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9년 12월 19일 대림 제3주간 목요일

dariaofs 2019. 12. 19. 04:50





제가 어릴 때, 6~7살쯤 친구집에 놀러갔는데
그 친구집에 비디오가 있어서 함께 만화 영화를 보곤 했습니다.


당시에는 집집마다 TV는 있었지만,
비디오는 흔치 않았기에
마치 예전에 동네에 TV있는 집에 모여서 흑백TV를 보듯이
동네 친구들이 함께 모여서 비디오를 보곤 했었습니다.

그렇게 보게되었던 만화영화가 삼손과 들릴라였습니다.
구약 이야기 중에서도 아주 드라마틱한 이야기 중에 하나입니다.

오늘은 삼손의 출생의 비화가 1독서에 나오는데
삼손의 어머니는 임신을 할 수 없는 몸이었습니다.


그런데 천사가 나타나서 잉태할 것이라는 계시를 받습니다.

그리하여 술을 포함하여 부정한 것을 먹지말고 죽은 이에게도 가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 받은 은총에 합당하게 그 아이를 하느님께 봉헌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삼손은 나지르인이라고 불립니다.
즉 하느님의 은총을 받아 스스로를 봉헌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나지르인은 머리카락도 자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을 하느님께 봉헌하기로 한 날에
머리카락을 잘라 바쳐야하기 때문에 그 때를 기다여야 하는 것 입니다.

삼손이 가지고 있던 초인적인 힘이 바로 하느님께 봉헌의 표지로 간직하고 있던 머리카락이었습니다.


그런데 들릴라는 삼손이 잠든 사이에 사람을 불러 머리카락을 잘라버리게 됩니다.
바로 그때 삼손은 힘을 잃게되어, 감옥에서 연자매를 돌리게 됩니다.

삼손은 이렇게 하느님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여 비참한 신세가 되었지만,


자신의 교만함을 회개하면서 머리가 다시 자라고 힘을 되찾게 되어
이교신을 숭배하던 필리스티아인들과 함께 죽음으로써 하느님께 대한 신의를 되찾게 됩니다. 

기적적으로 아이를 가졌던 삼손의 어머니에게
삼손의 죽음은 아마도 참담하고도 어의없는 죽음이었을 것입니다.


삼손의 이야기는 세례자 요한에게도 데자뷰처럼 이어집니다.

엘리사벳도 임신을 하지 못하였으나,
천사의 계시를 통해 아들을 낳게 되고,
요한의 결말도 어의없이 죽음으로 끝맺게 됩니다.

이러한 Sad ending을 알고 있는 우리는
“왜 하느님께서는 그녀들에게 아이를 주셨는가?”라고 하며
회의적인 시각으로 속단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삼손과 요한을 그저 구원계획에
도구로만 사용한 것이라는 결과론적인 시각으로 바라본다면


나의 삶에 있어 하느님을
오히려 내 구원에 도구로 이용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느님께서 필요하니까 그들을 도구로 사용한 것처럼
내가 필요하니까 하느님을 믿고 있는것인지도 모르겠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상호조건이 붙은 조건부적 믿음을 참된 신앙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내가 기도하고 싶을 때 기도하고
내가 봉사하고 싶을 때 봉사하고
내가 어울리고 싶을 때 어울리는 것과 별반 다를바가 없습니다.

정작 하느님께서 나와 함께 하고자 하실 때, 내 마음은 하느님에게서 멀리 떠나있고,


교회가 나를 필요로 할 때, 할 수 없다고 이야기하고,
형제자매들이 나를 불러주지 않는다고 토라져있는 것과 별반 다를바가 없습니다.


그런데 조금 깊이 들여다 봅시다.
아이를 갖을 수 없는 어미의 마음은


아마도 조건부가 아니라 완전히 하느님을 신뢰하는 마음으로
천사의 말을 믿고 따랐습니다.

또한, 삼손과 요한은 그들의 자유로운 의지로써
죽음을 감수하면서 하느님의 가르침을 실천하고자 했습니다.

조건이 없는 믿음과 자유로운 의지를 통해
자기자신을 내려놓음으로써
하느님께서 승리하신다는 것을 보여주게됩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그 모든 것을 받아드리고, 

 
또 내 모든 것을 바치며 살아온 것이기에
그들의 위대한 업적은 성경에 기록됩니다.


이보다 더 훌륭한 어미와 자녀가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나만 중요하고, 내 아이만 소중하고, 내 가족만을 생각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위해서, 신앙공동체를 위해서, 미래의 세대를 위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온전히 하느님만을 믿고 따랐던 여인들에게서 배워야 하고,
오늘의 삼손과 요한의 출생이야기에서부터 깨달아야 합니다.

이들의 탄생은 개인의 출생이 아니라
이 세상의 구원을 열어주는 키잡이 였습니다.

아무도 하고싶어 하지 않는 일을 그들은 하느님의 나라를 위하여
온 힘을 다해 노력해왔다는 것을 다시 한번 되새기고
내 삶에 비추어 보도록 합시다.
        


박동현 제노 신부(대전교구 목동성당 보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