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9년 12월 22일 대림 제4주일 - 오상선 신부

dariaofs 2019. 12. 22. 06:34



대림초 네 개에 불이 모두 켜졌습니다. 주님이 오실 때가 거의 다 차오른 것이지요. 이와 함께 우리의 기다림도 보름달처럼 충만해집니다.

제1독서에서 주님은 아하즈에게 표징을 청하라고 하십니다.

"아무것이나 청하여라"(이사 7,11).

이 말씀은 주님께서 보여주시고자 하는 표징이 이미 마련되어 있음을 뜻합니다. "아무것이나"이란 말씀에는 "무엇이라도" 이루어 주실 수 있는 하느님의 전능함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께 무엇을 청할 때 그것이 진리와 선, 정의에 입각한 바람이라면, 우리 안에 떠오르는 것은 곧 주님께서 떠올려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당신께서 우리를 위해 준비하신 것을 우리가 원하고 청하게 하심으로써 당신의 뜻을 이루십니다. 그러니 하느님 안에 사는 영혼은 자신의 바람이 곧 하느님의 바람임을 감지하고 겸손히 순종합니다.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이사 7,14 참조;마태 1,23; 복음 환호송, 영성체송).

오늘 미사의 말씀들 안에 무려 네 차례나 이 구절이 등장합니다. 반복은 강조와 집중의 의미를 지니지요. 육화와 강생의 신비에서 가장 중요하고 확연한 표징이기 때문에 그럴 겁니다.


이처럼 성탄에 가까워질수록 전례는 우리를 더 단순하고 집약된 말씀으로 초대합니다. 한 걸음 한 걸음 말씀의 여정을 꾸준히 걸어온 이들이 말씀의 본질을 꿰뚫고 더 깊이 심오한 신비로 들어가도록 이끌어 주기 위함입니다.

"주님께서 몸소 여러분에게 표징을 주실 것입니다"(이사 7,14).

아하즈는 짐짓 겸손을 가장해 표징 요청을 거부했지만 주님께서 몸소 표징을 주신다고 하십니다. 아니, 주님께서 몸소 표징이 되실 것입니다. 주님 친히 동정녀 몸에 잉태되시고 출산되신, 임마누엘이 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자신이 "하느님의 복음을 위하여 선택을"(로마 1,1) 받았음을 밝힘으로써, 사도인 자신의 정체성을 복음에서 찾습니다.

"이 복음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예언자들을 통하여 미리 성경에 약속해 놓으신 것으로 당신 아드님에 관한 말씀입니다"(로마 1,2-3).

즉 복음은 강생하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인데, 예수님은 이미 하느님의 약속으로 성경에 기록된 분이라는 뜻입니다.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구약성경은 갈피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예언하고 상징하고 준비시키지요.

그렇다면 성경에 능통했던 이들, 율법 학자나 바리사이, 사제들이 왜 예수님에 대한 성경의 메시지를 알아듣지 못했을까요? 참 안타깝습니다만, 이 역시 이사야 예언서에 이미 예견된 미래였습니다(이사 6,9-10 참조).


말씀이신 분은 사람의 자기중심적이고 얕은 지식을 통해서가 아니라 수난과 죽음과 부활이라는 말씀의 완성을 통해 세상에 드러나셔야 하니까요.

복음은 요셉이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인 경위를 서술합니다. 요셉이 마리아와 파혼하려 결심한 것은 마리아에 대한 사랑과 염려, 호의에 의한 결정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꿈에 천사를 보내신 주님의 개입으로 마음을 바꾸게 됩니다.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이 모든 일이 일어났다"(마태 1,22).

요셉의 새로운 결단은 마리아에 대한 오해가 풀려서일 수도 있겠지만, "말씀"에 대한 그의 경외심도 간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경건한 이에게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약속입니다.


다윗 자손으로서 의롭고 경건한 요셉에게도 역시 하느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했습니다 요셉은 '동정녀 잉태와 그의 아들 임마누엘' 예언이 자기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으며, 자신의 참여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았던 것이지요.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아내를 맞아들였다"(마태 1,24).

요셉은 이 결단으로써 자신이 하느님의 신비로운 계획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포기하고 또 무엇을 감수해야 하는지 모두 다 예견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다만 그는 하느님께서 자신의 경외심과 순종, 충직함과 성실함을 울타리 삼아 메시아의 도래를 준비하시리라고 어렴풋이 느끼지 않았을까 짐작해 봅니다.

"남모르게"(마태 1,19).

요셉의 이 마음은 마리아와의 혼인 전뿐만 아니라 그 후에도 평생 지속될 것입니다.


복음서 안에 단 한 마디도 목소리를 내비치지 않는 요셉은, 자신의 선의와 희생 모두를 침묵으로 덮고 충직한 순종과 행동으로 하느님께서 맡겨 주신 거룩한 모자를 끝까지 지켜낼 것입니다.

이렇게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일러준 그대로 행함으로써’ 그가 ‘의로운 사람’임을 증명해 보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의 계획을 서슴없이 따릅니다.


하느님의 계획을 거절한 아하즈와는 달리, 요셉은 천사가 나타나서 한 말을 받아들임으로써 하느님의 긴밀한 협조자가 됩니다.

마리아와 요셉, 모두 말씀을 경외하고 말씀에 순종한 분들이지요. 말씀을 경외하는 이는 쉽사리 흔들리지 않습니다. 감정조차도 믿음과 의지 안에서 흐릅니다.


어쩌면 신앙은 인간에게 있어 가장 변화무쌍하고 치외법권적인 감정과 감성의 영역마저 하느님의 뜻에 내어맡기는 중에 꼴을 갖추고 자라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랑하는 벗님, 우리도 마리아처럼 말씀을 믿어 복된 이들이 되고, 요셉처럼 말씀에 순종해 하느님을 얻은 이들이 되기를 두손 모아 기원하는 오늘입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