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9년 12월 24일 아침 미사

dariaofs 2019. 12. 24. 06:00



"보라. 이제 때가 차, 하느님이 당신 아드님을 보내신다"(입당송).

입당송은 대림 시기를 응축하는 말씀으로 오늘 미사를 엽니다. 과연 예수님께서 코앞에 당도하셨습니다. 오늘이 무르익을 즈음이면 우리는 탄생하신 아기 예수님을 성대히 맞이할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당신 백성을 찾아와 속량하시고"(루카 1,68).

즈카르야가 "성령으로 가득 차" 예언합니다. "찾아오다"는 말씀은 복음 내용과 영성체송에 세 차례 반복되고 있습니다.

요즘 '찾아가는 복지 서비스'의 필요성이 점점 부각되고 있습니다. 앉아서 민원을 기다리기보다 직접 찾아가서 묻고 헤아리며 함께 해결책을 모색하는 방식일 텐데요. 찾아와 섬기는 서비스의 원조요 절정이 곧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실까 생각해 봅니다.

살다 보면, 정말로 힘들 때,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만큼 무력해질 때, 적극적으로 돌파구를 찾는 것조차 사치처럼 여겨질 때가 있을 수 있습니다.


도무지 내 힘으로는 어찌할 바를 모를 만큼 멘붕이 되는 상황이 닥칠 수도 있고요. 이처럼 꼼짝할 수 없는 절벽같은 순간에 우리는 어디서 구원을 찾아야 할까요?

구원자의 찾아오심!
주님은 저 위 하늘 옥좌에 앉아서, 우리가 당신을 찾아와 조아리고 굽실대기를 기다리는 절대군주가 아니십니다.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이들, 아니 제 목소리조차 잃은 가난한 이들을 위해 직접 내려오셔서 살피고 돕고 구원하는 분이시지요.

즈카르야는 성령의 힘으로 이러한 하느님의 본질을 꿰뚫습니다. 예언자들을 통해 말씀하신 대로 우리를 온갖 죄악과 적에게서 구하시어 "두려움 없이 한평생 당신 앞에 거룩하고 의롭게 당신을 섬기도록 해 주시려는 것"(루카 1,74)입니다.


구원된 우리가 하느님 모상성을 되찾고 창조된 목적에 알맞는 삶을 회복하게 하시려는 것이지요. 본래 우리는 그러려고 지음 받았으니까요.

제1독서에서는 하느님께 성전을 지어 바치고 싶어하는 다윗과, 나탄을 통해 그에게 전달된 하느님의 목소리가 오고갑니다.

외세와 내부적 분열로부터 안팎으로 이스라엘을 안정시킨 다윗은 하느님께 대한 감사의 표현으로, 또 국가적 결속을 목적으로 성전 건축을 꿈꾸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성소와 경전, 의례의 존재는 한 민족의 종교적 위상을 드러내지요.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이를 거절하십니다.

"나는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한곳을 정하고 그곳에 그들을 심어 그들이 제자리에서 살게 하겠다"(2사무 7,17).

오히려 주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안위를 살피십니다.


주님은 어느 한 곳에 고정되어 찾아오는 이들이나 겨우 선심쓰듯 만나주는 군주가 아니라, 당신 백성이 더 이상 불안해하지 않아도 되게, 괴롭힘 당하지 않게 자청하여 울타리가 되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제자리"

이 말씀은 곧 즈카르야가 노래한 내용과 맞닿습니다. "두려움 없이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의롭게 당신을 섬기는 것"! 이것이 바로 모든 인간의 "제자리"니까요.

우리를 "제자리"에서 살게 하시려고 하느님께서 당신의 자리를 박차고 내려와, 가난한 이들과 짐승들 틈에 "제자리"를 꾸리셨읍니다. 오늘 밤 우리는 바로 이 놀라운 강생의 신비를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아 있는 이들을 비추시고 우리 발을 평화의 길로 이끌어 주실 것"(루카 1,79).

점점 밝아지는 대림초 색깔과는 달리 여전히 세상사로 마음이 어둡고 복잡하십니까? 풀리지 않는 관계와 상처의 쳇바퀴 안을 계속 맴돌고 계신가요?

괜찮습니다. 아직 어둠 속이고 그늘 안이어도 좋습니다. 다만 그분의 빛이 한줄기라도 새어들어올 수 있도록 마음을 여십시오. 성탄을 코앞에 두고도 아직 정리도 안 되고 어지럽혀진 민망하고 송구스런 마음이라도 여십시오.


벼락치기 같아도 빛이신 그분이 스며들기 시작하면 또 다른 기적이 일어날 테니 믿고 여십시오. 결국 우리의 발은 빛이신 구세주 아기와 함께 평화의 길을 향하게 될 것입니다.

온누리의 평화가 내 안으로, 내 안에서 시작된 평화가 온누리로 번져나갈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함께 "평화"가 될 것입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