상과 나눔으로 열매 맺게 되었다.


세상을 향한 사랑과 정의의 외침은 그의 것이 아니라, 예수님에게서 받은 새로운 소명이었다. 그는 이것을 ‘깨달은 자의 세상을 향한 책임’이라고 표현했다.


관상의 삶을 살아가는 전통적인 트라피스트 수도승이 어떻게 세상을 향해 예수님의 사랑을 구체적으로 나눌 수 있었을까? 봉쇄 수도원에서 살아가는 머튼이 어떻게 ‘평화를 이룩하는 사람’(a peacemaker)이라는 별명을 갖게 되었을까?

후기 수도원 삶: 1959~1968년


머튼의 삶은 1960년대에 활짝 꽃이 피었다. 그는 자신의 내적, 영적 변화를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아마 저는 (지금) 영적인 삶에서 전환점에 있습니다. 어쩌면 두려움들을 잊어 가고 성숙의 지점과 의심의 해결을 향해 서서히 가고 있는 듯합니다.”

성소에 대한 확신 속에, 그는 수도원이라는 울타리를 넘어 세상의 모든 곳이 하느님이 계신 곳이요, 세상의 모든 곳에서 하느님의 일, 즉 하느님의 사랑을 나누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저는 저의 수도 성소가 무엇이든 간에 결코 의심하지 않습니다. … 저는 어떤 면에서 어디에나 있습니다. 저의 수도원은 저의 집이 아닙니다.”

1960년 10월 그는 “저는 과거에 항상 플라톤주의자였습니다”라고 시인하고, 저 위에 있는 이상적인 관념에서 아래로 내려와, 세상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비평적인 사회적 견해들을 자신감을 가지고 왕성하게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그가 집필한 책 제목만 보더라도 그의 새로운 영적 관점과 세상을 향한 연민, 그리고 아시아의 종교에 대한 관심을 엿볼 수 있다. 「새로운 사람(New Man, 1961)」, 「새 명상의 씨(New Seeds of Contemplation, 1962)」, 「파괴의 씨들(Seeds of Destruction, 1964)」,


「비폭력의 간디(Gandhi on Non-Violence, 1965)」, 「장자의 도(The Way of Chuang Tzu, 1965)」, 「통회하는 방관자의 억측(머튼의 단상, Conjectures of a Guilty Bystander, 1966)」, 「신비가와 선(禪)의 대가들(Mystics and Zen Masters, 1967)」, 「선(禪)과 맹금(Zen and the Birds of Appetite, 1968)」,


「믿음과 폭력(Faith and Violence, 1968)」, 「관상적 기도(Contemplative Prayer, 1968)」, 「활동의 세상 안에서의 관상(Contemplation in a World of Action, 1971)」, 「토마스 머튼의 아시아 저널(The Asian Journal of Thomas Merton, 1973)」.

머튼, 세상의 평화를 건설하는 중재자

수도원 안에서 관상 기도와 개인적 분투로 보낸 1950년대까지의 세월은 1960년대에 그를 세상에 대한 개방과 사랑과 자비로 가득 차게 했다.


 수도생활에 관한 새로운 관점은 황량한 영적 사막을 향한 갈망과 더 깊은 고독을 향한 갈망으로 자양분을 얻었다. 그의 삶의 마지막 시기에 영적인 방향을 더 굳건하게 만들었다.


그는 자신의 내적 체험을 바탕으로 관상과 활동의 통합을 이루어 갔으며, 외적 활동에서도 예전보다 더 자유로움을 가졌다.


이 시기에 관상적 수도승인 머튼은 세상의 평화를 건설하는 중재자(a peacemaker)가 되었으며, 다양한 종교들, 특히 불교와 수도승 간, 그리고 종교 간 대화의 개척자요 선구자가 되었다.

머튼의 성숙한 평화 건설의 여정은 깨달음을 가진 이의 활동이었다. 그는 “관상가로서 저는 고독 안으로 저 자신을 가둬 두는 것이 이제 필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가난한 세상이 제가 고독 안에 있어야 할 올바른 장소입니다. 저는 이 세상에서 정치적, 지적, 미적, 그리고 사회 운동에 대한 관상적 이해를 통해 사고하게 되었습니다”라고 고백했다.

그래서 머튼은 현대 사회의 문제들에 관한 글을 씀으로써 다른 사람과 그들의 세상과 더 가까워지려고 했다.


 이러한 영역에는 비폭력을 통하여 평화를 추구하는 이들에게 직면한 소외, 폭력, 인종차별주의, 핵전쟁, 세상의 부조리와 문제점들이 포함되었다.


머튼은 “저는 저 자신이 (세상과) 같은 문제들에 연루되어 있다고 느끼며, 그러한 것들 역시 저의 문제들이기 때문에 다른 이들과 함께 세상의 문제들에 관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라고 말했다.


전쟁과 폭력이 당시의 상황이었던 20세기의 역사 안에 그가 살았기 때문에 그는 특별히 세상에 평화를 증진하는 일에 힘썼다.

그러나 머튼의 세상에 대한 참여는 무엇보다 ‘인간 의식의 변형’(transformation of human consciousness)에 초점이 맞춰졌다.


그는 자신의 종교 안에서 먼저 자기 변형과 내적 성숙을 이룬 이들이 사회 참여와 종교 간 대화로 나아갈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머튼의 사회정의를 위한 외침과 세상의 고통과의 영적 연대는 오늘날 교회의 사회 참여를 이해하는 데 길잡이가 될 것이다.


▲ 박재찬 신부(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부산 분도 명상의 집 책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