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9년 12월 25일 주님 성탄 대축일 낮미사 - 오상선 신부

dariaofs 2019. 12. 25. 05:50



주님의 빛이 우리를 비추고 계십니다. 주님의 거룩한 탄생을 경축하는 오늘, 미사의 말씀들은 오신 분이 누구이신가를 밝히고 있습니다.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요한 1,1).

오늘 복음 대목인 요한복음의 머리말은 성부 하느님과 말씀이신 성자 예수님, 그리고 세상과의 관계를 매우 직관적이고 신비적으로 드러냅니다. 이 내용 안에 한처음부터 성자의 강생, 수난과 죽음과 부활, 하느님의 자녀인 미래의 교회까지 다 담겨 있지요.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왔다"(요한 1,9).

빛이 누구만을 선택적으로 비추지 않듯이, 참빛이신 주님은 우리 모두를 위해 오셨습니다. 구원의 보편성입니다. 인종과 국가, 성별, 심지어 종교까지 주님의 빛 앞에서는 차별이 없습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요한 1,14).

군주가 백성의 삶을 살피러 잠시 암행은 할 수 있겠지만 예수님처럼 아예 함께 사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입니다.


말씀께서 사람 사이에 들어오시기 위해 스스로 사람이 되셨습니다. 사랑하는 존재와 같아지고 싶으셔서 인간의 약함과 한계를 떠안고 들어오셨지요.

약함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과 약함을 몸소 겪는 것, 가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과 몸소 가난을 겪으며 사는 것 사이에는 많은 층위가 존재합니다.


보잘것없는 인간의 실존을 바닥까지 떠안으신 그분께는 인간의 약함과 한계, 가난이 남의 일이 아니라 더 절절하고 애끓는 고통입니다. 그래서 그분은 자비와 용서에 당신 목숨을 거십니다.

"아무도 하느님을 본 적이 없다. 아버지와 가장 가까우신 외아드님 하느님이신 그분께서 알려 주셨다"(요한 1,18).

하느님은 누구에게도 드러나지 않으신 신비이십니다. 그런 하느님께서 아드님을 통해 인간 앞에서 당신을 드러내십니다. 인간 앞에서 벌거벗으신 것이지요. 그분은 아드님을 통해 당신을 다 보여 주셨습니다.

전지전능하신 분이 사랑 때문에 온갖 약함을 다 입으십니다. 사랑에 빠진 이는 사랑하는 대상 앞에서 한없이 약할 수 밖에 없습니다.


사랑한다면서 상대방에게 권위와 과시, 억압으로 힘 자랑을 하고 있다면 진짜 사랑인지 되돌아봐야 합니다. 사랑은 영원의 주인이신 하느님께 약함의 최고 절정인 죽음까지 떠안긴 신비입니다.

"주님께서 시온으로 돌아오심을"(이사 52,8).

제1독서인 이사야서에 나타난 "주님의 돌아오심"을 성자 예수님의 강생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태초에 인간과 함께 거니시던 분, 이집트에서 이스라엘을 이끌어내고 광야에서 함께 동행하신 분께서 세기를 건너고 또 건너 오늘 이 세상으로 "돌아오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당신 백성을 위로하시고 예루살렘을 구원하셨다"(이사 52,9).

그 목적은 위로와 구원입니다. 오늘 마굿간 구유 안에 누워 계신 성자께서는 어둠과 그늘 속에서 희망을 잃어가는 당신 백성을 찾아 위로하시고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의 개인적, 공동체적 아픔과 고통에 함께하러 오신 것이지요.

"하느님께서 ... 이 마지막 때에는 아드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히브 1,1-2).

인간 아기의 모습으로 오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 계시의 절정이고 완결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완전한 계시지요. 하느님을 찾고 알고 사랑하기 위한 또다른 표징은 없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저자는 "아드님은 하느님 영광의 광채이며 하느님 본질의 모상"(히브 1,3)이라고 확언합니다.

구유가 아무리 화려하고 찬란하게 장식되었더라도, 그 앞에서 우리 중 그 누구도 여관방 대신 묵게 된 마구간과, 짐승 먹이통인 "구유", 그리고 벌거벗은 한 아기의 진실을 잊지는 않을 겁니다.


세상의 창조주요 주인이신 하느님께서는 "이 마지막 때에"(히브 1,2) 왕실의 영화 대신 가난을, 폭풍같은 권위 대신 아기의 연약함을, 추상같은 심판 대신 고요한 침묵으로 세상에 돌아오셨습니다.

고요하고 거룩한 오늘, 우리 각자가 지고 있는 가난과 약함과 부족함을 아기 예수님 곁에 내려놓고 그분과 함께 쉽시다.


평안히 잠든 아기 예수님 곁에서 불안과 우울, 근심과 두려움으로 날선 정신을 그만 내려놓읍시다. 그분은 바로 이것들 때문에 오신 것이니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오늘 성탄의 주인공은 바로 당신과 아기 예수님입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