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9.11.23. 연중 제33주간 토요일

dariaofs 2019. 11. 23. 05:31



오늘 미사 말씀들은 생명과 죽음에 대한 풍부한 가르침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면 부활 때에 그 여자는 그들 가운데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루카 20,32)

오늘 대화의 발단은 사두가이들이 얼토당토 않은 가정으로 예수님을 떠보면서 시작됩니다. 사두가이들은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며 바리사이와 대립하는 분파이지요(사도 23,6-9 참조).

오늘 예수님은 죽음 이후의 생명에 대해 명료히 가르쳐 주십니다.


"더 이상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고"(루카 20,35),
"천사들과 같아져서 저 이상 죽는 일도 없으며"(루카 20,36),
"부활에 동참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루카 20,36).

그런데 그 대상에는 조건이 붙습니다. 먼저 심판을 통해 "저세상에 참여하고 또 죽은 이들의 부활에 참여할 자격이 있다고 판단받"(루카 20,35)아야 합니다.

사실 이 지상의 삶은 하느님 모상으로 창조된 인간이 원죄의 결과로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길이 차단되고(창세 3,22-24 참조) 노동과 출산, 죄악과 어두움 속에서 하느님의 완전성과 축복을 갈망하며 그분께 나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느님에게서 떨어져 나온 우리 인간이 저마다 부족하기 때문에 제도의 보호 아래 서로 돕고 살면서 생명의 축복을 이어가라고 엮어 주신 것이 혼인이고 가족, 친족 공동체라면, 그분 완전성에 참여하는 부활의 삶에는 굳이 인간 사이의 결합이나 얽힘, 구속도 필요 없겠지요.

영혼 각자가 하느님 얼굴을 뵈오며 그분 품에서 충만하고 완전한 행복을 누리니 소유나 파벌, 경쟁에서도 자유로울 것입니다.


한마디로 끼리끼리 결집할 이유가 없는 삶이지요. 자기 편도 내 것도 없으니 이기심도 없을 것이고, 하느님와 일치하는 모든 형제자매를 내 목숨처럼 사랑하며 지상에서 아직 남은 순례 여정을 채우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응원하는 것이 그곳의 일상일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불완전한 지상 제도에 비추어 하느님 나라의 삶을 넘겨짚다가 빠지는 오류와 한계를 봅니다.


부활을 믿는 우리는 죽음이 초래하는 이 삶의 불완전성을 토대로 완전하고 충만한 상태를 관상하니까요. 부활을 믿고 안 믿고에 따라 지혜와 희망의 격차는 크게 벌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이다"(루카 20,38).

놀라운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죽음은 인간의 언어였습니다. 대부분의 인간을 고통과 두려움으로 몰아넣는 예정된 미지의 관문인 "죽음"이 하느님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어떻게 죽음을 맞이해 건너왔건 하느님께 우리 모두는 살아 있는 당신의 모상들, 좀 더 대담하게 말하면 당신의 분신들인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이 지상에서 살아 있다면 죽음을 지나서도 하느님 앞에 살아 있는 것입니다. 육신에 얽혀 한시적이고 제한적인 우리의 지상 생명은 하느님 면전에서 한계도 끝도 모르는 영원한 행복으로 선명히 이어질 것입니다.

제1독서는 유다인의 원흉이었던 안티오코스의 실패와 죽음을 다룹니다.

"내가 예루살렘에 끼친 불행이 이제 생각나네 ... 그 때문에 나에게 불행이 닥쳤음을 깨달았네"(1마카 6,12-13).

죽음에 이르러 그는 자신에게 떨어진 불행이 예루살렘과 유다 주민들에게 가한 공격과 살육의 결과라고 깨닫습니다.


그의 이러한 인식이 하느님을 향한 통회와 유다 민족에 대한 죄책감, 후회로 이어졌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한 인간의 가치를 생각한다면 커다란 은총이 아닐 수 없을 듯합니다.

어떤 분은, 입교를 미루는 이유가 실컷 맘대로 살다가 죽기 직전에 세례로 다 용서받고 천국 가기 위해서라고 농담을 합니다만, 죽는 바로 순간 가까스로 통회하기엔 이 세상에서 만나는 하느님, 이 세상에서 누리는 그분의 사랑이 너무 아름답고 충만합니다.


이 하느님 현존과 사랑이 죽음의 용광로를 거쳐 더 완전하고 영원한 삶으로 이어지는 것이기에, 이미 하느님 나라의 행복을 앞당겨 사는 이 기쁨을 포기할 수 없으니까요.

우리는 모두 하느님 앞에 살아 있습니다. 언제 어떻게 닥칠지 모르는 죽음조차도 지상 생명에서 영원한 생명으로의 연장을 막지 못합니다.


여기서나 거기서나 하느님 앞에서 어린이처럼 가난하고 순수한 생명을 감사와 기쁨으로 이어가는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하늘의 시민"(필리 3,20 참조)입니다. 죽음도 하느님 허가와 예수 그리스도의 낙인이 찍힌 이 시민권을 어쩌지 못할 것입니다. 아멘.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