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은 그 유명한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입니다.
"그분께서는 호수에 있는 배에 올라앉으시고 군중은 모두 호숫가 뭍에 그대로 있었다"(마르 4,1).
군중이 많이 모여들자 예수님께서 따로 배에 올라 그들을 가르치십니다. 예수님은 호수 위에 계시고, 군중은 뭍에 있으니 장소적으로 대비를 이룹니다.
배가 연단 역할을 하는 셈입니다. 예수님께서 군중과 거리를 두고 조금 떨어져서 말씀을 하시니 다수의 군중이 알아듣기에 알맞은 구조가 형성됩니다. 존중과 배려로 건강하게 가르치고 배우기 위해서 이처럼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는 것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그분 둘레에 있던 이들) 너희에게는 하느님 나라의 신비가 주어졌지만 저 바깥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그저 비유로만 다가간다"(마르 4,11).
예수님 둘레에 있던 이들과 바깥 사람들, 여기서도 대비가 일어납니다. 비유의 속뜻을 깨닫는 이들과, 그저 비유로 듣고 흘려버리는 이들이 존재합니다.
누가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하느님 나라의 신비는 예수님 곁을 지키는 이들, 말씀에 머물러 비유의 속뜻을 탐색하는 이들의 몫입니다.
"씨 뿌리는 사람은 실상 말씀을 뿌리는 것이다"(마르 4,14).
이미 복음 환호송에서 "씨앗은 하느님의 말씀, 씨 뿌리는 이는 그리스도"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이 바로 하느님의 말씀을 뿌리는 분이십니다.
길에 뿌려진 씨는 사탄이 앗아가고 돌밭에 뿌려진 씨는 박해와 환난에 말라버립니다. 땅이 씨앗을 제대로 품기도 전에 외부적 요인으로 씨앗의 생명이 사장되는 것이지요. 어쩌면 여기까지는 땅에게 고의적 책임을 백 프로 지우기 어렵다고 보입니다.
그런데 가시덤불 속에 떨어진 씨는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 그 밖의 여러 가지 욕심"(마르 4,19)에 숨이 막혀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합니다. 땅이 말씀의 씨앗보다 가시덤불을 더 집중 성장시킨 탓이니 여기서부터는 땅의 책임이 큽니다.
말씀을 품기는 하지만, 세상 걱정, 재물, 욕심에 햇빛과 양분과 바람을 더 많이 몰아주니 말씀은 질식될 수밖에 없지요.
"그들은 말씀을 듣고 받아들여 ... 열매를 맺는다"(마르 4,20).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은 열매를 맺습니다. 그 사람은 하느님의 말씀이 자기 안에서 새 생명을 틔우도록 터를 비옥하게 만드는데 제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습니다. 제게 다가오신 말씀을 놓치지 않고 받아들여 품습니다.
그 씨앗에 머물러 싹이 나고 뿌리가 돋고 줄기가 엮이는 신비를 관상합니다.
이 지난한 기다림이 열매를 맺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말씀에 매진합니다. 말씀이 자신을 드러낼 때까지, 신비의 얼굴을 비출 때까지 그는 쉬지 않고 싫증 내지 않고 머무릅니다.
제1독서에서 주님은 성전을 지어 바치고자 하는 다윗의 염원을 고사하시며 그에게서 한 집안을 일으켜 주리라 선언하십니다(2사무 7,11 참조).
"나는 너를 모든 원수에게서 평온하게 해 주겠다"(2사무 7,11).
이집트 탈출 이후 이스라엘이 땅을 차지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혹독하게 외세와 전쟁을 치러왔는지 우리는 압니다. 주님은 그들의 바람이 진정한 "평온"임을 아시고 이를 약속해 주십니다.
"그에게서는 내 자애를 거두지 않겠다"(2사무 7,15).
주님께서 많이 양보하십니다. 사울을 뽑으셨지만 그의 배반에 얼굴을 돌리셨고, 다윗을 택하셨으나 그 역시 온전한 종은 되지 못했지요.
솔로몬 또한 주님의 귀염을 받지만 말년에는 결국 왕국 분열의 빌미를 제공하고 맙니다(1열왕 11,1-13 참조). 그래도 당신 자애를 거두지 않겠다고 하시니 주님 사랑의 집념이 놀라울 뿐입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주님은 실패자십니다. 특별히 뽑아 세우고 아낌없이 사랑한 이들에게서 번번이 외면 당하셨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지치지 않고 씨를 뿌리십니다. 열매 맺지 못한 씨앗에 절망해 손 놓지 않으시고, 더 나은 사울, 더 나은 다윗, 더 나은 솔로몬을 찾아 씨 뿌리기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그 중단 없는 씨 뿌리기가 바로 오늘 우리에게까지 이어진 것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말씀은 싹 틔우고 열매 맺을 좋은 땅을 갈망합니다. 좋은 땅도 말씀의 씨앗이 뿌려지길 설레며 고대하지요.
그런데 씨를 뿌리시는 주님은 미리부터 땅의 등급을 나눠놓고 좋은 땅만 골라서 씨를 주시지 않습니다. 저러면 손해지 싶을 정도로 길이건 돌밭이건 여기저기 무턱대고 뿌리십니다.
그리고 그 덕에 말씀이 우리에게까지 오셨습니다. 척박하고 메마르고 더럽기까지 한 오염된 땅, 우리 영혼에게까지 순결한 말씀이 심겨진 이유입니다. 순결한 말씀에는 땅까지 송두리째 정화할 힘이 있으니까요.
그래서 주님은 "내 자애를 거두지 않겠다"고 하시는 겁니다. 말씀에 깃든 그분 자애가 우리의 진홍빛 영혼을 눈처럼 희게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이로써 땅이 씨앗을 품는 게 아니라 씨앗이 땅을, 말씀이 우리 영혼을 품는 역전이 일어납니다. 그러니 말씀(씨앗)의 첫 열매는 순결해진 우리 영혼이 될 것입니다.
우리를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는 주님 말씀에 머물러 주님과 하나 되는 오늘 되시길 축원합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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